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KKORI 빛을말하다

장경애展 / JANGKYOUNGAE / 張慶艾 / painting   2011_1215 ▶ 2011_1221

장경애_여.우.야.달꼬리_한지에 수묵채색_130.3×16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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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기획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BUPYEONG ARTS CENTER 인천시 부평구 아트센터로 166(십정동 166-411번지) Tel. +82.32.500.2000 www.bpart.kr

명멸하는 도시의 층위를 탐색하다-장경애의 회화 ● 당연하게도 오늘날 회화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통회화니 조각이니 하는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사실 매체가 가진 속성과 특징에만 주목하는 장르 중심의 사고방식으로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다 다양하고 풍요롭게 담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하여 이미 오래 전에 장르 혹은 매체 중심의 구분 짓기는 폐기처분됐다. 단언하건대 현대의 미술(환경)은 장르, 매체 중심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그것들이 가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여하한 재료를 쓰던 간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동시대의 담론을 수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예술의 생명력이 결정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진부해져 버려, 심지어 요즘말로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한 문제가 회화의 기능성 문제이다. 전통회화의 기능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 역시 그러하다. 기실 재료라는 측면에서만 생각해 봐도 그것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맥이 닿아야 한다는 점에서 전통회화의 예술적 생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좋을 터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이 세대에 그렇다면 전통회화는 어디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인가. 거개의 많은 '화백'들처럼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의 예술담론의 지각변동쯤은 짐짓 모른 체하고 자신만의 '고고한 작품 세계'를 고수하여야 할 것인가, 새로운 전통의 창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현대미술의 거센 격랑 속에 몸을 던질 것인가. 숙제다.

장경애_달꼬리pm05:00_한지에 수묵채색_117×91cm_2011

앞서 꺼낸 이야기처럼 장경애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지필묵이라는 전통적 재료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은 전통적이지 않다. 더욱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역시 전통이라는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 장경애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월미도 연작」의 이미지들은 오늘의 인천, 혹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아우르는 기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하나의 그림이 그것을 이루는 수많은 기호로 읽을 수 있다면 장경애의 월미도 연작은 도시라는 유기적 환경체의 부분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코드일 수 있으며, 순환적 시간의 현상이라는 코드로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그가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전통 재료의 역사성이 덧입혀져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사뭇 복잡다단한 양상을 보인다.

장경애_달꼬리pm07:30_한지에 수묵채색_117×91cm_2011

월미도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텍스트에 접근하기 위해 장경애는 그곳에서 도시인들의 삶을 배제한다. 그것은 곧 그가 상정하고 접근하는 그곳의 개념에 대한 시각화 작업이라고 할 만한데, 그의 화면에 드러나는 그곳의 이미지는 공동화되어 인간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게 보인다. 도시는 표상(representation)의 체계다. 그것은 도시가 의미를 지닌 이미지, 텍스트, 사물, 기능들의 체계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도시는 어떻게 우리에게 이해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도시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로서 인식되는가, 혹은 디스토피아로서 인식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한 스펙터클로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표상의 체계를 이해하려면 또 다른 표상의 체계가 있어야 한다. 즉 하나의 표상의 층위 위나 아래에 또 다른 텍스트나 이미지, 담론이 이루는 메타의 층위가 있어야 표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느 정도 완성된다. 결국 도시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표상의 체계들, 태도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며,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도시를 그린다는 행위조차도 도시에 대해 어떤 흔적을 남겨서 그 의미의 파장에 영향을 준다.

장경애_달꼬리pm08:00_한지에 수묵채색_194×130.3cm_2011 장경애_달꼬리pm08:30_한지에 수묵채색_194×130.3cm_2011

장경애는 월미도라는, 인천의 대표적인 유원지 내지는 역사적 공간을 텍스트로 규정하고 그것의 표상을 읽어내는 작업을 근대와 탈근대가 혼재된 양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작업은 도시라는 유기적 환경에 대한 일종의 규정짓기로서, 그것을 마치 폐허처럼 보이는 기념비라는 모순적 의미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월미도는 유흥과 소비, 박제된 낭만, 수출의 전초기지, 전쟁의 상흔을 여전히 간직한 교차적 텍스트인 바, 그의 최종적 선택은 월미도를 하나의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즉 화려한 유휴공간으로서의 월미도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허상적 측면에 주목하여 명멸했다가 사라지고 마는 실체 없는 가상의 공간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가 도시 공간에 빗대어 제시하고 있는 월미도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존재했다가 곧 사라지고 마는 스펙터클로서 인식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의 도시가 가진 복합적·무계통적 속성에 기인하는데, 장경애는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존재하는 않는 부재(absence)를 시각적으로 현존(presence)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회화의 기능성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경애_달꼬리pm11:30_한지에 수묵채색_130.3×194cm_2011
장경애_달꼬리pm11:00_한지에 수묵채색_194×130.3cm_2011

이쯤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러한 그의 관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장경애는 수묵이라는 재료로 도시의 성격을 형상화하고 있다. 알다시피 수묵은 그 자체로 전통, 사의성(寫意性), 관념성 등 여러 층위를 떠올리게 하는 복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여러 성격들과는 별도로 장경애는 수묵을 도시적 감각을 표상하는 단순한 재료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즉 곳곳에서 보이는 발묵, 찰필과 같은 기법은 스펙터클로서의 도시를 재현하는 유력한 기표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근대와 탈근대의 혼재 공간이라는 월미도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전근대적 재료로 탈근대적 도시 공간의 복합적 성격을 표상하기, 근대적 함의들로 가득 찬 텍스트를 전근대적 재현 방법을 벗어난 방식으로 표상하기. 이들은 모두 도시공간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루는 순환적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장경애의 도시를 함께 부유해도 좋을 듯하다. 회화가 도시를 표상한다는 것은 고체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양자 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장경애가 탐색할 도시와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와의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 박석태

Vol.20111215c | 장경애展 / JANGKYOUNGAE / 張慶艾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