투명한 몸의 여운

옥현철展 / OCKHYUNCHUL / 玉鉉喆 / sculpture   2012_0206 ▶ 2012_0211 / 일요일 휴관

옥현철_투명한 존재_석고, 곰팡이_5m이내 가변설치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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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205_일요일_06:3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봄 GALLERY BOM 부산시 부산진구 부암동 698-5번지 1층 Tel. +82.51.704.7704 blog.daum.net/gallerybom

투명한 몸의 여운 ● 옥현철의 작품은 몸과 눈이 분리된 오늘날의 감각문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무척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이미지가 아니라, 눈과 내밀하게 공명하고 있는 몸의 존재를 일깨우는 촉매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치 눈을 감았을 때 암흑 속에 차오르는 몸의 느낌을 자아내려는 듯, 그의 작품은 육체가 머물고 간 흔적에서 비롯되는 묘한 여운에 관객을 젖어들게 만든다. 적지 않은 부피와 무게로 삼차원의 공간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투명하게 비어 있는 것 같은 존재감(혹은 부재감)을 지니는 옥현철의 작품은 아이폰, 아이패드, 스마트 TV 등과 같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침투하는 '프레임'의 칼날을 부식시켜 프레임의 표면 위를 흐르는 무한에 가까운 이미지에 사람의 시각이 휩쓸리는 사태를 막으려 한다.

옥현철_투명한 존재_석고, 나무_100×45×45cm_2012
옥현철_투명한 존재_석고, 나무_60×60×60cm_2012

과거의 미니멀리스트들은 몸 앞에 놓인 대상의 시각적인 군더더기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순수한 현전(現前)의 체험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이와 유사하게 옥현철은 자신의 작품에서 어떠한 장식이나 구성도 생략한 채, 작품을 대면하는 사람의 몸에 스며드는 있음(혹은 없음)의 현상만을 간결하게 남기려 한다. 그는 나무 상자를 점토로 가득 메우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작위의 흔적을 남긴 뒤, 다시 손을 빼 내고 그 틈새에 석고를 가득 부어 경화시킨다. 그런 다음 점토를 나무 상자에서 모두 파내고 석고 덩어리가 된 손길의 흔적만을 상자 속에 남긴다. 이 때 점토는 존재하다가 부재하고, 손길의 흔적은 부재하다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존재와 부재의 교차는 최종적으로 남게 된 석고 덩어리의 '있음'을 어딘지 모르게 투명하게 만든다. 그 투명한 있음은 손길의 있음인 동시에 몸의 있음이다. 이제 상자 속 몸의 흔적은 존재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닌 묘한 상태에 놓인다. 이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최초에는 나무 상자, 석고덩이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을 무덤덤하게 눈으로 살피다가, 차츰 상자 속 빈 공간에서 비롯되는 공허한 분위기를 몸 전체로 감지하게 된다. 특히 석고덩이의 표면에 남은 손길의 흔적은 강제 수용소 가스실 벽면에 남은 몸 자국 마냥 관객의 몸에 강렬하게 울린다. 더군다나 그 손길은 상자 내부의 빈 공간과 격하게 접촉하는 모습으로 드러나 있어, 이를 감상하고 있는 관객의 몸 또한 상자의 바깥으로 여울 짓고 있는 투명한 존재감에 저도 모르게 반응하게 된다.

옥현철_투명한 존재_석고, 나무_40×80×40cm_2012
옥현철_투명한 존재_석고_30×60×15cm 2012

이러한 '투명한' 있음(혹은 없음)의 상태는 옥현철의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컨대, 그가 벽면 부착용 포스터를 도로에 부착해 놓고,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포스터의 겉면이 마모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것을 회수하여 작품으로 삼았을 때, 그가 포착하고자 했던 것은 곧 바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아슬아슬한 반(半)존재의 상황이었다. 옥현철이 강도가 높은 재료 대신 석고라는 연성의 재료를 즐겨 사용하는 까닭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제작하는 '대상'은 대부분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는 것을 거부하며 주변 공간과 깊고 넓게 호흡하면서 형성되는 여운이나 분위기를 통해 관객과 만나려 한다. 이러한 태도 속엔 옥현철 특유의 몸의 존재론이 깃들어 있다. 그에게 사람의 몸은 크기, 부피, 질량으로 한계 지워진 물질이 아니다. 그에게 몸은 지각 활동에 의해 물질적 한계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의 지평이다(이는 지각의 현상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견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옥현철은 자신의 입장에서 느꼈을 때 몸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세계의 지평이 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몸의 '안쪽'으로 무한히 수렴되는 내면의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옥현철은 자기 작품의 대상으로서의 속성을 외부 공간에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관객의 지각이 닿지 않는 블랙홀과 같은 내부 공간을 작품 가운데에 항상 마련해 놓는다. 옥현철이 한 동안 폐쇄된 외부와 무한 확장하는 내부의 대립에 골몰하며 '구멍' 연작과 '안과 밖'을 전치시키는 작업에 무모하게 매달렸던 까닭도, 자신이 느끼는 내면의 운동이 과연 타자에게도 객관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인지 끈질기게 회의하였기 때문이다.

옥현철_투명한 존재_종이_5m이내 가변설치_2012
옥현철展_투명한 존재_2012

이처럼 옥현철은 '시뮬라크르'(20년 가까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의 한국적인 맥락은 아직 분명치 않다)라는 외래어로 통칭되는 이미지의 흐름이 아이폰, 아이패드, 스마트 TV과 같은 글로벌 제품과 보조를 맞춰, 한국의 감각문화를 압도하는 시대에, 1960년대의 서구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몸의 존재론을 진중하게 펼쳐 나간다. 그런 까닭에 옥현철의 작품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만 낯설 뿐 아니라, 미술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옥현철의 작품의 심층에는 1950년대의 추상 표현주의에서 나타났던 종교적인 영성이 존재한다. 만약 이를 두고 옥현철의 작품이 미술사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퇴행이자 시대착오라고 평가하는 미술사 연구자가 있다면, 그는 서구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의 근대가 서구의 근대를 모델로 삼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진행 양상은 판이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의 발달 과정이 서구의 정치, 사회, 경제의 발달 과정과 달랐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국의 미술 또한 서구의 미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수순을 밟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미술에 있어 한국의 2010년대와 서구의 1950,60년대는 얼마든지 동시대적일 수 있고, 그것은 결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0년대의 한국에서 나타나는 미술 현상은 2010년대의 서구 미술사의 관점에 의거해서만 평가된다. 그것을 보편적인 미술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 의탁했을 때 옥현철의 작품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2010년대 서구 미술사의 토대가 되는 정치, 사회, 경제를 실제적인 삶으로써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의 예술가는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서구 미술사에 '입적'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2010년대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를 기반으로 삼은 미술사의 관점을 정립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한국의 모든 미술가들이 이미 포괄적으로는 미술사에 '입적'한 상태가 된다. 이 글에서 다룬 옥현철의 작품 또한 한국 미술사에 이미 입적시킨 상태로 그것의 위치를 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0년대의 한국에서 나타나는 미술 현상은 2010년대의 서구 미술사의 향방을 선행 학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촉발된 문화 글로벌리즘이 그 경제체제와 함께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 서구적 보편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만큼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질병을 떨치지 못하는 2010년대의 한국 미술에 있어 옥현철과 같은 존재는 그저 소중할 따름이다. 우리 모두 분발하여 그의 작품이 2010년대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현상과 관계 맺고 있는 중층적인 양상을 밝혀내자, 그리고 그의 '한국' 미술사적인 위치를 정해주자. ■ 강정호

Vol.20120206c | 옥현철展 / OCKHYUNCHUL / 玉鉉喆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