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빔 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2.723.8574 www.biim.net
'붙이다 & 묶다' 展에 붙여... ● 시대정신이라 함은 한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형태 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혹은 이념을 일컫는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피력하였고, 헤겔은 '민족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며 동시에 과거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해당 시기의 시대정신 또한 진보한다. 정신이 진보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종결되는 일회성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보편성에 대한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 늦가을로 가는 비가 며칠째 내리는 삼청동 길은 참 고적합니다. 이번 가을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삼청동 길에는 초겨울의 정취가 또 남다를 것입니다. ● 평면과 입체,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는 참신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를 통해 대중과 함께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온 갤러리 빔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계절의 초입에서 두 역량있는 젊은 작가의 『붙이다 & 묶다』展을 마련했습니다. ● '밥풀' (붙이다) 과 '실' (묶다)을 소재로 설치 작업하는 두 작가 황인선과 전윤조의 2인展 『붙이다 & 묶다』는 작업 매체인 밥풀을 '붙여서' 작업하는 황인선 작가와 실을 '묶어' 작업하는 전윤조 작가의 작업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서로 다른 주제로 작업하는 두 작가의 작업에서의 소통 및 관계 모색이라는 공통성을 끌어내어 보려고 합니다. 또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 나아가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단절을 한 밥상에 모여 앉히고 밥풀을 한 톨 한 톨 붙여가듯 끊임없이 대화를 붙여가는 시도를 통해 단절을 부수려는 황인선 작가의 작품과, 어린 시절 얻은 청각장애로 인해 늘 '고독과 소통의 경계'에 서있는 자신이 반영된 수없는 많은 인형들을 만들어내는 전윤조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작업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나아가 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면에서도 서로 닮아 있습니다. ● 밥과 실이라는 여성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일상적으로 대해온 소재의 붙이기와 묶기 작업을 통하여 여러분들과 고통스럽게 또 편안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젊은 두 작가의 방문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조수연
붙이다 Attach ● '붙이다'라는 단어는 밥풀 한 톨 한 톨을 붙여 몇 백 개의 밥풀(밥알)이 모여야만 비로소 자그마하나마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본인작업의 반복적 특성을 규정할 수 있는 단어이다. ● '붙이다'는 서로 다른 사물을 연결한다는 물리적인 의미에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관계 형성을 도모한다는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의미로까지 다양하게 해석 및 쓰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말을 붙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관계 형성의 첫 단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붙이다'에서는 사물의 개념을 규정한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정을 붙이다, 재미를 붙이다, 흥미를 붙이다'와 같은 감성이 들어간 문장에서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심리적인 연결고리를 나타내기도 하며, 심지어 '싸움을 붙이다'에서는 관계의 파국까지도 연결하는 의미로도 활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밥풀을 물리적으로 서로 붙여서 관계 (소통)를 형성해본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선택해 전시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 영문제목인 attach의 경우, 한 단어에서 여러 쓰임과 의미 형성이 가능한 한국어의 다중적 다의적 특성때문에 적절한 영어단어의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붙이다'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영단어중에 'Attach'를 선택한 이유는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쓰일 때 '단체에 소속(참여)시킨다'는 의미와 '애착을 느낀다, 좋아한다'는 심리적인 의미를 함께 지니기 때문이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반복적 작업행위인 '붙이다'를 단초로 다양한 밥풀 작업을 전시한다. ● 기존 작업들은 밥풀들이 그것들을 담는 용기인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순환적인 의미를 지닌 기존의 밥(풀) 작업과 그 용기들이 밥상위에 놓여짐을 통한 소통구조 탐색 (밥상 위의 연금술 - 아슬아슬한 대화)을 추구하는 작업,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인간(아이) (밥풀 - I)를 형상화한 작업이었다면 이번엔 밥풀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다양한 개념을 시도해보는 쪽에 중점을 두었다. ● '밥'이라는 소재가 가진 의미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붙이는' 방식을 그대로 쓰되 결과적으로 작품들이 '밥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지경으로까지 시도함으로써- '밥'이라는 소재가 가진 그 진지하고도 무거운 (물론 토속적/향토적이기도 하고 해학적이기도 하지만)의미를 넘어선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밥에 여러 가지 색소를 첨가하여 알록달록한 신호등 색을 내는 작업과 동시에 이전의 일상적 소재에서 더 나아가 돼지저금통과 부처두상이라는-탐욕과 해탈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지닌 아이콘이기도 하다-고급스러운 것과 대중적인 소재들을 떠내기 (casting)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그 결과이다. ● 이번 『붙이다 & 묶다』전시는 최근 두 번의 개인전에서 주로 밥풀 중심으로 보여줬던 밥상 이미지에서 다음 개인전으로의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다양한 공간이 서로 접목되어 마치 아기자기한 이야기 거리를 내놓는 듯 한 갤러리 빔의 공간적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며 또 다른 새롭고도 재밌는 이야기 보따리가 짠~!하고 등장하듯 다양한 밥풀 작업을 설치해보려고 했다. ■ 황인선
묶다 Bind ● "가능한한 손으로, 노동집약적으로, 감성적으로, 시적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욕심없이." ● 작업은 청력 손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경험을 드러낸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내는 소리들, 사람들의 목소리들과 발음들을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 모든 소리들이 서로 다른 소리들임에 불구하고 보청기는 이들을 같은 음량으로,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체적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 힘들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듯한 느낌을 자주 갖는데 그 정신적 경험은 내 작업에서 계속해서 다루는 주제 전반에 내재하는 근본이다. ● 작업의 주재료는 면사 중에서 가장 가는 0.1mm의 실이다. 이 재료의 가장 큰 매력은 가늘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내 보이는 물성이다. 전혀 염색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면사의 색감은 내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듯한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최근에는 검정색 - 무채색으로 염색해서 흰 면사와 병행해서 작업하는 중이다.) ● 이 재료는 가늘고 약하면서도 길이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반복적인 노동이 요구된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어릴 때부터 받아온 언어훈련 -말문을 트이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고 고쳤던 훈련과정과 방법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한 예로 '사과'의 발음을 이해하고 외우기 위해서는 최소 800번을 긴 시간에 걸쳐 반복해야 한다.) ● 나는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을 함께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이러한 시도는 정상인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동시에 느껴왔던 개인적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력손실은 다른 신체장애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이기 때문에, 말문을 열거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은 나를 평범하게(이른바 정상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부정확한 나의 발음과 청력의 문제를 알게 될 때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미묘하게 변화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경험들은 내가 장애인인가 혹은 비장애인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자기 정체성 확립에 적지 않은 혼란을 끼쳐왔고 지금도 그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함을 느끼는 중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업은 나의 내적인, 신체적인 경험의 서술일 수도 있고, 또는 정신적 불안감에서 바라본'나는 무엇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이전 작업은-'비정상'의 범주를 현실적인 범위에서 이를테면 실제 장애인에 가깝게 한쪽 팔,다리만 있는 식의 인형을 여러 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면, 최근 작업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실 특유의 엉키는 이미지나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존재감과 같은 물질성을 일종의 심리적'은유' 로 바라보려고 하면서, '비정상'의 범주를 제한하지 않고 손 하나, 발 하나, 다리 하나던 간에 자유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나의 작품은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심리적 고립과 소통의 제한으로 인한 심리적 한계에 대한 경험의 한 순간일지 모르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작업은 마음에 남겨진 상처들을 다시 열어보는 동시에 조금씩 계속해서 치유하는 과정 그자체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을 전시한다는 건 스스로의 숨겨진 심리를 열어 보이는 것이고 그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면서 그들 역시 겪었을 지도 모를 동류의 느낌과 일종의 공감을 시도하는 셈이다. ■ 전윤조
Vol.20111202k | 붙이다 & 묶다-황인선_전윤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