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닌 어딘가

송준호_붉은구슬 2인展   2011_1223 ▶ 2012_0111 / 12월25~26일, 1월1~2일,9일 휴관

송준호_날개_금속체인, 아크릴 보드_240×100×40cm_2011

작가와의 대화 / 2011_1227_화요일

주최 / 구로문화재단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구로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12월25~26일, 1월1~2일,9일 휴관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의사당길 12 Tel. +82.2.2029.1700, 1742 www.guroartsvalley.or.kr

절대적 실체 지우기, 상대적 실체 그리기 ● 작가 송준호는 체인이나 금속선으로 만들어진 작업을 통해 절대적인 존재나 가치가 사라진 세상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고 하였다. 절대적인 존재는 무엇이고, 가치가 사라진 세상은 무엇일까? 체인이나 금속선으로 만든 희랍건축의 기둥을 보면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분명 서양 문명의 흐름과 관련이 있고, 그의 문제의식이 존재론에 대한 어떤 근본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가는 역시 사회적 산물이며 시대와 전통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주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송준호_자소상_금속체인, 스테인레스 보드_169×165×50cm_2009
송준호_왕관_금속체인, 나무, 비즈_55×45×45cm_2011
송준호_금과 슬_금속체인, 나무, 비즈_120×90×45cm_2010

선적인 재료들은 참으로 신비로운 특징을 가진다. 자체적으로 완전한 육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떤 형상의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형상은 있되, 형태는 없는 그런 이중적인 파러독스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이러한 선적 구조의 특성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대상을 이러한 선적 재료들을 이용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육중하고 절대적인 존재감을 정면 돌파하여 훌훌 털어내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소박하고 겸손한 육성과는 달리, 이것은 크게 보면 서양의 존재론적 전통, 작게 보면 존재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에 대한 근본적인 도발이라고 볼 수 있다. ● 많은 작가들이 얄팍한 아이디어나 코앞의 상황만을 응시하면서 빈곤한 주제의식을 우려먹는 풍토에, 송준호라는 작가의 이런 가볍지 않은 행보는 설사 그것이 지금 어떤 정확한 해답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라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던져준다. 그것만으로도 작가에 대한 기대를 금할 수 없게 된다. ■ 최경원

붉은구슬_그림자 뒤에서_ 플라스틱, 유리안구_60×20×13cm_2011

붉은구슬의 작업 ● 작품은 읽는 것인가 아니면 눈으로 보는 것일까. 붉은구슬의 작품을 보면서 이 문제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 붉은구슬이 사용하는 조형 언어 가운데 특이한 것이 하나있다. 그들이 만든 인물상과 함께 등장하는 신화적 모티브, 사실 이것은 시간성 그 자체를 부정하고 살아가는 현대인과는 매우 대조적인 관계를 지닌 소재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생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마 그것은 신화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상이라는 개념과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개념이 매우 대조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붉은구슬은 신화, 이것을 왜 자신들의 작품에 도입하고 있는 것 일까. 그의 작업을 보면 융(C. G Jung)이 그의 저서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Man and his Symbols』에서 서술한 문장이 생각난다. '인간의 육체가 진화의 오랜 역사를 지닌 여러 기관들의 박물관인 것처럼 마음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에 대해서도 경험 많은 연구가는 현대인의 꿈의 상(象)과 원시심성의 산물-집단적 이미지들-신화적인 주제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신화적 개념을 다시 만들어 내는 일 역시 일종의 신화적 유형으로 볼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붉은구슬은 인간의 여러 가지 심상 속에서 인간적인 그 어떤 것의 원형성을 발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일까. ● 아무튼 그는 자신의 작업에 등장하는 일련의 인물상들을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유형을 빌어 인간의 번뇌, 고통, 욕구 등의 감정을 표현해 내고 있다. 마치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유형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상징이라도 하듯 작품 속에 유난히도 눈동자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붉은구슬_숲속의 기사_ 플라스틱, 유리안구_30×6×7cm_2011
붉은구슬_숲속의 기사_ 플라스틱, 유리안구_30×6×7cm_2011_부분

붉은구슬이 설정한 인물상에 등장하는 유리안구로 처리된 눈동자, 이들은 관객의 이동에 따라 계속 움직이며 마치 관객을 감시라도 하듯 쫓아가며 감상자를 응시하고 있다. 쌍방 간의 설정, 눈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를 시도라도 하듯이 작업을 통하여 작가는 조심스럽게 세상을 관찰하고 있으며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서 침묵의 호소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의 작품 속에 이러한 의도가 밑에 깊이 깔려 있다면 그는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이 보는 눈을 한 공간에서 연출해내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점에 있어 그가 설정한 관계 속에는 패러독스가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예술의 감상 문제는 감상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왔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렉티브한 작업 방식이 일상생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쌍방소통이 가능한 멀티미디어적인 작업들이 현대미술에 흔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가가 탄생시킨 인물상은 전통적인 방식인 나무 조각과 채색기법을 통하여 인간의 소통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새로운 참신함을 발견하게 된다. ● 현대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 물질문명이 풍요로워질수록 자신에 대한 연민은 더 커지고 있다. 더욱이 물질의 풍요로움의 막바지에 신음하는 이 시대에 우리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내보이면서 자신의 화두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인 관심사, 즉 우리들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작업에 눈길이 간다. ■ 김성희

Vol.20111223d | 여기가 아닌 어딘가-송준호_붉은구슬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