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믿지 마세요

스페이스K_광주-개관展   2011_1207 ▶ 2012_0206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구본석_권선_김지은_김초은_박발륜 박종빈_서영덕_손문일_전윤조_천성길_최형섭

주최 / 코오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K_광주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460-17번지 2층 Tel. +82.62.370.5948 www.kolon.co.kr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 이래로 미술의 재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다. 불타서 남은 숯이나 죽은 동물의 피, 식물에서 채취한 안료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재료를 사용해 동굴벽화가 그려졌다면 중세시대에는 교회나 성당을 장식하기 위해 유리나 금속, 타일 등을 사용해 모자이크화,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작되었다. 또한 달걀노른자에 안료를 섞어 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템페라 기법을 거쳐 발명된 유화물감은 현재에도 회화의 주요 재료로써 사용되고 있다.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과 예술가들의 도전적인 시도는 미술 재료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켰으며 현대미술에서는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져 그 어떠한 것도 거부감 없이 미술의 재료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재료의 다양성은 현대미술,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예술가를 믿지 마세요』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재료에 초점을 맞춰 전통적인 것과 차별화된 재료가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어떻게 조우하는지 주목하는 전시이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결코 미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없을 것 같은 비즈, 금박, 라인 테이프와 시트지, 철가루, 풍선, 금속체인, 등의 재료를 사용하며 창작의 원천을 '재료의 다양성과 독특한 재료' 에서 찾는 참여작가들은 재료의 일상성을 넘어선 작품을 제시한다. 이들은 재료의 특성을 치밀하게 연구하지만 그 흔적을 교묘하게 감추며 재료와 그 결과물인 작품과의 연결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종의 눈속임 같은 일루전(illusion)을 창출하며 독창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재료의 기발함에서 시작된 예술가의 유쾌한 '시각적 사기행위' 에서 그들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다.

구본석_The City_혼합재료_181.8×260cm_2011

구본석은 액세서리나 인테리어의 소재로 사용되는 비즈(beads)를 캔버스에 촘촘히 박아 대도시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직접 찍은 사진이나 수집해온 자료 사진을 기반으로 서울, 맨해튼 등 유명 도시의 모습을 소재로 하지만 작품에는 그 도시임을 알 수 있는 요소들이 남아있지 않다. 작품에서의 도시는 밤의 어두움을 가리고도 남을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되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성공, 쾌락 등 본능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또한 비즈가 하나하나 모여 직선으로 빽빽하게 구성된 획일적인 형태의 건물들은 숨 쉴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며 정체성을 존중 받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모습을 대변한다. 구본석은 이러한 도시의 풍경을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의미나 가치의 측면에서는 텅 비어있는 '비즈' 라는 재료로 표현해 대도시의 풍경이 부여하는 화려함과 허탈감의 이중적 감성을 전달하며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권선_About shatter_벽면에 금박, 핸디코트, 크래클 미디엄_각 230×260cm_2011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공간의 벽 그리고 그 위에 칠해진 페인트는 벽체와 하나가 된 것 같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에 의해 변색되고 습도와 온도에 반응하면서 벽체로부터 균열을 내며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벽이라는 콘크리트가 가진 본질적인 특성에 가까워진다. 권선은 벽과 페인트가 갖는 관계 및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페인트, 금박, 핸디코트의 재료를 사용해 형상을 만들고 뜯어내는 행위를 통해 표현한다. 벽에 얇게 부착된 그의 작품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벽의 일부로서 혹은 벗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껍질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마치 인간의 일부분이면서 몸의 외부에 잔존하는 피부, 표피와 유사하다. 또한 권선의 작품은 이데올로기 안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페인트로 칠해버리며 가리고 그 위에 화려한 가면을 덧입지만 결국 그 껍질은 유약하여 떨어져나가고 깨어지는 우리의 현실을 보는듯하다. 그의 작품은 그것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했던 잔재들이 전시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그 외연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며 어떤 상황으로 소멸되는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김초은_노트르담 대성당2_캔버스에 철가루_130×162cm_2011 김초은_쾰른대성당_캔버스에 철가루_162×130cm_2011 김초은_노트르담 대성당1_캔버스에 철가루_162×130cm_2011

김초은이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철가루는 영원불변하는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습기가 차면 녹슬고 변화하며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특성을 지닌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가 가진 특징을 작품으로 옮겨와 개인의 기억을 녹이 스는 듯한 아련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초은이 표현하는 대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건축물이지만 이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다리나 창문이 없거나,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본래 기억이란 주관적이지 않은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나의 기억과 상대방의 기억이 항상 같을 수는 없고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불일치 속에서 때로는 갈등하며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금속의 차가운 재료인 철가루는 작가의 손길을 거쳐 온기를 머금게 되고 부식되며 주변을 변화시킨다. 그 과정을 통해 작가의 아프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과거의 추억으로 변화되고 상처는 치유 받게 된다. 김초은의 작품은 전시장에 설치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의 작품은 계속 녹슬며 본래의 모습과 조금씩 멀어져 가는데 이는 마치 우리의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릿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김지은_진개덤프_시트지, 프린트 콜라주_280×580cm_2011

김지은은 라인테이프와 시트지를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해 평면에 공간감을 부여하며 입체감을 전달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는 일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고 따라서 작품이 전시장에서 설치되는 기간만 존재하며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는데 이러한 재료의 특성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들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김지은은 미국에 살면서 직접 관찰한 주택건축과 이들의 근교화, 탈 도시화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예시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되는 규격화된 상품처럼 주택도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미 만들어진 부품들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돌아온 참전용사들을 위해 공급된, 경제적 실용성만을 강조한 조립식 주택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러한 주택은 미국 내에서 확산되었는데, 작가는 영구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거의 주택건축이 아니라 소모적이며 일회적인 성격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부유한 계층은 집을 쉽게 버리고 더 좋은 곳으로 떠나고, 남아있는 도시의 빈민들로 인한 범죄증가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김지은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건물들이 쓰레기처럼 덤프트럭에 실려서 버려지는 모습을 시트지 같은 일회적인 재료로 표현함으로써 비록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만연한 발전과 효율성의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박발륜_Reminiscent_우레탄 p.v.c sheet, 기계장치_140×500×100cm_2011

박발륜은 풍선, 우레탄 등의 재료로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채 기본적인 욕망에 만족하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삶을 변종된 개의 이미지로 표현해 은유적인 비판을 하고(Lost in Reality),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환원하는 기회를 만들어 사회에 대한 예술실천운동을 제안하는 등(Do Do Project) 사회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개선점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예술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박발륜이 선보이는 작품은 약 30초 간격으로 느리게 수평운동을 반복하며 풍선 천을 밀고 나오는 스틸로 된 원형체가 얼굴로 바뀌는 모습을 하고 있다. 5m 크기의 이 작품은 원형의 물체가 서서히 밖으로 나와 얼굴 형상이 강렬하게 드러났다가 다시 뒤로 후퇴하여 텐션을 약화시키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작가는 인간의 삶에서 사회적 얼굴과 개인적 얼굴이라는 두 가지 모습이 뒤바뀌는 현상과 인간본연의 욕망을 우의적으로 표현하였다.

박종빈_Untitled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5×140cm_2011 박종빈_Looking at Him_종이, 흑연가루_275×180×90cm_2007

흑연을 소재로 작업하는 박종빈의 작품은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의 불일치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갖는다. 그는 독일산 사역견使役犬)인 도베르만(Dobermann)을 3미터 크기로 만들었는데 작품의 규모와 도베르만이 갖는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것의 재료는 종이의 일종인 카드보드이고 그 위에 흑연이라는 다소 의외의 재료로 표면을 곱게 칠했다. 흑연은 겉으로 보기에 단단한 강철처럼 보이지만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재료의 외적인 측면은 내적인 특징과 연결되지 않는데 거대하고 육중한 금속소재로 보이는 외부와는 달리 조각의 내부는 실제로 텅 비어있어 작품은 이중성을 부여 받게 된다. 박종빈은 표면에서 비롯되는 불일치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표현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갖는 이중성, 즉 사회적 자아와 내적 자아는 일치하지 않고 그것이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표면인데 작가는 흑연이라는 재료 본연의 특징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표면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서영덕_중독-묵상 1_금속체인_230×190×180cm_2011 서영덕_감염-번뇌 3_금속체인_85×85×65cm_2011

서영덕은 쇠붙이를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녹이고 이어 붙여나가는 전통적인 조각제작 과정을 통해 인체라는 오래된 주제를 표현한다. 그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입을 굳게 다물거나 눈을 감고 있는 등 무표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포즈 또한 구도자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고 머리나 다리가 없거나 가슴이 절개되어 있는 등 파편화된 신체의 모습이다. 서영덕은 절망과 고통이라는 삶의 무게를 금속 체인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이를 하나하나 녹이고 뭉뚱그려 용접해가며 직조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엄청난 노동력이 동원되는 반복의 과정 속에서 그는 불투명하며, 절망적인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30대 남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깊은 침묵 속에서 삶의 무게를 힘겹게 감당해내고 있지만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비교적 단단하고 견고하게 표현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손문일_관계 1_패브릭에 혼합재료_182×55cm_2011 손문일_관계 3_패브릭에 혼합재료_187×47cm_2011 손문일_관계 4_패브릭에 혼합재료_173×81cm_2011

손문일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상, 의자 등의 사물을 평면에 그린 후 각도에 맞춰서 자르고 무늬목을 입힌 뒤 음영을 칠하는 방법을 사용해 입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차원의 평면인, 재현이 가진 환영의 속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최근 작업에서 그는 딱딱한 사물 대신 옷이나 천을 사용해 양복의 거친 질감, 부드러운 천의 흘러내림, 천이 형성하는 다양한 주름 등 소재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손문일은 양복이나 드레스를 입은 인물의 얼굴이 기하학적 형태와 결합하며 낯설고 기이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일견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다양한 이미지들로부터 선택과 결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품은 여전히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원소의 결정체라던가 회화의 기본인 붓질 같은 본질적 측면을 내재하고 있고 또한 평면이지만 3차원의 환영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는 지속되고 있다. 대상은 변형되었지만 본질과 또 다른 본질을 결합해 작가 스스로 새로운 대상의 본질을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 본질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안에서 자유롭게 유희(遊戱)하는 작가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전윤조_머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_검은 면사, 철사_300×210×210cm_2011

두꺼운 면사를 재료로 사용해 일일이 실로 엮어 형태를 만들어 내는 전윤조의 작업은 제작과정과 설치의 과정에서 모두 반복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청력장애가 있었고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러한 시간 덕분에 작가에게 반복의 작업은 익숙하고 작가는 그것이 선사하는 특별한 가치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끊임없는 몸의 움직임, 이를 통해 제작되는 작품들, 그리고 이들이 구성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반복되는 형상 안에서 차이를 생성한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청력이 손실된 사람으로서의 심리적 경험이 견고함과 진실성이라는 향기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머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에서의 인물은 기존의 면사를 검정색으로 염색한 것인데 이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는 전시공간과 대비되는 색깔로 공간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미적 장치로 제시된 것이다. 작품에서는 각기 다른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공중에서 부유하는데, 일률적으로 매달린 인물들은 획일성과 규율을 강조하는 사회 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천성길_티팟 강아지-갈색 바둑이_유리, 우레탄, 혼합재료_18×12×10cm_2010 천성길_냉장고에 들어간 코끼리_냉장고, 합성수지, 아크릴컬러_172×57×57cm_2010

냉장고, 페트병, 티포트 등 실생활의 오브제를 재료로 사용하는 천성길의 작품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 혹은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전통, 관습, 정치, 언론 등의 시스템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데, 작가는 개인이 시스템 안에 예속되어 있으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시스템의 운용에 필요한 하나의 개체로 전략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가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광고에서 차용한 것인데 TV, 잡지, 인터넷 등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광고는 우리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며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천성길은 이러한 시스템과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인간이 건강을 위해 마시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우유대신 우유팩 이라는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은 개인의 자유가 시스템에 종속된 상황을 은유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며 풍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대신 방울에 고양이를 넣어버리는 등 특유의 기지와 유머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의 모습도 표현한다.

최형섭_Trophyplaster resin plexiglass_105×105×7.5cm_2010 최형섭_Hunting Trophy bk 1_leather styrofoam, 혼합재료_70×90×56cm_2009

최형섭은 개의 다양한 흉상을 제작하며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는 포유류 중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면서 복종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에 개는 인간의 사냥을 돕거나 가축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되거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관계로 변화해왔다. 이렇게 개가 반려동물로 변화해가면서 인간은 개의 품종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교배하거나 주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옷을 입히고 애견대회를 개최하는 등 개의 삶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변질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반려동물로 키워지지만 경주용으로 사용되는 대표적 명견인 그레이하운드(Greyhound)를 선정해 박제와 같은 흉상으로 제작한다. 작품에 나타난 그레이하운드는 겉으로는 매끈하며 화려한 장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는데, 이러한 이중적 표현은 개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또한 장미의 패턴을 작품에 응용하는데 장미도 인간에 의해 수많은 변종이 만들어진 생물체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장미의 품종들은 아름다움을 위한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산된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개와 연결지점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영광, 승리를 상징하는 트로피라는 기념비적 상징으로 표현하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인간의 탐욕 그리고 이로 인해 희생당하는 존재들을 환기시키고 있다. ● 전시되는 작품의 재료뿐만이 아니라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도시에서의 삶, 동물, 유명 건축물, 얼굴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 작가들은 일상적인 재료와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무지함, 이기심, 이중성, 욕망, 탐욕이나 혹은 아련한 기억, 사회의 소수자로서의 심리적 경험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왔거나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작품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밀착되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우리의 사고를 일상을 넘어선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끈다. 작가들이 선택하여 연구한 일상적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은 놀라운 테크닉과 상상력으로 유머와 시각적 착시라는 유쾌함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작품에는 우리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최지아

Vol.20111210i | 예술가를 믿지 마세요-스페이스K_광주-개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