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이여름展 / iurum / 李여름 / installation   2011_1219 ▶ 2012_0108

이여름_ pm5:30_종이에 연필, 실_21×29.7cm_2011

초대일시 / 2011_1219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1:00am

미엘 MIEL 서울 강남구 청담동 94-3번지 퍼즐하우스 1층 Tel. +82.2.512.2395 www.miel.kr

내 기억으로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 중 가장 낯설게 느끼는 시간대는 오후5시30분. 혼자 있는 집의 창문으로 주황색 그림자가 깊숙히 고개를 들이밀 때다. 내게 어둠은 캄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이다. 시끄럽게 초침이 울리는 적막한 시간이고, 무의미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정수리를 덮는것이다. 불안한 저녁이 창문으로 기어들어올 때, 어스름한 땅거미를 주워 갸냘프게 묶어본다. 오늘은 어둠을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여름_the long, dark tea time (부제: Marco Polo)_양피지 종이, 실_ 12×7×6cm_2011
이여름_paper boat on the vicks (부제:수저위의 바다)_양피지 종이, 컬러 에폭시, 숟가락_ 2011

나는 수저위에서 바다를 보았다. 아프면 수저에 담겨오는 푸른 시럽. 늘 그곳에 배를 띄워 멀리 사라지고 싶었다. ■ 이여름

이여름_see the light_오브제에 펜 드로잉_42×22×21cm
이여름_revisited_하드커버 책_ 26.2×18.1cm_2011

마치 죽은 듯이 웅크린 번데기가 서서히 껍질을 벗고 나방으로 변신한다. 갓 태어난 나방은 아린 속살을 드러내고, 아직 날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하는 연약한 몸을 필사적으로 추스른다. ● 오후 5시 30분, 밝음이 어둠으로 바뀌는 그 순간도 아마 나방의 탄생처럼, 하루 중 가장 연약하고 여린 시간일 것이다. 매일 저녁 새로운 어둠을 맞이하면서 인간은 갓난아기로 다시 태어난다. 육체는 상처받기 쉽고, 자아는 불안하며, 내면을 고립된다. 하지만 그래서 가장 순수한 시간이기도 하다. ● 이여름 작가는 말한다. "내게 어둠은 캄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이고, 나를 보아주지 않는 눈이다." 작가에게 어둠은 이유 없는 두려움이자, 허무함이고, 막연한 소망이면서, 연약한 자아와 마주하고 보호받는 담요와도 같다. 작가는 이러한 어둠이 상징하는 내적인 순수함을 종이와 연필, 찻잔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형상화 한다. 「Revisited」작업을 통하여 작가의 연필은 종이 위에서 끊임없이 사각거리며, 끝도 모를 실타래처럼 끈질기게 어둠속으로 엮여나간다. 서로 겹쳐지는 반투명의 종이 위에서 어둠의 실타래는 마치 조용한 파도처럼 일렁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내면의 생명력은 이러한 어둠을 이기고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회귀한다. 작가는 더 이상 어둠속에 있지 않는다. ● 작가는 「See the Light」를 통하여 미약하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내적인 에너지와 대화한다. 어둠은 종이위에 수많은 선들로 쌓여나가고 그것은 다시 희망과 소망을 상징하는 종이배로 형상화 된다. 이 작업을 통해 어둠은 어쩌면 단순히 캄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불을 밝히는 휘발성 기체이며, 그리움으로 나아가는 작은 종이배인 것이다. ● 종이위에 연필을 끄적거리고, 작은 찻잔 속에 티백을 흔드는 행위는 모두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내면의 아픔을 추스르는 의식행위와도 같다. 작가는 이러한 일상적인 행위를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어둠과 대적할 수 있으며「the long, dark tea time」, 나를 치유할 수도 있다「Paper Boat on the Vicks」. ● 새벽 5시 30분, 이제 어둠이 밝음으로 바뀐다. 하지만 한번 태어난 나방은 결코 다시는 번데기로 돌아갈 수 없다. 단지 벌레였을 때, 고치 안에서의 어둠의 두려움과 치유의 기억만이 나방 주위를 맴돈다. ■ 김인성

Vol.20111218c | 이여름展 / iurum / 李여름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