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Art Shopping: I love Dream

2011_1201 ▶ 2011_1227

이국희_성탄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09 이국희_성탄2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문정희_유갑규_이국희_이슬기_임현희_황나현

관람시간 / 11:00am~08:00pm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 Gallery yedam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삼청동 26-2번지 Tel. +82.2.723.6033

identity ● 현대인들은 본질적으로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나'라는 자아는 외부의 대상을 지각하고, '너'라는 타자에 대한 개념을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아가 객체로서 대상이 되어주고, 동시에 주체로서 대상을 필요로 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듯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자신으로부터 아닌, 타인에 의한 이미지로 형성됩니다.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of the other people, by the other people, for the other people)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며, 주체의 원초적인 모습인 유년기 아이들의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 2008년부터 전개한 '시선'이 대상의 익명성과 호기심을 유발하여, 경험과 기억을 환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면, 앞으로 전개될 작품 속 아이들의 시선은 대상을 응시하되 Mask는 감춰진 이미지를 형상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특정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게 됩니다. 나로 인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며, 타인에 의해 나의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가 확장될수록 복잡해지고 상호 모순적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즉,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본연의 이미지를 덮게 됨과 동시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갈등을 야기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관계, 흔히 우리가 문제로 삼는 정체성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 자아 정체성이라기보다는 관계적 정체성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본인의 작업은 관계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바탕으로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은 상호관계를 통해 관계에서의 위기의식과 갈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입니다. 본인이 말하는 드러내지 않음은 역으로 드러냄을 의미하기도 하며, 드러내는 것은 또 역으로 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체성 혼란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를 경험하고 이를 통한 반성적 사고와 함께 본 모습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 문정희

문정희_hidden mask N.05-1_종이에 콘테, 드라이포인트, 신콜레, 채색_29.7×21cm__2011
유갑규_빙폭타다_장지에 수묵담채, 아크릴채색_72.8×60.7cm_2008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늘 한결같다. 그 변함없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 같고, 장마철이나 갈수기가 아닌 이상 계속해서 일정하게 수량을 유지하면서 흐르는 것이 중도(中道)를 지키는 듯 하고,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며 자신의 길을 확보하는 것이 마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과도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폭포를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폭포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은 매우 야성적이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듯, 남에게 일부러 투정부리는 듯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TV를 보는데 빙폭(氷瀑)을 오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것을 보면서 갑자기 이때가 폭포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듯 한 느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빙폭을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위험천만한 빙폭을 오르는 두려움 보다는 스릴을 즐기는 듯, 또는 등산을 하며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상쾌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때부터 빙폭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 빙폭이라는 소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객체로서 빙폭은 액체인 물에서 고체인 얼음으로의 변환이라는 계절에 따른 변화를 담고 있다. 시간의 변화의 따른 변환... 그것은 쉼 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점은 빙폭이 단순한 무생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여겨지게 한다. 우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변화하기 때문이다. 빙폭이라는 것이 한번에 언 것이 아니고 녹았다가 또 얼고 녹았다 어는 반복된 과정에 의한 완성의 모습이 자기 자신이 세운 목표인 이상형을 이루기 위해 실패도 해보고 그 실패나 꾸지람, 배움을 통해 더 단단하게 완성 되가는 모습으로 치환 되게 느껴졌다. ● 은유적으로 빙폭은 우리 인생의 장애물과도 같다. 빙폭 등반은 인생이라는 여정 자체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잘못으로 위험에 처 할 수도 있고 긴장하고 꾸준히 오르면 결국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계속 오르다보면 끝이 있고 진정 자신이 뭘 해냈다는 보람이 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빙폭을 한 발씩 또 한 발씩 오른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삶의 정상을 만들어가며... 빙폭을 통해 이런 것을 얘기 하고 싶었다. ■ 유갑규

이국희_sweet home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0
이슬기_Another nature_캔버스에 유채_90.9×60.5cm_2009
임현희_Mother earth violet and green pla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4×68cm_2011

평일 오후 작업실로 가는 길, 나는 잉여인간이된다. 서류가방을 안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저씨를 보거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신문 한 귀퉁이 부동산 정보를 흘낏 눈으로 스치며 난 현실에서 60도 쯤 비껴난 공간에 있다. 나는 사회와 그리 친하지 않은 듯 하다. 뉴스의 한 꼭지 조차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혹은 우울함 때문에 끝까지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버리니… 그나마 날씨 소식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 내 그림도 이런 나와 닮아있다. 현실 도피라기보단 앞에서 말했듯 한 60도 비껴난 곳을 보고 있다. 이건 변명이 아니다. 전에 같이 살던 친구가 말했다. "언니, 길거리에 새들이 저렇게 많은데 온통 살아있는 것들 뿐이야. 어떻게 저 많은 새중에 단 한 마리도 죽은 새가 안 보일 수 있는거지?" 60도 비껴난 나의 현실 속에서 새들은 코끼리들처럼 그들만이 아는 죽는 장소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죽은게 아니라 하늘과 땅을 배회하는 영생하는 신일지도...그 비껴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난 아직 붓을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 중 대부분은 런던에서 유학하며 그 곳에서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다. 처음 런던을 도착했을 때 내가 그곳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나무들이었다. 서울 역시 런던과 같이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서울의 나무는 그들에 비해 너무나 앙상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런던의 나무들은 많은 사람들과 차들에 상관없이 높게 자라있으며 풍성했다. 그 나무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켰다. 난 그 느낌을 생명력이 가득 찬 모습으로 내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풍성한 모습으로 말이다. ● 앞으로의 작품은 생명의 뒷 편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도 담고 싶다. 고 정기용 건축가 님의 다큐멘터리 중에 정기용 선생님께서 '시간이 멈춘 집' 이라 이름붙인 집이 있다. 어린 딸을 먼저 잃은 어머니의 의뢰로 고 정기용 선생님께서 만드신 집이다. 그 집에는 마당 가운데 죽은 딸 아이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 위로는 성모 마리아 상이 올려져있고, 집 주위를 감싸는 높은 담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바람이 고이게 한다. 무덤을 둘러싼 풀들과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무덤을 어루만진다. 그 무덤을 보며 죽음을 바라보는 정기용 선생님의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그 시선을 작품에 담고싶다. 차가운 땅이 아닌 생명의 근원지인 땅 속에서 그들을 어루만지길 기원한다. ■ 임현희

황나현_귀가歸家 Way back_한지에 혼합재료_72.7×60.6cm_2011

엷은 꿈 ● 어릴 적 나는 이따금 동화책 이야기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정말 '천국' 이라는 장소가 구름 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구름 위 천국'을 보려고, 옥상에 올라가 껑충껑충 뛰었던 적이 있었다. ● 비단, 어린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적어도 한 번은 자신만의 낙원을 꿈꾸고 찾는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곳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낙원은 우리의 상상에서 현실의 고민과 갈등 없이 최고의 행복과 기쁨만을 느끼는 장소로 귀결됨은 분명하다. 한편, 대부분 사람들의 상상 속 낙원은 실재하지 않거나,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낙원을 누리기 위해서는 늘 어떤 노력이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 이번 작품에서는 실재하고 있지만 단지 알아채지 못한 낙원, 그리고 그 안에서 놀랍도록 행복한 에너지를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서도 그들의 상처마저 편안히 보듬어 주는 착한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황나현

Vol.20111202h | Christmas Art Shopping: I love Dream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