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연극Ⅱ

아트팩토리 기획展   2011_1217 ▶ 2012_01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217_토요일_03:00pm

참여작가 김주형_김효준_배춘경_서상익 양은주_이경하_장유경_최성석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34번지 헤이리 Tel. +82.31.957.1054 www.artfactory4u.com www.heyri.net

오랜만입니다. 2006년,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했던 『어떤 연극』展. 그 명칭은 그림에 그려진 대상들과 작가와의 관계가 마치 연극 같다 하여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연극을 구성하는 배우들처럼 작가의 연기를 대신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이제는, 작가로서 그림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연극처럼 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른만큼의 나이를 먹었으니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자신을 추스리는 것, 그것이 서투른 연기일지언정 어른의 역(役)을 다하는 것 말이지요. 오늘 그려내는 우리의 그림은 5년 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상을 보는 시선, 특히 대상과의 거리가 변한 것입니다. 보다 추상적으로, 대상-혹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소급해 들어간 이도 있지만, 대개는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편의상 분류로 이전엔 인물화를 그렸다면 이제는 인물도 풍경화의 부분으로 그려집니다. 워낙 무겁게 다가오는 삶의 무게가 이처럼 멀어진 거리감을 낳은 것 아닐런지요. 학생신분을 벗어나 오롯한 개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책임이 사회를, 세상을, 그리고 그 안의 '나'를 자꾸만 객관화시켜 바라보게 했으니까요. 물론 이 '거리두기'는 완벽할 순 없어서 다시금 파도와 풍랑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대상, 나아가 세상과의 거리감은 역으로 우리가 마음껏 작업을 해내게끔 자유를 확보해주기도 합니다. 경제적 효용을 따지자면 조금은 무력한 사회적 위치가, 되려 작업 안에서 그 내용과 맞물린 형식이 더 깊고 역동적인 변모를 꾀하게 돕는다고나 할까요. 홀로된 시간, 스스로를 바라보며 단련된 내밀한 시선은 진지하다가도 장난기가 어리며 종종 도발적일 정도의 새로운 시도를 하게끔 부추깁니다. 그림의 주제나 내용-심지어 작가의 시선과 마인드 면에서, 그와 더불어 그림 자체의 형식적인 실험상에서요. 그림 자체의 감각적인 면에 집중하여 색이 밝아진다던가 터치나 구조의 실험 등이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 등장인물의 성격이 아예 변화하여 그림 속 상황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며 화면을 다채롭게 만드는 식이지요. 물론 그림의 외적인 변화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형식적인 완결성에 대한, 생산자인 작가로서의 책임감도 반영할 겁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변화를 가져온 이면에는 우리가 스스로의 작업과 삶을 보다 깊이 끌어안게 된 애정 어린 마음이 자리할 것 같습니다. 완벽하거나 대단하진 않아도 '나' 안에서의 완결성에 집중하는 것, '나'를 이루는 소소한 일상을 끌어안는 것. 어쩌면 당연한 삶의 태도를 이제야 진정 체득해가는 걸까요.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 작업은 현실도피라기 보단 우리가 살아가는 '사실적인' 일상을 상상의 힘으로 포용하여 견뎌내는 힘을 줍니다. 오랜 공백을 메우려는 마음에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우리 여덟 명의 두 번째 전시를 여는 동시에 또 다음의 세번째 만남을 마음깊이 기약해봅니다. 이만큼을 떨어져 있다가 다시 서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아니기를. ■ 장유경

김주형_logos-무의식의深海Ⅱ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면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길을 통과해야 한다. -T. S. 엘리엇- ● 동굴처럼 끝을 헤아리기 힘든 구멍을 마주하게 되면 한편으론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거기서 속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그 속으로 끌어들이고야 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심리학적으로 개개인의 무의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과 유사하다.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상처나 기억들을 이 무의식이라는 구멍 속에 넣어둔 채 잊은 듯 망각하며 살아가지만 언젠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아야만 하는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이 꺼림칙한 깊은 구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칠흑 같은 구멍 속을 헤치고 나아가야 비로소 자신을 구원해 줄 빛을 만나기 때문이다. ● 분석심리학자인 융은 무의식의 가장 심층부에 '집단 무의식' 이라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인류의 시작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해져 오는 잠재적 기억의 흔적이다. 좀 더 확장된 의미로는 태초(빅뱅의 순간(유물론적 관점) / '빛이 있으라' 라고 신께서 말씀하신 순간(종교적 관점))의 미생물 혹은 그것을 생성하게 했던 미립자인 원자의 핵에서부터 진화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기억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어쩌면 태초부터 전해져 오는 기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나는 그 실낱같이 가냘픈 기억 속에 우리 모두를 구원해 줄 빛과 같은 진리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품었던 수많은 의문들에 대한 답이자, 곧 구원이 될 그것은 억겁의 세월동안 각자의 무의식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김주형

김효준_공포3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9

놀이공원 안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를 그렸는데 그게 꼭 나 같았다. 그리고 그곳의 밤 풍경도 그렸는데 밤 풍경은 한층 더 낯설어 보였다. ■ 김효준

배춘경_MARCELLVSⅡ,SIXTVSⅤ_종이에 펜_각 21×14.8cm_2011

나는 주로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그리거나, 주변의 친구들을 그렸는데, 이천구년 이후로는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지금은 독일에서 직장을 구해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동네 벼룩시장에서 교황록(Das Papstbuch)이라는 오래된 책을 샀다. 지금까지 모든 역사적 교황들의 이미지를 이름과 함께 모아둔 책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북에 제도 샤프로 그렸다. 나는 사람을 그릴 수도 신을 그릴 수도 없다. ■ 배춘경

서상익_이방인을 위한 도시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0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함이 보다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일상이 되기 위해 상상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반복되는 듯 한 일상도 우린 순간순간 다른 상상과 감정, 생각들로 다르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시공간이 존재하는 일상에 상상이 녹아 들며 우린 초현실적인 현실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첫 개인전의 제목 또한 이런 의미에서 '녹아 내리는 오후'라 지었다. ● 요즘 나의 작업은 보다 다양해졌다. 어찌 보면 좀 산만해졌다고 할 수 있으나 개인이라는 관찰의 대상은 여전하다. 달라진 점은 그 개인을 누르고 있는 외부의 힘이나 권력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고, 가장 큰 변화는 작업 속 이야기 구조보다 그림의 형식적인 실험과 구조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풀어 놓는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좋은 그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물론 작업을 하며 끝없이 고민할 문제이고 그 고민에 대한 순간순간의 답이 그 순간 자신의 작업일 것이다. ● 그런 면에서 지금 나에게 가장 좋은 그림은 은밀한 네러티브를 지닌 감각적인 시각의 자극이다. ■ 서상익

양은주_omen_캔버스에 유채_155×194cm_2011

지난 10년간 인물화를 많이 그려왔는데 뭔가 사람이 아닌 것을 그리고 싶어져서 요새는 바다를 그리고 있다. 바다는 결국 소재이고 실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나의 30대와 그 가운데 서있는 불안한 나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나의 30대. 즐겁기도 괴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힘들기도 한 나의 30대.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종착지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없는 어두운 바다의 심상을 신경질적인 터치와 유화의 물성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평생에 걸쳐 사실적이고도 표현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가끔은 혼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하고, 물감이 척척 붙는 날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무한한 희열이 올라오기도 하는 나의 30대를 은유 하면서. ■ 양은주

이경하_painting_캔버스에 목탄, 유채_200×200cm_2011

채워지지 않는 욕망. 정신과 행위의 불일치, 온갖 이념들과 현실의 괴리의 충돌이 가장 나에게 절실한 고민이었다. ●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서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 펼쳐진 벌판, 구름들을 목탄을 재료로 배경으로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이나 건물들을 배치하여 이상과 현실, 영원과 유한, 정신과 물질들의 대립을 표현하려고 해왔다. ● 2008~2009년 이러한 작업들에서는 인물들의 행위는 자연의 배경을 화면의 한 편에 치우쳐 침묵하며 바라보는 다소 소극적인 성격이었으며 작업의 의도 역시 배경으로 표현된 공간과 인물을 섞이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 두고자 했었다. 2010년 이후 작업들에서는 인물들이 단지 바라보거나 내버려 두지 않고, 각자의 노동을 통하여 새로운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물들은 '노동'이라는 행위로 영원 불멸할 자연의 공간 위에 무엇인가 짓고 그리고 만들어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painting)가 끝없는 정신의 바다 속에서 '노동'을 통하여 물질을 만들어내며 그것이 바로 '작품'이라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페인트칠하는 노동자(painting workers)로 표현된 사람들을 작업이라는 행위의 은유로서 표현하게 된 것이다. ■ 이경하

장유경_해변의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70×130.3cm_2011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비 일상의 시간을 소재로 그린다. 사회라는 시스템 속 살인적인 속도와 빡빡하게 짜여진 '해야 할 일' 리스트로부터 벗어나는 시간. 극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즐기는 것에서 등산이나 서핑 등 레포츠를 즐기거나 해변으로 떠나는 것까지. 일상을 벗어난 그 시간과 행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가. 특히 일년 중 매우 짧은 특정시즌에 한꺼번에 많은 인구가 한정된 장소로 몰리는 광경을 볼 때면 자못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 단순히 건강이나 물리적인 휴식뿐 아니라 어떤, 내적인 감동과 환기를 얻고자 우리는 비 일상의 시간에도 한없이 분주한 것 아닐까. 번잡한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 고요함 속에 묵직하게 자신-자아의 무게를 인지하는 가운데 느끼는 보다 숭고한 감동. 그 내면의 일렁임이 비록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충전의 짧은 파장일지라도, 우리는 그 비 일상을 통해 '생활'의 힘을 얻는 것일 게다. 내가 폭풍우나 높은 파도, 때론 위협적인 자연현상을 즐겨 그리는 것은 그 거대한, 자연의 숭고함이 주는 일렁임이 바로 우리가 비 일상 속에서 추구하는 감동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그림 속의 형상은 자연을 재현해낸 것이지만 동시에 흘러내리는 물감이며 손의 궤적을 담아내는 터치이자 색이기도 하다. ■ 장유경

최성석_생태공원_린넨에 유채_97×145.5cm_2010

나의 커다란 테마는 '사회(환경)속 개인의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사회를 맞닥뜨리며 사람들과 주변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나가고, 현대사회에서 부모나 가족과는 상관없이 결국 혼자라는 고독감과 자립적 삶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그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한다. 나는 이러한 지점에 관심을 두고 일상의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촬영하거나 웹 상에서 모아놓은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각날 때마다 읽어 들여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재인식하려 한다. 나의 작업을 형식적 장르로 나누면 현대판 '풍속화'정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테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환경 그리고 어떤 일상적 사건으로 파생되는 '관계와 인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더불어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으로 이미지의 미적 표현자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 최성석

Vol.20111217a | 어떤연극Ⅱ-아트팩토리 기획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