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olubilized Painting

이태희展 / LEETAEHEE / 李太熙 / painting   2011_1222 ▶ 2011_1228

이태희_ICE_캔버스에 유채_150×260cm_2011

초대일시 / 2011_1222_목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이안 GALLERY YIAN 대전시 중구 대흥동 153-5번지 이안과 병원 1층 Tel. +82.42.220.5959 www.galleryyian.com

이태희의 얼음 그림 - 회화,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창 ● 물이 응고된 상태인 얼음은 상온에서는 다시 녹아 액체인 물이 된다. 이태희는 그러한 얼음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은 표면이 녹으면서 투명함이 더해지고 각진 모서리들이 사라져 부드러운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가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형형색색의 형태들은 바로 그 얼음들이다. 투명한 얼음은 그 형태에 따라, 또한 주변 사물이나 빛에 따라 그것을 반사해 반짝이며 변화무쌍한 색채의 조합을 이루어낸다. 그는 그러한 얼음에서 조형적 가능성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러저러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내고자 노력해오고 있는 것이다. ● 주변에 놓인 사물의 색과 조명에 따라서, 그리고 그것을 보는 눈의 높이나 시점에 따라서 무한히 달라지는 얼음의 빛과 형태는 그 자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음의 표면에는 빛과 색채가 있고 이미지가 있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일루전이 있다. 그리고 녹아내리며 고정되지 않고 변하는 형태도 있다. 즉 얼음은 끊임없이 변모하는 빛과 색채,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을 지켜보면서 마음에 드는 형태와 색채를 선택하여 사진으로 남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때로는 곧바로 캔버스로 옮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컴퓨터의 그래픽 작업을 통한 변형을 거쳐 묘사되기도 한다. 이렇게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은, 얼음과 거기에서 반사되는 빛이나 색채가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지 않는 비재현적인 것이기에, 그 과정에는 그리는 이의 상상력, 조형적 취향, 그리고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 등이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폭넓은 여지를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그에게 얼음의 표현은 자유로이 다양한 표현을 실험하고 모색하는 좋은 연구의 장이 되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태희_ICE_캔버스에 유채_130×162.2cm_2011
이태희_IC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1

한편으로 그는, 그렇게 형태를 잃고 녹물로 녹아내리는 얼음을 보면서, 결국은 스러져 잊히고 마는 존재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떠올리게 된다. 얼음이 녹는 현상은 온도에 따른 물의 물리적 성상의 변화라 하겠지만, 단단한 얼음이 형체를 잃고 녹아내려 결국은 모두 스러지고 마는 모습은 존재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 아울러, 그러한 얼음의 속성은 그로 하여금 다시 인간 존재의 유한함으로 연결 짓게 한다. 얼음은 자신으로부터의 빛이 아니라 외부의 빛과 색채를 되비추어 스스로를 화려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지극히 짧은 시간에 녹아 스러지고 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 역시 제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곧 잊히고 말 뿐이다. 이렇게 반짝이는 얼음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존재의 문제를 인식함으로 해서 그는 그림, 그림 그리기, 그리고 그림과 관련을 맺게 된 자신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로 향하는 매우 바람직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리하여, 시간의 흐름과 함께 녹아내리는 얼음을 포착하고 그 화려한 한 순간의 모습을 하나의 '기록'으로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그림을 그리는 짧은 인생에서라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의지로, 앞으로를 기약하는 보다 긴 호흡의 다짐으로 연결되고 있다. 인간의 다른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미술 또한 행위자의 성찰이 그 행위의 결과물을 어떠한 기반 위에 놓이게 하는가는 물론이려니와, 그 진로, 지평, 그리고 가능성 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이러한 인식은 근래의 작업이 가진 고무적인 일면이라 하겠다.

이태희_IC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1
이태희_IC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1

인간이 시간의 제약에 묶인 유한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더불어 보다 긴 호흡이 아닐까한다. 그가 비로소 본격적인 미술의 길로 접어드는 관문에 서 있음을 잘 알고 있고, 많은 필요한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공부하려는 조급하지 않은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원 과정 동안 끈기 있게 지속해온 얼음을 통한 실험과 연구가 이제 하나의 매듭을 짓는 시점에 있지만, 다시 그것이 그간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물음들에 보다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를 새로이 벼리는 출발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 박정구

Vol.20111222h | 이태희展 / LEETAEHEE / 李太熙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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