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집 Ghost House

2011_1216 ▶ 2012_0108 / 1월 1일,설날,월요일 휴관

광모_Moon garden_Archival Pigment Print Photo Rag Paper_150×150cm_2007

초대일시 / 2011_1216_금요일_04:00pm

참여작가 광모_김동현_김청진_변윤희_박선민 임윤수_이재헌_한승구_채우승

기획 / 김동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1월 1일,설날,월요일 휴관

전북도립미술관 JEONBUK PROVINCE ART MUSEUM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1068-7번지 Tel. +82.63.280.4343 www.jbartmuse.go.kr

유원지나 놀이동산에 가면 유령의 집이 있다. 걷거나 열차를 타고 일정한 구간을 지나는 동안 모퉁이나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기괴한 형태들을 보고 관객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 유령의 집이다. 물론 이 공간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이곳이 유령의 집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 말해 일종의 예측, 앎이 선행되는 것이다. 유령의 집으로 들어서는 것은 그러므로 예측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마음의 준비를 배신하는 초월적인 사건이나 이미지의 출현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 '집'을 채우고 있는 유령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우리 자신의 근본적 공포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앎과 기대 속에서 '길들여진' 두려움에 대응한다. 공포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 대상들 역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극장이나 책의 바깥으로까지 따라오지 않는다. 유령들은 그것들의 '집'에 머물고 있다. ● 반면 우리가 세계 안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일정한 '집'을 지니고 있지 않다. 공포는 어디에서나 출현하며 예기치 못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근본적 두려움을 '길들일'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자본 안에, 언어 안에, 우리의 유한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 두려움과 마주치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이나 텅 빈 공간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순간이다. 유령은 과거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어른거리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피해나갈 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우리의 앞에 서있는 것, 다시 그곳으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것, 그것이 유령이다. 우리는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감함으로써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것은 살짝 벌어진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 속에서, 미세하게 왜곡된 기억의 잔상 속에서, 미처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조금 낯설게 보이는 익숙한 얼굴 위에서 그것의 자락을 펄럭인다. 세계는 반복하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조금씩 표정을 바꾸어 나간다. 우리는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가족들과의 하루하루를 살펴보는 일상의 행위들을 통해 유령의 존재를 감지한다. 전쟁과 불황과 혼란과 재난의 형태로 유령들은 세계를 이미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유령의 집』에는 아르코 신진작가 프로그램에서 만난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작가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작업의 모티브에서 '유령'이라는 공통된 관념을 발견해냈다. 아마도 예술작품이 담고 있는 어떤 것, 작품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는 어떤 것을 유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 역시 '유령의 집'처럼 기대와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장소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고려하는 기대와 예감은 순간적인 놀람이나 비명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우리의 앎 속에 내재하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의 자락, 미세하고 낯선 차이, 아직 다가오지 않고 있는 어떤 것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이러한 것들이 유령의 단서들이라면 전시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유령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청진_괜찮아요! 즐거워요! 행복해요! 2009년 12월 24일 성북동 작업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얼론파티_ 디지털 C 프린트_115×156cm_2010
이재헌_Portrait of Doctor Gachet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06

예컨대, 광모의 사진은 여행화보나 다큐멘타리에서 본 듯한 어느 먼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진 속에는 작은 실루엣으로만 알 수 있는 인물이 달빛 아래의 폐허 속에 홀로 서있다. 또 다른 사진 속에는 멀리 버스 한 대가 앞부분부터 바닥에 처박혀 있다. 이 사고가 일어난 숲의 언저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고요가 감돌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실제의 것인지 아니면 꿈속에서 본 것인지 모호할 정도로 먼 거리를 내포하고 있다. 마치 오래된 기록사진처럼 평면성이 강조되어 있는 이 사진들은 그것들의 장소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강박적인 기억을 불러낸다. 김청진의 사진들은 일상적인 식사가 이루어진 이후의 식탁을 위에서 찍은 것이다. 이 사진들은 마치 미세한 차이라도 기록하려는 것처럼 부분들을 응시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식탁이 여느 다른 날의 식탁과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식탁은 돌아오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은 미래에 다가올 여느 식탁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일상적인, 그러나 끝없이 우리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장소인 식탁이 작가의 시선에 의해 극사실적인 관념으로 추상화되어 있다. 이재헌의 유화는 기법적으로 독특한 필체를 보여준다. 인물이나 건물을 다루는 그의 그림은 흑백의 대비가 강한 형태의 윤곽선과 거의 흐릿하게 생략되어 있는 내부의 묘사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속필(速筆)로 인해 강조되는 대상의 덧없음과 가벼움은 그야말로 그것을 '유령'처럼 보이게 한다. 반대로 이러한 기법은 정확성과 대상에 대한 분명한 기억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는 관객에게 회화적 서사와 연출이 순간적으로 극대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임윤수_My hero_디지털 프린트_150×135cm_2008
한승구_4elements series-sand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
채우승_자락08-4_resin fiberglas_105×90cm_2008

임윤수는 기록사진과 영상을 통해 작가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과거의 기억에 대해 보고한다. 한 인물의 삶을 기억하거나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복잡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화자의 주관적 기억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망상의 개입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독특한 인물의 포트레이트를 완성하고 있다. 한승구의 포트레이트 역시 아주 간단한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인물의 양면성을 가시화하고 있다. 어두운 반사면 위에 놓인 마스크가 그것으로, 마치 깊은 공간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이 이루어져 있다. 마스크가 갖는 특징은 그것이 어떤 표정을 가릴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표정이라는 것이다. 마스크의 표정은 거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신체는 그러한 부재를 강조할 뿐이다. 채우승의 작품들은 부재에 대한 또 다른 예시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석고로 커튼이나 천의 자락들을 재현한 것이다. 오래 전에 사루비아 다방에서 이 작품들이 전시장의 거친 모퉁이나 구석에 전시되어 있던 것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석고는 특유의 비현실적인 백색 뿐 아니라 유럽의 조각들을 모사한 석고상의 모호한 입체감에 대한 기억 때문에 더욱 독특한 재료다. 동시에 이 천 조각들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맥락이 불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전시의 주제와도 연상적인 상호지시를 일으킨다.

김동현_Aldonade City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
변윤희_더 이상 사직공원에는 비둘기가 없다_장지에 혼합재료_53×45.5cm_2010
박선민_one way_알루미늄, 가변설치_2011

김동현은 오토포이 박사의 우주전함이라는 다소 만화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기묘한 회화적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회화의 유희적 측면이 강조된 그의 작품들은 일상적 소재와 비-일상적 관계들 사이를 오가면서 일종의 공작(bricollage)에 가까운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소멸의 물리적 과정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자유분방하고 자동적인 패턴들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곤 한다. 변윤희는 어두운 도시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들을 심리적인 우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동네 어귀나 뒷골목, 번화한 장소들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행동들이 연극적인 동시에 징후적인 단색으로 강조되곤 한다. 박선민은 동일한 인물들을 무대장치처럼 얇은 평면으로 반복해서 전시장 바닥에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도 도시의 공간 속에서 서로 익명의 시선들을 교환하면서 지나쳐가고 있다. 일종의 고립감, 비-육체화, 신경증을 드러내는 제스추어 혹은 시선이 그의 작업에서 엿볼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물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들의 탈-주체적 상태를 가시화하고 있다. 유령은 스스로의 주체로부터 이격(離隔)되어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 관객 스스로 자신의 주체가 자리잡고 있는 위치에 대한 고려를 떠올릴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유령의 집'은 이러한 전시의 수사학적 제안과 맞물려 있다. 관객 스스로 유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유진상

Vol.20111218h | 유령의 집 Ghost Hous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