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306c | 사윤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44길 5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B1 Tel. +82.(0)2.790.3888 www.artspaceloo.com
충돌하는 시공간의 틈 사이로 유출되는 욕망 ● 사윤택의 작품에는 여러 시간과 공간대가 공존한다. 작품이라 함은 여러 근원이 있어도 작가라는 전능한 존재자에 의해 다층적 모순들이 어떤 의미를 향해 수렴, 또는 종합되기를 요구하는데, 그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기법 또한 다양해서 모노 타입으로 찍은 것, 오브제를 붙인 것, 긁은 것, 그린 것 등이 한 화면에 혼재하곤 한다.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영상도 잠재해 있다. 그렇다고 그가 무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략 이것저것 끄적거려 놓은 것에 「무제」 따위의 제목을 붙여 놓고, 그 뒤에 굉장한 초월적인 의미가 있는 듯 비의적 제스추어를 취하는 유의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분명 어떤 서사들이 잠복해 있지만, 조율과 조화보다는 충돌과 간극에서 빚어지는 의미가 더 크다. 동서고금이 총출동하는 화면에서 구별되는 시공간의 틈은 봉합되지 않고 입을 벌린 채 있으며, 함정처럼 늘어뜨려 놓은 단편적 도상들은 작가나 관객의 욕망에 부응하는 순간적 조합을 통해 의미의 단서를 던져줄 뿐이다.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테니스 코트의 공처럼, 작가는 의미의 방향타만 제시할 뿐, 그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게임처럼 펼쳐진 장에는 꿈같은 자유로움과 잡아야 할 것을 놓친 것 같은 불안감이 치고 되받아쳐 지는 공처럼 오고 간다. 작품 「순간의 틈-몽유도」는 고전 산수화의 틀 거리 속에 꿈에서 보면 좋다는 다수의 상징적 도상들-불로초, 학, 바위, 두꺼비, 소나무, 똥, 감, 무지개 등-이 등장한다. 후경에는 폐허 속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고 비행기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비행기는 '시간의 주기를 표현하는 코드'로 자주 등장하는데,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풍경에서 시간 감각 또한 혼란에 빠진다. 고고한 학과 비교할 수 있는 거위는 꿈에서 진짜와 가짜가 구별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호수처럼 고인 물 한가운데에 포옹하는 남녀와 맞은편에서 오줌 싸는 남자의 도상은 욕망의 유출에 대한 은유가 있다. ● 작품 「순간의 틈-천고마비의 계절 "권력은 칼끝보다 강하 다네"」에서 후경의 자객은 중경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과 긴장 관계를 이룬다. 골프장 같은 현대적 풍경 위에 난데없이 자리한 고풍스런 자객은 떠다니는 망자나 유령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골퍼의 중첩된 도상 역시 한 사람의 연속 동작 같은 허상성이 있다. 작가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느긋하게 골프를 즐기는 유한계급에게서 집중된 권력과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릴 수(희생시킬 수) 있는 무상함을 본다. 사윤택의 작품 제목에 속한 '순간의 틈'은 회화를 가장 회화답게 하는 순수한 순간에 주목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한눈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투명한 시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은 그의 작품에서 수많은 틈들로 분절화, 또는 해체된다. 이를 통해 순간은 오염되고 불순해진다. 사윤택의 작품에는 고정된 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타는 불투명한 지각의 추이나 흔적들이 강조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순간의 틈에서 건져 올린 상황'이며, '순간이라는 시간성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스치면서 망각되는 순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순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잡다함과 문득문득 튀어 오르는 단서들이 있는 그의 화면에는 작고 빠른 움직임들이 내재해 있다. 모더니즘은 순수한 순간에 집착함으로써 시간성을 억압했는데, 사윤택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의식적인 차원이든 무의식적인 차원이든, 심리적인 차원이든 물리적인 차원이든 활성화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서 완결감과 자족성이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는 그리다 만 듯 말하다 만 듯한 어정쩡함이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김복진이나 칸딘스키 같은 근대 화가들의 등장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전쟁과 혁명이 빈발하던 당시의 역사를 떠올려 볼 때, 잘 차려 입은 양복 신사가 거만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모습은 하나의 권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그림에는 모더니스트들의 폐쇄성, 엘리트주의, 소통불능, 시대착오, 고상함 등에 대한 거부감이 엿보인다. ● 작품 「모더니스트의 가을」은 모더니즘의 추상화법을 차용한 배경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화가가 골프 동작 중인 남자들과 함께 배열되어 있다. 담배의 막대 형태와 연결된 허연 부유물은 남성의 발기를 떠오르게 하며, 구멍을 향해 힘을 집중하는 골퍼의 동작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더니즘은 금욕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욕망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둘 다 욕망이지만,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 즉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부르주아의 욕망에 대한 억압은 역으로 권력(자본)을 향해 욕망을 집중시키면서 권력을 쟁취하게 했다. 모더니스트의 작품 자체는 순수했을지 모르지만, 제도를 장악하면서 권력을 확보하고 재생산해 왔으며, 그들이 강조했던 예술에 대한 자율성 역시 자본주의적 분업 체계에 순응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질이 확보된 순도 높은 작품들은 바로 상품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되돌아볼 때, 발생 당시의 모더니즘은 진보적이었지만, 차후에 그것이 굳어져 제도화 된 모습은 지배 가치에 잘 부응했다. 시간은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것들을 이데올로기로 굳혀버리곤 한다.
그들에게서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아온 작가는 모더니스트를 '부르주아', '안락한 사람들', '승리한 권력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 「앞서간 자와의 대화」에는 한국의 근대 화가가 등장한다. 작가는 근대 미술사에 등재된 선배 화가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대한다. 칸딘스키처럼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선배 앞에서 작가는 진지하게 뭔가 얻으려 하지만, 딱히 들을 것도 받아 적을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낭패스러운 상황이다.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그를 후기 모더니즘이라 할 만한 조류로 흘러 들게 했다. 그의 작품은 순종이 아닌 잡종, 순수가 아닌 불순함, 침묵이 아닌 수다, 완결이 아닌 과정, 욕망의 억압이 아닌 분출이라는 속성이 강하다. 차분한 전통 산수 위에 떠서 표현주의 풍의 거친 추상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있는 작품 「아무 의미 없는 교접」에서 아무 인과관계 없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두 장면을 잇는 매개 고리가 바로 작가이다. 그러나 온전한 몸이 아닌, 다리 하나와 팔 하나만 있는 화가는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 가장 확실한 닻이 되어야 할 주체조차 불확실한 상태임을 알려준다. ● '순간의 틈'이라는 불확실한 시공간에서 욕망이 분출되거나 스며든다.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남성의 욕망이 충전되는 시기이다. 작품 「순간의 틈, 그 초속 같은 서사」는 테니스 코트 앞에서 데이트 중인 남녀가 등장하는데, 하트 무늬 여자 치마 아래를 보는 남자의 순간 동작, 그리고 뒤에서 힘차게 공을 치고 받는 모습과 공간에 울려 퍼지는 교성은 성적인 은유가 있다. 작품 「순간의 틈-천고마비의 계절」은 가운데 여자를 두고 한 남자가 어쩔 줄 몰라 왔다 갔다 하는 '풍성한 욕망이 차오르는 풍경'이다. 피워 오르는 담배 연기뿐 아니라, 나무나 바위 등, 위로 솟구치는 모든 도상들은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상호 조응한다. 쿠르베나 세잔 등,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화가들의 작품들을 형식주의가 아닌 성심리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새로운 미술사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사윤택의 정물 또한 순수한 조형적 실험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장이다.
작품 「순간과 지속을 위한 틈」은 그림에 대한 자기반영적인 장치들, 가령 작가, 작업실, 모델, 전범이 되는 작품 등이 등장한다.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이 잡다한 요소들은 모더니즘에서 모두 뒤로 밀쳐져 있던 것들이다. 이 맥락 속에 문을 열고 들어와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머리들이 배치된다. 미술사 속 대가들의 작품에서 사과는 아직도 생생하고 기념비적이지만, 사윤택의 작품에서 사과는 한쪽에서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다. 작가는 실재를 치열하게 재현하고자 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한가하게 정물화를 그릴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사유가 있다. 그 중 한 사과는 답답한 그림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순간의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또 다른 것은 빛이다. 작품 「순간의 틈」은 리모콘에서 발사된 신호가 텔레비전으로 전달되고, 텔레비전에서 쏟아지는 빛에서 다양한 것들이 쏟아진다. 테니스 경기 장면이나 나비같은 시뮬라크르들은 텔레비전을 끈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공간을 떠돈다. 태양같이 힘차게 빛을 내뿜는 텔레비전 옆에는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거울이 걸려 있다. ● 거울 또는 그림 안에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반영되어 있다. 거울, 그림, 모니터 등은 모두 자기반사적 특성이 강한 매체이다. 스크래치로 표현한 강력한 빛살은 그림과 거울, 그리고 영상 사이에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 이 인공광원은 실제의 햇살에 맞먹는 힘을 가진다. 작품 「가을 햇살이 비치나니」는 원근법적 공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살이 한 줄로 쌓아 올려진 감귤을 위태롭게 한다. 그림 그리는 자신을 뒤에서 그리는 자기반사 속에서 바닥에 떨어진 물감 자국이 치열해야 하면서도 막연한 작업과정을 암시한다. 작품 「무너져 내리는 도다」는 쏟아지는 빛에 감귤이 무너져 내리고, 탈진한 듯 쓰러지는 화가를 분신이 부축한다. 작가에 의하면 여러 작품에 나타나는 감빛 오렌지는 '남근이 바짝 선 욕망'을 상징하며, 장면은 가득 찬 가을 햇살이 '집중되고 있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광경이다. 그림 역시 욕망처럼 끊임없이 쌓아가고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그것은 명확한 기원과 목적을 알 수 없는 부질없는 과정이지만, 무한한 반복과 차이 속에서 변화해 나간다.
동서양의 고전과 인물들, 그리고 기법의 패러디는 그 자체가 차이를 가진 반복이다. 린다 허천은 「패러디 이론」에서 보수적 반복과 급격한 차이 사이에 설정된 패러디의 양면 가치를 언급한다. 패러디 되고 배경이 된 텍스트와 새로이 병합된 텍스트 간에는 비평적 거리가 암시되어 있다. 분열적이며 불안정한 패러디는 통일과 조화를 강조하는 텍스트의 이중화이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그리고 텍스트와 현실 세계 사이의 부조화를 앞세우는 차이이다. 패러디는 동일성과 정체를 강조하는 반복이 아니며, 차이만을 강조하는 반복도 아니다. 패러디는 비판적인 거리와 변화를 허용하면서, 계속성을 부각시킨다. 사윤택의 패러디는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다루는 '미술에 대한 미술'임과 동시에, 자체의 동일성도 문제시한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자기지시성의 문제가 있다. 자기지시성은 형식의 내전을 통해 선대 미술을 비판적으로 극복해온 미술사 뿐 아니라 뿐 아니라, 주체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 실재/ 허상, 실체/ 그림자의 관계는 분신 또는 짝패 같은 분열적 인물상을 통해 불확실해진다. 작품 속에서 그는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그리곤 한다. 패러디에 내재된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타자와 또는 자기 안의 타자와 대화한다. 거기에는 독백이 아니라, 두 목소리(diphonic), 또는 다음(polyphony)이 들려온다. 대화는 종합이나 화해, 조화와 화음을 향하기보다는 경쟁적이며, 대화의 장은 종종 선술집처럼 소란스럽다. 이 잡음들 속에서 무슨 소리를 골라 듣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린다 허천에 의하면, 상호텍스트적 대화란 독자와 문제의 텍스트에 의해 환기되는 다른 텍스트에 관한 독자의 기억 사이의 대화이며, 하나의 가상적 해석학적 구조물이다. 작가와 독자들에 있어서 과거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담론 밖에 암시된 공통의 지식들과 그것에 내재된 의미의 층들을 포개 놓는데 있다.
사윤택의 작품은 패러디와 구분되는 패스티쉬 형식도 있다. 「패러디 이론」의 분류에 의하면 그는 모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지만, 동시에 단일 텍스트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텍스트를 함께 모방한다는 점에서 패스티쉬이다. 수사법 보다 상투어구(cliche)의 관계가 두드러질 때 패러디보다는 패스티쉬에 기운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보다 많은 도상이 등장할 때 패스티쉬에 가까워진다. 요즘 작업에서 인용되는 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패러디는 모방과 전용을 통해 특정 코드들을 인용하지만, 비판적 거리감을 통해 재현주의나 그것의 유사물인 모더니즘적 추상을 파기한다. 패러디는 기존의 권위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사윤택의 패러디는 모더니즘이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통해서 반미학적이고 블랙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지인들은 그의 그림이 그와 매우 닮았다고 평한다. ● 그가 작품과 현실을 문제시할 때 활용하는 패러디에는 또한 중요한 자아반영(self-reflexivity)의 형식이 있다. 모더니즘 자체가 이 자기지시, 자기참조, 자기반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작품 속에서 붓을 들고 있는 이는 대개 작가 자신이며, 몸통은 생략된 채 치열한 의식과 부지런한 붓놀림을 상징하는 머리와 손만 나타난다. 머리와 손 사이에는 생략된 몸처럼 양자 간에는 간극이 있다. 이 간극에서 또 다른 간극들이 무수히 파생된다. 이 간극 속에서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통일된 작가라는 근대적 낭만주의의 신화는 무너진다. 린다 허천은 어떤 힘을 비신격화 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힘의 임의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사윤택의 패러디는 모더니즘적 형식주의에 내포된 유사 객관성과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정전적 텍스트의 뜬금없는 끼워 넣기가 단지 유희를 넘어서 비판을 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종종 등장하는 동양화 코드는 화면에 이질성과 복합성을 증가시키며, 역사, 지속, 대중성, 혼성 같이 모더니즘에서 억압되어 왔던 것들을 복귀시키고, 그것들을 다양하게 엮어 삶과 예술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 이선영
Vol.20111203f | 사윤택展 / SAYUNTAEK / 史潤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