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210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실존'의 꽃에 관한 시론(詩論) ● 꽃은 문학적 서정성과 상징성, 신화적 기원을 함의하고 있는 주제이다. 따라서 꽃을 그린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 역사가 지나온 고단한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의 환희와 기쁨을 증언하고 음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꽃의 조형에는 깊고 확장된 세계가 드러나며 그 속에서 작가는 꽃에 자아를 이입하거나 의인화함으로서, 자신의 삶과 세계에 관한 성숙한 인식과 성찰의 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윤형선의 예술세계 또한 꽃으로 증언하는 세계로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꽃은 그것 자체의 형상을 간직하고 하나하나의 풍부한 생명의 표정으로 가득하다. 거대하게 확장된 꽃은 현실의 꽃보다 드라마틱한 감성의 움직임을 끌어낸다. 작가가 구현하는 한국화 재료와 기법의 농익은 사용과 밀도 높은 구성은 깊고 넓은 사유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안료의 번짐과 스며듦은 여백과 형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뚜렷한 꽃의 형상과 번져오는 여백의 유기적인 길항관계(拮抗關係)를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화면은 깊고 고운 발색을 보여주며, 인간의 숨소리와 같은 생명이 넘나드는 살아있는 꽃의 세계로 완성된다. 그 확장된 세계에서의 유기적인 번짐과 스며듦에서 꽃의 본질, 생명의 본질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마치 클로즈업된 인물사진처럼, 인간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본질적인 내면의 굴곡진 감정의 흐름처럼 말이다. 따라서 단순화되고 증폭된 작가의 꽃은 꽃 자체의 형상을 벗어버리고 부드럽고 여린 속살을 드러낸 본질의 꽃이며 '실존'의 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꽃은 꽃이기 전에 작가의 시선을 관통하고 있는 삶과 생명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이며, 작가가 지나온 삶의 표정, 존재론적인 실존의 모습들인 것이다. 작가는 전작(前作)에서 햇빛에 반사된 꽃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의 꽃을 보여주었다. 이 꽃은 꽃잎이 번져 여백을 메우고 공간 속에 꽃이 함몰되거나 체화(體化)된, 산란하는 검은빛 우주적 공간에서의 꽃이었다. 사실, 작가의 예술세계는 빛의 산란을 통해 드러내는 꽃의 모습들에서 비로소 꽃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빛 속에 존재하는 꽃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조형은 확장된 하나의 꽃으로 그것 자체에 주목하고 우리 곁에 문득 다가선 실존의 꽃으로 정립되고 있다.
작가의 증폭되고 구체화된 꽃의 완성은 서구 인상주의자(Impressionist)들이 물에 산란된 햇빛의 찰나적인 순간에 포착된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조형화한 것과 닮아 있다. 이것은 짧은 순간에 포착된, 문득 깨달음으로서 다가온 꽃으로서, 사실상 돈오(頓悟)와 같은 종교적 깨달음과 같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인식과도 동일한 것이다. 또한 물이 세계의 본질을 열어주고 인류의 기원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시적, 문학적 매개체라고 본다면, 물속에서 번져나간 윤형선의 꽃은 자기 성찰적이고 함몰된 정신의 사유의 단계에서 도달한 꽃이다. 또한 그 꽃은 재료의 겹침과 깊은 발색에서 경험하게 되는 초월된 정신의 자유 즉, '유(遊)'와 같은 동양사상의 근간을 기저로 새롭게 잉태한 꽃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본질을 함의하고 있는 실존의 꽃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단상의 반영물인 듯하다. 작가의 지나온 화작(畵作)들은 인간소외, 불안과 같은 어두운 주제들에서 근작의 확장된 꽃 시리즈(꽃-내다보다)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을 통한 밝은 세계로의 나아감이나 탈출의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로소 사뿐히 고개를 들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몸짓을 보여주고, 꽃에 작가의 시선을 이입시키며 세상과 삶에 관한 희망과 꿈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실존주의(實存主義)가 인간을 근본적인 자기소외의 존재로 인식하고, 소외된 인간성의 회복, 자기탈출과 초월을 시도하고 그것의 방법적 모색을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작가의 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앓고 있는 소외와 불안, 삶의 긍정적 방향정립을 위한 극복으로서의 여정에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문득 다가온 꽃, 종교적 깨달음과 장자(莊子)적 초월의 사유가 담긴 꽃으로 완성되고 있다. 풍부하고 화려한 가운데 자신의 몸짓을 잃지 않는 고요한 꽃, 윤형선의 감성의 울림이 있는 고운 꽃의 세계는 인간과 세상을 향한 사유와 그것의 극복과 초월을 향해 도달한 성숙한 정신의 결과인 것이다. ■ 박옥생
Vol.20111210j | 윤형선展 / YUNHYUNGSUN / 尹螢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