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상_10인의 지평

Korean Abstract Painting_10 Perspectives展   2011_1214 ▶ 2012_02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남관(1911-1990)_김영주(1920-1995)_하인두(1930-1989) 김환기(1913-1974)_유영국(1916-2002)_이성자(1918-2009)_류경채(1920-1995) 곽인식(1919-1988)_정창섭(1927-2011)_윤형근(1928-2007)

관람시간 / 10:00am~08:00pm / 토,일,공휴일_10:00am~06:00pm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서소문동 37번지) Tel. +82.2.2124.8800 www.seoulmoa.org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20세기를 풍미했던 추상 미술은 이제는 그 동력을 소진한 듯 보인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시대로 일컬어지는 20세기 후반 이후로 새로운 세기의 첫 10년을 보낸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는 재현(再現) 미술도, 재현을 거부한 추상(抽象) 미술도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재현 미술을 뒤엎은 추상 미술이 이젠 새로운 형태의 재현 미술에 의해 재(再)전복되고 있기까지 한 것이 현재의 미술 지형도다. 한때를 풍미했으나 이젠 과거 시제가 되고 있는 추상 미학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인가? ● 지난 세기 "새로운 미술"로 떠올랐던 "추상"은 새로이 현대를 시작한 한국의 현대 미술과 동일어에 다름 아니었다. 한국의 추상 미술은 초기에는 일본을 통해 서구의 전위적인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싹을 보였으나 해방과 곧 이은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그 추진력을 상실했다, 전후 시기에는 전쟁 세대 작가들의 심리적, 미학적 공통 언어인 앵포르멜 미술Art Informel을 받아들이면서 급격히 진전했고, 이후 여러 갈래를 형성하며 그 지평을 넓혀갔다. 추상은 20세기라는 새로운 세기의 새로움의 미학이자 시대정신이었으며, 한국 미술을 앞장서서 현대로 이끈 그야말로 전위(前衛), 아방가르드였다. ● 『한국추상_10인의 지평』전은 척박했던 시대 한국에서 추상을 일구어내고, 평생의 지난(至難)한 조형적 여정을 통해 보다 완성된 추상을 향해 나아가 그 종국의 작품세계를 추상으로 끝맺은 10인의 작고한 한국 추상 작가들에 관한 전시다. 올해로부터 100년 전 태어난 남관(1911~1990)으로부터 시작해 그 100년 뒤인 올해 작고한 정창섭(1927~2011)까지 한국의 추상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켜나간 10인의 역사는 고스란히 한국 추상 회화 100년의 역사가 된 셈이다. 2011년 이들의 추상 세계를 고찰해봄으로써, 이들 10인의 작고작가들에 의해 한국 추상 미술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그 지평을 넓혀 갔으며, 그 다양한 지평 위에서 만들어졌을 새로운 현대미술의 지형들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추상의 이들 10인의 작고작가들의 작품세계는 한국 추상의 가장 "한국적" 주제들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그 고찰의 의미가 남다르다. 이들에 의해 서양에서 유입된 서구 미술의 한 갈래로서의 추상이 아니라 한국의 시대 상황, 한국인의 정서적 심리적 토대, 한국의 사회사적 예술사적 전개 상황 등이 한 데 녹아난 "한국적" 추상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한국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간人間을 보았고, 한국인의 정서, 동양적 자연관 속에서 자연自然을 그려냈고, 한국의 사회 및 예술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물질에 눈을 돌렸다. 이것이 이들 10인의 작가가 만들어낸 한국적 추상이다. 대상의 해체로부터 시작되는 대상의 점진적인 추상화(抽象化)라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추상 개념으로만 정의하기에 한국의 추상은 "한국적"인 특성들을 무수히 내포하고 있다. 이 전시는 10인의 작고작가들에게서 서양 미술로서의 추상이 아닌 "한국 미술"로서의 추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했다. 인간人間을 보다 ● 전쟁 세대로서 남관, 김영주, 하인두는 전쟁이 가져온 비극적 체험, 부조리한 현실 상황, 개인적 불행에 따른 인간적 고뇌, 고통과 그 극복의 지난한 여정을 "인간"을 주제로 한 추상 세계로 풀어냈다. 이들은 전후 앵포르멜의 감정의 격정적 표출을 통한 비정형적 조형 실험들을 넘어서 보다 심도 깊게 인간의 고통, 실존을 탐구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인간적인 추상을 끌어냈다. 남관(1911-1990)은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로서 개인적, 집단적 비극의 체험을 앵포르멜 미술과 조화시킴으로써 특유의 비정형적 화면의 독자적인 추상 양식을 구축했다. 나아가 그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금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끄집어냈고, 이를 특유의 인간 형상을 한 문자추상으로 전개시켰다. 김영주(1920-1995)는 "신화시대"라는 특유의 제목 하에 1950년대 전후(戰後) 한국 사회가 처한 인간적 실존에 대한 뜨거운 인간적 감정을 굵고 격렬한 붓질로써 드러낸 반추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 이후로는 실존적 고민이라는 무거운 주제에서 탈피해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질, 삼각형, 원, 점 하트형 같은 그만의 특유의 상징적인 기호들로 가득한 인간 본연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유희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추상으로 나아갔다. 이는 부조리한 현실을 뚫고 견뎌낸 한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찬사와 환희를 보여준 인간에 대한 추상이다. 하인두(1930-1989)는 불행한 개인사로 인해 1960년대 후반 무렵부터 어둠을 뚫고 뒤틀리듯 서서히 솟아오르는 내면의 고통과 고뇌에 찬 응어리를 만다라, 묘환 등 불교 철학의 시각적 형상들로 이루어진 옵아트op art적인 추상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만년에는 병마와 싸우는 나약한 인간 존재로서의 고통 속에서 혼신을 태워 발한 빛과 같은 밝고 경쾌한 특유의 색채 추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자연自然을 그리다 ● 한국 추상을 서구의 합리적 경향의 추상의 영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自然"에 있다. 김환기(1913-1974)는 산, 달, 매화, 항아리 등 한국적 자연을 모티브로 고도로 절제된 구성의 한국적 정서의 추상을 보여주었으며, 1970년에는 작은 네모꼴의 테두리 지어진 점들을 반복적으로 찍어나간 점화(點畵)라는 특유의 추상으로 나아갔다. 점화 추상은 자연의 이미지를 떠난 완전 추상인 동시에, 오히려 자연에서 출발해 종국에는 자연에로 우주에로 되돌아간 추상이다. 유영국(1916-2002)은 초기에 기하학적 추상을 시도했으며 1950년대 이후로는 "산"이라는 모티브로 특유의 기하학적 추상을 꾸준히 지속했다. 그에게 산은 고향의 산인 동시에, 하나의 조형요소이자 화면 구성의 중심 요소였다. 그는 일찍부터 형태와 색채라는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요소에 평생을 고집스럽게 천착해 독보적인 기하학적 색채 추상 세계를 개척했다. 일찍이 파리로 건너가, 추상의 본거지인 유럽 땅에서 독특한 추상 세계를 구축한 이성자(1918-2009)는 여성으로서의 대지적 포용력으로 일생의 추상 작업에 "자연"을 관통시켰다. 그는 여성작가로서 여성-어머니-대지-자연-우주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평생을 추상에 매달리면서도 자연을 떠난 추상이 아닌 자연과 동행하는 특유의 추상 세계를 일구어냈다. 류경채(1920-1995)는 구체적인 자연의 이미지에서 추상화 과정을 거쳐 점차 비구상의 관념에 도달했다. 그의 추상은 외부의 자연을 명상적인 눈과 내면을 통해 걸러낸 결과로서 높은 서정성을 담고 있는 서정적 추상으로 일컬어지며, 1970년대 후반의 색면 추상에서까지 그의 추상은 보다 포괄적인 자연의 개념, 범자연주의로 귀결된다. 김환기, 유영국, 이성자, 류경채의 자연은 각자의 눈과 정신으로 걸러졌으나 그 공통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은 단 하나의 길, 추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고향이자 이상향이었으며, 그들의 추상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물物의 언어를 듣다 ● 1960년대의 한국 미술계의 집단적인 조류였던 앵포르멜 추상의 열기가 식어가고, 이를 극복한 자리에 1970년대 한국 추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인 "단색화[단색평면회화]"로 일컬어지는 모노크롬 추상이 나타났다.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가 "회화"의 매체의 속성, 즉 "이차원의 평면"이라는 자기 형식에 충실함으로써 종국에는 일말의 이미지마저 제거되고 난 텅 빈 캔버스만으로 남은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보다 물(物)적인 측면이 강조된 모노크롬 회화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는 한국의 개념미술가의 사물에 대한 실험에서 영향 받아 "물성物性에 대한 감성"과 "사물을 통한 자연에의 회귀"라는 개념을 계승했다. 곽인식(1919-1988)은 일찍이 1960년대 물성에 주목한 일본 모노하(物派)의 선구로서, 1970년대 일본과 한국의 개념미술가들의 물질적 실험에 영향을 끼쳤다. 종래에 관심을 두었던 유리, 돌, 철판 등 닫힌 구조의 물질에서 벗어나 1970년대 초부터는 안과 밖, 표면과 이면의 구분이 없는 열린 구조로서의 물질인 종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종이에 무수한 점을 찍은 채묵 작품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물질[物]에 대한 일생의 관심이 "종이"와 "물감[색채]"이라는 물질을 통해 "빛"으로 이루어낸 만년의 결과로서의 추상이다. 정창섭(1927-2011)은 종이, 정확하게는 닥〔楮〕이라는 물(物)을 손으로 매만지는 행위와 그 행위를 통해 물질이 자신을 말하도록 함으로써 물아합일(物我合一)에 이른, 물질과 행위로 이루어진 추상 화면을 보여주었다. 윤형근(1928-2007)은 테레핀 유를 다량 섞은 묽은 안료를 밑칠 하지 않은 캔버스 천에 "물감 번지기" 기법으로 모노크롬에 가까운 독특한 추상 화면을 만들었다. 이는 모든 이미지와 작위적 행위를 부정하고 회화 본래의 물질적 실체, 즉 물감으로 대변되는 색채와 캔버스 천이라는 회화의 물적 요소로써 추상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 서울시립미술관

남관_변형된 형태_캔버스에 유채_1968
김영주_신화시대_한지에 먹_1970
하인두_혼불-빛의 회오리_캔버스에 유채_1989

섹션 1 : 인간(人間)을 보다 - 남관(1911-1990) 김영주(1920-1995) 하인두(1930-1989) 전후(戰後) 정서적,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한국 사회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쟁의 비극적 체험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는 인간존재의 형상을 끌어낸 남관, 부조리한 현실 상황에 처한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 김영주, 개인적 불행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빛으로 화한 색채 추상으로 보여준 하인두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간에 관한", "인간적인" 추상 세계를 보여줌

김환기_무제 31-III-70 #162_코튼에 유채_1970
유영국_Work_캔버스에 유채_1967
이성자_음에서 양으로, 6월, 7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5
류경채_비원 悲願 '80-2_캔버스에 유채_1980

섹션 2 : 자연(自然)을 그리다 - 김환기(1913-1974) 유영국(1916-2002) 이성자(1918-2009) 류경채(1920-1995) 한국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국적 정서를 통해 여과된 자연에 대한 감성에서 비구상의 완전 추상으로 나아간 김환기, 기하학적 색채 추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유영국, 여성작가로서 대지적 포용력을 가지고 자연과 동행한 추상 세계의 이성자, 명상적인 눈과 내면을 통해 걸러낸 자연으로서의 범자연주의적 추상 세계를 보여준 류경채는 "자연과 추상의 결합"을 통한 가장 "한국적인" 추상 세계를 보여줌

곽인식_작품 81 H_종이에 수묵채색_1981
정창섭_묵고 21605_캔버스에 닥_2001
윤형근_Burnt Umber-Ultramarine "93-67_리넨에 유채_1993

섹션 3 : 물(物)의 언어를 듣다 - 곽인식(1919-1988) 정창섭(1927-2011) 윤형근(1928-2007) 한국인의 정신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온 1970년대 한국의 단색평면회화(단색화)는 정신성을 논하기 이전에, 70년대 개념미술가들의 영향 아래 종이, 물감 등의 물질(혹은 물성)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한국적 추상의 한 축을 형성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선구자로서의 곽인식, 종이를 통해 물질(物)과 나(我)와의 합일을 추구한 정창섭, 일체의 작위적 행위나 이미지를 제거하고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질로써 가장 기본적인 회화 세계를 보여준 윤형근 등은 물질적 요소를 통해 독특한 한국적 추상 세계를 보여줌

Vol.20111211c | 한국추상_10인의 지평-Korean Abstract Painting_10 Perspectives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