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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20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안정민 근작 목판화의 열린 가능성 ● 최근 한국목판화는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볼록판화' 혹은 'Wood-cut Print'라는 고유명사화 된 재료와 기술의 한계에서 일탈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극사실의 기법, 전통동양화의 조형적 특성을 수용한 경향, 수성목판화, 평판목판화, 입체, 설치, 혼합기법, 아티스트 북 등으로 판각법, 재료, 프린팅의 방법, 소통방식, 장르개념 등에 있어서 성취한 혁신은 전통과 현대적인 맛과 멋을 융합해서 한국목판화를 세계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듯싶다. 이런 외적인 양식의 확산과 함께, 한편으로는 작가의 서사와 내면적 서정을 드러내는 내밀한 어법에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농축된 세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안정민의 근작 목판화들도 이런 흐름들 속에서 독자적인 궤적과 성과를 보여준다. 제판과정에서는 여전히 볼록판화 기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거기에 대담한 몸의 호흡을 실어내는 호방한 칼의 원초적 액션과 흔적의 표현성은, 밑그림을 묘사해 내는 전통적 판각법의 소극성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이다. 밑그림에 기대지 않은 채 칼과 판면의 즉물적 만남에서 견인해 내는 기운은 예전의 목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동성을 띈다. 작가의 신체가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베니어판면(Ground)에 옥죈 칼을 휘둘러 긋고, 깎고, 파내고, 뜯어내는 행위들은 판화라는 간접표현 장르에서는 보기 드물게 직접적으로 작가의 몸짓을 수용하고 반영해 낸다. 이 판화들을 부분적으로만 본다면, 액션페인팅 회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거기엔 폭포라는 간단한 형상과 무브먼트의 바탕에서 즉흥적이고 무작위적인 칼의 운용과 나무판면의 만남이 빚은 추상적 표정이 원시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뿐인가, 프레스를 활용하던 예전의 '찍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수공적 노동력이 배가된 실리콘 프린팅(캐스팅) 과정은 목판화의 질료적 특성과 복수성에 대한 가능성을 한결 넓혀 놓았다. 판각한 판면에 실리콘 액을 옅게 칠하고, 거기에 흑연이나 은가루를 돋을면에 잉킹하고 나서, 얇은 망사천을 깔고, 그 뒤 몇 번에 걸쳐서 실리콘으로 캐스팅해낸 화면은 판각과정의 격렬한 행위성을 묘하게도 중성화시킨다. 실리콘이라는 질료의 절제된 맛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효과다. 또한 물리적으로 탄성이 있는 실리콘과 질긴 망사의 결합은 판화지나 한지와 같은 종이에만 의존하던 목판화의 연약한 재료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목판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가능한 질긴 물질적 조건으로 바꾸게 된다. 습기, 곰팡이, 얼룩같은 조건에 취약한 내구성의 한계로 실내와 액자라는 보호프레임에 갇혀있던 연약한 목판화를, 야외나 대형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숨 쉬는 매체로 전환시키는 가능성이 비로소 열린 것이다. 또 프레스에서 벗어난 프린팅은 목판화 특유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면서도 타 복제매체의 활용 없이 엄청난 크기로도 확대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목판화라는 장르 고유의 전통적인 형식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새롭고 현대적인 표현방식과 소통가능성의 열린 기능으로 확장되는 단서라 하겠다.
이런 장르적/기법적 실험과 변주의 와중에서, 최근작인 '海印' 연작에서의 폭포와 물의 이미지가 제공하는 중채도 단색조의 뉘앙스는 더욱 복합적으로 절제된 정서와 상징을 배태해 낸다. 폭포의 수직적 낙하가 빚어내는 힘의 세계와, 그 시각성의 이면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존재와 내면에 대한 사유와 성찰의 은밀한 드러냄은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형식과 내용, 새로운 재료의 결합이 서술성을 배제한 채 압축된 형상성으로 성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다. 소재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나 이야기 없이 축약된 언어(몸의 궤적)로 드러낸 이미지는, 그래서 더 담백하다. 이런 특성의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는 작년 개인전과 연속되는 과정에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약간씩의 변주들이 빚어내는 미묘한 맛의 차이는 이 작업방식을 선택한 작가의 내공을 자연스럽게 확인케 해준다. 간단하게 양식화된 스타일의 실험이 있는가 하면, 베니어 판면의 얇은 접착부분을 그 결을 따라 자연스레 뜯어내며 칼맛을 생략하는 표현 등, 칼과 판면의 만남이 기계적인 반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생하고 예민하게 질료에 대응하는 작가의 본능적인 감각에 의해 드러난다. 거기에서 우리는 좀 더 섬세하게 질료자체의 속성과 통일되는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가, 안정민의 이런 제작방식과 시도가 앞으로 상당기간 변주되며 지속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호방하게 질료와 형식과 표현에 집중하면서도 자아와 세계를 담담하게 관조하려는 작가의 태도가 여전히 변치 않고 있어서다. 안정민의 목판화 판각과 실리콘 캐스팅 기법에 의한 이미지는 거기에 적절한 매체라 여겨져서다. ■ 김진하
Vol.20111206c | 안정민展 / ANJEONGMIN / 安貞敏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