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YLL, 아이들의 나날들

강민수展 / KANGMINSU / 姜敏秀 / painting   2011_1201 ▶ 2011_1230 / 일요일 휴관

강민수_Island-Party_린넨에 유채_100×135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기획 / 카이스 갤러리

관람시간 / 월~금_10:00am~06:30pm / 토_10:30am~06: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 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7-16번지 Tel. +82.2.518.0668 www.caisgallery.com

IDYLL, 아이들의 나날들 ● 이제 막 장막이 걷힌 프로세니움 무대가 있다. 텅 빈 공간 안 쪽에는 공기와 빛 한줄기만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아니다. 아직은 없다. '부재'가 불러일으키는 다소 불편한 정서에 대하여 몰입해 온 작가 강민수에게는 흰 캔버스가 바로 비어있는 무대이다. 그가 세운 새로운 무대는 기초적인 선과 면의 교차 흔적으로 그곳이 공간임을 인식하게 할 뿐 아직 오지 않은 누구인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가 부르고 있다. 마침내 소환되는 것들은 구체적인 누구도 무엇도 아닌 바로 그와 다른 이들의 가려진 기억 속에서 부활하는 이들이다. 어린 소년, 소녀, 순결한 여인, 중년의 남자들이 배역을 부여받은 배우들이 그러하듯이 각자의 서있는 자리에서 숙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연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딘가가 다가서기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말이 없는 모습이 자폐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강민수_Child Opening the Door_혼합재료_181×227cm_2011

다시 그 자리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거칠고 두꺼운 붓질로 바닥과 벽이 공간을 구획시키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방의 모습이지만 자연과 인공 건축물이 혼종된 느낌은 바로 마주보는 자리에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벽이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가령, 「Idyll-카펫의 방」의 화면의 중간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물감의 벽이 수직의 붓질로 쓸려 내려왔고, 그 모서리까지 넓은 꽃의 들판처럼 가득 깔려 있는 붉은 카펫 위로는 여린 푸른 잎들이 돋아난다. 그 위로 어린 사내아이가 저 유명한 브뤼셀 그랑팔라스 광장의 오줌싸게 동상처럼 엉거주춤 서 있다. 다른 작품 「무제」 속 조각상이 서 있는 공터 바닥의 또 하나의 붉은 카펫은 새로 열린 창문이자 그림 속의 그림으로 그렇게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극적인 사건들의 비극적인 전조는 공간 전체로 퍼져나간다.

강민수_IDYLL-Room of Carpet_혼합재료_99×122.5cm_2011

이렇게 초대를 위해 비워둔 무대를 그는 'Idyll'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독일어인 'Idyll'은 본디 소박하고 목가적인 정경을 의미하지만, 그의 회화 속 공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묘한 형태의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속의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초차원적 가상의 장소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닌, 누구나 품고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실재하지 않는 아르카디아를 떠올리듯 우리가 상실한 것들을 깨우고 불러내는 공간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련한 회한을 느끼게 하는 주요 장치이기도 하다. 각각의 무대는 작가가 그곳으로 무엇을, 또는 누구를 소환하는가에 따라 풍경에 서린 서정적 정서의 진폭이 짙어지거나 엷어진다. 그것은 물 표면에 떠있는 기름방울처럼 익숙하게 여겨지지만 한 편으로는 '달콤쌉쌀함'이라는 묘한 표현처럼 섞이지 않는 낯선 모습으로 다가와서, 완전히 다른 모순된 감성이 공존하는 이상한 평화로움의 상태로 머무른다.

강민수_Farmer's Daughter_혼합재료_30×40cm_2011
강민수_D's Room_ 혼합재료_150×200cm_2011

그는 낯선 공간의 창조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와 자료를 참조하며 상이한 인물과 장소를 결합하여 화면에 여러 겹의 층위를 창조한다. 강민수의 세계는 겹겹이 베일로 가려진 신비감에 쌓여있다. 실제로 그는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 또는 장소를 형상화 한 후 다른 물감으로 엷게 덮어버리고는 한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배경은 또 다른 사건의 무대 공간이 되며, 작가는 그 위에 다른 그림들을 그린다. 아니 그가 광장의 빈 자리로 초대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그의 공간으로 초대된 작은 인물이나 깨지고 일그러진 가구, 그가 창조한 눈 없는 홍학처럼 생긴 동물 혹은 마른 옥수수대 같은 식물들은 모두가 하나씩은 품고 있는 환상과 꿈의 저장고에서 소환한 것들이고 다소 느슨한 관련을 서로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의 부조리한 조합은 아주 생경한 분위기를 매우 직설적으로 자아낸다. 그는 그림 속에 거주하는 요소들의 이미지들을 위한 네러티브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제기한다. 그렇게 겹겹이 얹어지는 이미지의 층들은 기억의 조각들과의 등가물이 되었다. ● 강민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들이 잊고 있던 유년기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소환하는 낯선 어린 소년과 소녀의 심상들은 순간순간 이 작가를 비추는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인물들의 초상, 즉 얼굴을 인식하는 것(Identify)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 등장하는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얼굴이 없는 대신 그 자리에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그려 넣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물의 얼굴은 전혀 다른 시공간의 풍경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 것이다.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화면 가운데의 아름다운 분홍 옷의 소녀는 순결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순진무구의 원형이다. 이렇게 서로 기억 속에서 추출되어 재창조된 모순되고 배타적인 이미지들이 하나로 조합되는 순간이 그의 그림에서 벌어지는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한 장면이다.

강민수_Hansel and Gretel_ 혼합재료_55×100cm_2010
강민수_Mother and Child with Rasberry_혼합재료_112×145.5cm_2011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연극적 재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장면과 다른 장면 사이는 막과 막, 장과 장이 전환되는 장편의 연극이 그러하듯이 막간의 공백처럼 토막이 나뉘고 대립하는 것들이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6, 소설가)의 부조리한 희곡처럼 꼬여 있고 역행하는 시간을 따라잡으려 하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를 오히려 토대로부터 해방시키며 해석의 무제한 자유를 허락한다. 그러나 그 장치들은 결코 인위적이거나 복잡하지 않고 놀랍게도 단순해서 작가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강민수의 이러한 창작과 정신적 태도의 간결함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리움의 정서를 공감케 하는 힘이며 무거운 고독과 소외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 최흥철

Vol.20111205e | 강민수展 / KANGMINSU / 姜敏秀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