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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21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팔번가 8th street gallery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42-139번지 Tel. +82.2.969.0003
The mob ● LIFE IS FULL OF CONFLICT, WHICH MAKES IT SO BRILLIANT ● 근래에 그리고 있는 작품들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사람의 참 본성은 산속에 있는 개인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집단으로 군중 속에 일부로서 존재할 때 나타난다.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고 나타내려고 하지만 그 근원적인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이 애초에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반증할 뿐이다. 나는 우리임과 동시에 나였다. 늘 그래왔다. 관계성을 벗어난 개인을 난 온전한 인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A PROPER SPOT LIGHT MAKES ANYTHING SAINT ● 마치 trinity_성삼위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모두는 united plurality의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네가 되고 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순간의 쾌감은 축구경기장의 관중석에서, 군가를 재창하는 서열에서, 한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에서, 심지어 말없이 함께 눈물 흘리는 객석에서도 경험되어진다. ● 그러나 내가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군중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군중의 모든 악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개인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관계성이 약화될 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행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군중이면서 개인일 수 있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참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
EVEN THOUGH YOU CAN PROJECT YOURSELF TO SOMETHING, IT DOSEN'T MEAN YOU BECOME EXACTLY THE THING AT ALL. ● 군중, 군중은 어리석다. 군중은 과잉반응하고 군중은 잔인하다. 군중은 책임회피적이고 군중은 단순하며 군중은 보수적이고 군중은 본능적이다. 그러나 군중의 존재를 부정하고 억압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나와 네가 바로 군중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순간 나는 새로운 군중의 하나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어떤 때는 몇 개의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난 군중이 된다. 가족들과 모여 나초를 먹으며 남북공동팀 vs. 미국팀의 경기를 보면 난 참 많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우리팀이 골을 넣을 때에는 축구장에 모인 군중들만큼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내가 어디 있나 생각을 하게 된다. ● 더 나아가 모이지 않고 골방에 있을 때에도 군중의 구성원의 정체가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치 방금 항쟁을 마치고 최루탄에 쫓겨 골방에 숨어들어온 열사처럼 그 정체성이 상당히 오래 나를 지배할 때도 있다. 개인이면서도 군중의 일부인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 난 군중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군중의 의미가 너무 작게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 관계를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 실험을 하고 있는 근래에 난 지나치게 군중이라는 용어에 경도 되어 모든 존재와 정치와 종교마저도 군중이라는 단어로 해석하고 있다. ● 촛불집회, 중동의 소요와 정권붕괴, 북한의 독재, 예술가와 예술계, 목사와 교회, 상징과 해석, 사랑과 믿음, 물질적 욕망과 숭고함 등이 군중이라는 단어로 내가 실험하고 있는 인간본연의 문제이다. ● IF YOU MAKE ME LAUGH, I WILL LAUGH. ■ 이성수
Vol.20111215i | 이성수展 / LEESOUNGSOO / 李聖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