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징 파티 / 2012_0122_일요일_테이크아웃드로잉 성북
후원/협찬/주최/기획 / 테이크아웃드로잉 TAKEOUT DRAWING
『뒤집힌 고고학』,『A'kiosk : 야매지식키오스크』 관람시간 / 11:00am~00:00am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TAKEOUT DRAWING hannam-dong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39번지 Tel. +82.2.797.3139 www.takeoutdrawing.com
『Urban Harp』, 『A'kiosk : 야매망상키오스크』 관람시간 / 11:00am~11:00pm / 1월 2일, 수요일 휴관 (1월4일 개관)
테이크아웃드로잉 TAKEOUT DRAWING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31번지 Tel. +82.2.745.9731 www.takeoutdrawing.com
두 집 사이 ● 우리는 3차원의 공간과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 실재계에서 공간과 시간은 따로 떼어 놓고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나는 성북동과 한남동에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두 곳을 연결하는 공간을 시간과 따로 떼어내서, 다시 시간속에 던져 놓는 작업을 생각했다. 소리를 통해 시간을 듣고 공간을 만지며 詩를 인지하는 이 작업은 시간의 켜를 찾는 고고학적인 모습을 하게 될 것이고, 공간에 대한 박물지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시적인 삶을 사는 우리가 사실은 좀 더 어마어마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초라한 삶을 대단한 '지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Urban harp ● 성북동과 한남동을 잇는 물길과 도로는 전시장에서 두 개의 길로 표현 될 것이고, 그 길은 수직적으로는 수많은 선으로 천정에 매달려 전체가 거대한 하프처럼 보일 것이다. 길의 특정한 지점에 달린 줄은 누군가 튕기면, 그 장소에서 채집한 지금의 소리를 내며,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놓여진 먼 훗날의 공간을 일깨울 것이다. 나는 성북동에서 펼쳐질 이 거대한 악기를 『Urban harp』로 부르며 성북동 전시의 주제로 삼았다.
뒤집힌 고고학 ● 한남동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성북동과 한남동의 지금의 도로를 좀 더 첨예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두 집 사이의 길에서 채집한, 이번에는 작고 사소한 오브제들이 길의 지점에 표기 되며 전시된다. 여기에 성북동에서 보이는 물의 철학과 같은 희망은 없다. 단지 시간의 큰 흐름 속에 스러져 갈, 그래서 하나의 흔적으로 남을 지금 우리의 시간을 복각 할 뿐이다. 그러나 전시장의 천정과 벽, 그리고 바닥을 감싸며 만들어지는 길의 구조물은 그것이 원형의 형태를 띠게 되므로 자연히 양 극단은 한 점에서 만나게 된다. 한남동과 성북동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한없이 늘려진 사이에서 결국 사이는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지대무외(至大無外), 지극히 큰 것은 바깥이 없다는 말처럼, 그 사이에 대한 탐색을 통해 그 사이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공간이 시간과 떨어질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시 시간 속에 남아있을 것인가 하는 예측이자, 미래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역전된 『뒤집힌 고고학』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다. 이것이 한남동 전시의 주제다.
2011.12.06 ● 꿈꾸는 자들은 모든 감각을 닫아버린다. 대신에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다른 감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그게 뭔지 신경 안 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 없다.
2011.11.23 ● 내 뇌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 동안 이렇게 많은 뇌들이 기억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고, 지금 내가 달고 다니는 이 텅 빈 껍질은 도데체 또 뭐란 말인가?"
2011.12.01 ● 몇 백 년 후의 고고학자가 지금 우리시대의 지층을 발굴하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크게 놀랄 것이다. 너무나도 다른 유적들이 연이은 지층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운 지층에서는 의류, 장식품, 건축, 먹거리, 심지어는 남아있는 저술들까지, 그 전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런 변화가 고작 60년에서 40년 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워서 이 먼 훗날의 고고학자는 생각할 것이다. 이는 분명 이민족의 침입이 있었고, 원주민들이 그들의 풍습과 문화를 침입자들에게서 강제 받은 탓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맥 년이나 지속되었던 문화가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설을 세운 후 이 고고학자는 서로 다른 문화를 영유했던 이들의 DNA를 분석하여 자기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이 두 문화의 주인은 정확히 같은 DNA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1950년에서 2020년까지 한반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고고학계의 수수께끼로 남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완전히 단절되어있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이 단절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20세기 초의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지만 우리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문화와 단절된 예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고전에 접근 할 수 없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을 안고 있다. 한글이라는 뛰어난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문학이나 철학적 사유를 펼친 것은 불과 60년 전인 1960년부터이다. 그 전에 우리는 일본어를 썼고, 그 이전에는 한자를 썼다. 고전에 접근한다는 것이 물론 어느 언어에서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렇게 일반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지경은 아니다. 증조부의 비문 조차도 우리는 해석하지 못한다. 과거의 정신적 유산과 유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면면이 이어오던 한 사회의 가치, 세시풍속, 풍습, 놀이문화 마저 근대화의 과정에서, 어떤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어떤 것은 더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폐기되었다.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든 정신적, 물리적 유산들은 사라지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폐기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 흙과 산과 강이다. 해와 달과 별이다. 해와 달과 별은 도교적 의미에서 삼광(三光)이라고 불리며 그것을 점치는 일을 관(觀)이라고 한다. 흙과 산과 물은 삼색(三色)이라고 하며 그것을 살피는 일을 찰(察)이라고 한다. 삼광과 삼색을 살피는 일을 그래서 관찰(觀察)이라고 한다. 관찰은 이 삼색과 삼광을 유심히 살피고 알맞은 자리를 보는 일이다. 풍수지리에 따라 집과 마을 자리 잡은 우리의 전통적인 자연관은 이 폐색한 시대에도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아직도 삼광과 삼색을 덮으며 바람은 분다. 산과 길은 물을 따라 달린다. 물은 산을 구분하고, 길은 가장 낮은 물길을 따라 나게 마련이다. 바람도 그 길을 따라 불어온다. 우리의 집과 도시도 산과 물을 따라 형성된다. 우리는 거기서 바람을 얻고, 바람을 피하며, 바람을 숨기는 묘수를 찾았다. 그 묘수가 지금도 우리가 사는 주변 곳곳에 숨어있다. 근대는 이 묘함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땅에 사는 작은 생물들을 위해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수채 구멍에 산다는 아귀라는 짐승이 괴로워 할까봐 작은 밥알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자연에 대한 경외를, 그 큰 두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큰 강을 이루는 도시의 작은 개천들이 도로로 복개되고, 산에서 내려오던 생태의 길이 끊기면서 산은 물을 잃고, 흙은 무너지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데서만 흐르게 되었다. 누가 물을 위로할 것인가? 나는 이번 전시에서 이 어둠에 갇힌 물을 위로하고 바람을 위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싶었다. 그러면 산이 따라오고 흙이 생기를 찾을 것이다. ■ 함성호
우리는 카페 레지던시로 체류하는 작가와 그가 제안하는 주제로 두 달을 산다. 2011년 겨울,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와 동행하다 보면 그가 추구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들로 열리는 세상을 만난다. 어제는 독립군의 심정으로 티벳으로 갔다가 티벳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인도로 향한 그를 만났다. 함성호는 그 여행에서 돌아와 기행 산문집 [허무의 기록]을 출간했고, 그 이후 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시제 지금 여기, 서울, 한국, 아시아의 가치. 여행을 가면 그 사회의 가치들이 보인다는 그는 현재 여행자의 시선으로 여기 머문다. 여행자 함성호는 '두 집 사이'에서 라는 주제와 작가노트 하나를 올리고 한남동과 성북동을 오간다. 아마도 무언가 찾아지지 않겠느냐는 그의 답변이 나는 마음에 든다. 자신의 본능을 믿어보는 것. 그가 새로운 주제와 노는 동안 우리는 그의 호 야매에서 이름 지은 『야매지식 키오스크』『야매망상 키오스크』를 뒤적인다. 그의 서재 전체를 옮겨와 쌓아 올린 추억더미에서 우린 뭘 기억하고 꿈꿀 수 있을까. 살아온 어제의 메모들 속에서 우린 뭘 탐험하고 발굴해낼 수 있을까. 『야매지식 키오스크』에서는 함성호의 쪽글과 그림들이 들어있는 작가노트를 복제해서 판매하며, 『야매망상 키오스크』은 함성호가 보내온 삶의 시간적 흔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오브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 최소연
Vol.20111224f | 함성호展 / HAAMSEONGHO / 咸成浩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