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the Past

민경아展 / MINKYEONGAH / 閔庚娥 / printing   2011_1130 ▶ 2011_1205

민경아_The Creation_리놀륨 판화_60×18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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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민경아, 이질적인 것들의 재정렬 ● 민경아의 작품은 종교와 예술의 접촉지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그의 작품테마는 성경의 이야기로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십자가 책형, 부활승천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테마들은 역대화가들에 의해 자주 다루어져 온 주제들로 서양미술의 고전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작가가 이미 '명화'로 널리 알려진 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같다. 고전의 현대화랄까, 전통회화와 만화주인공까지 불러들여 명화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 가령 「창조: the Creation」란 작품을 보면 서양의 명화와 한국의 김홍도,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현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승무를 추는 무희가 있는가 하면 그네 타는 여인, 장구치는 사람, 그런가 하면 원더우먼, 피노키오,슈퍼맨 등을 등장시켜 오래전의 일을 현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동서양과 고대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성경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too much water」란 작품 역시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들판과 산하를 뒤덮는 폭우로 인해 모든 짐승들이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선 기린,사자,염소,코끼리,다람쥐,타조,토끼,도마뱀,고래,불가사리가 모두 물속에 가라앉았다. 산도 40일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잠식당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림에 등장한 산이 우리 눈에 좀 익은 것같다. 그 산은 다름 아니라 겸재의 금강산도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산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한층 실감나게 전달한다. 시내산도 아니고 아라랏산도 아닌, 금강산을 통해 노아의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결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내고 있다. ●「최후의 만찬: Ongoing Supper」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을 새로이 번안한 작품이다. 그림뒤에는 원작의 인물들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것과 역대화가들의 초상화로 대체한 것 등 두 유형으로 나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고흐와 고갱의 초상화, 베르미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우키요에 미인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화, 피카소의 잠자는 여인, 신윤복의 미인도, 부르헬,보티첼리의 미인도, 아르침볼도의 나무인간, 에곤 쉴레의 초상화 등이 등장한다. 사도들은 명화속 인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눈 빵과 포도주는 와인과 케익, 주병과 같은 유사한 이미지들과 바나나 우유, 커피 등과 같이 요즘 것들로 바뀌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에 더하여 엿 파는 아이, 젓 먹이는 어머니, 남녀가 밀애를 즐기는 모습, 곰방대를 물고 있는 한량 등과 같이 풍속화의 한 장면을 차용하기도 한다. ●「창조: the Creation」와 「노아의 방주: too much water」, 「최후의 만찬: Ongoing Supper」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대중문화적 요소이다. 만화나 영화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상품들이 출현한다. 이같은 대중문화적 이미지의 수용은 그가 광고나 영화, 만화,신문과 잡지 등의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한 팝 아트스트들과 동일한 기반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문화적 요소를 인용하는 것은 상품과 대중문화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락과 소비의 일상 및 표류하는 삶을 상징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같다. 종래의 기독교적 이미지와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겹치고 대비시킴으로써 모종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감상자에게 우리가 혹시 현실에 눈이 어두어져 가치있는 것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넌지시 물어보고 있는 것같다.

민경아_빈물항아리_리놀륨 판화_60×90cm_2009
민경아_Too much water_리놀륨 판화_120×90cm_2010
민경아_Mes「나들」_리놀륨 판화_120×90cm_2011

예전에는 단순히 그림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지만 현대작가들은 범람하는 팝문화와 물질문명, 정체가 불분명한 사상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가는 이런 세태속에서 기독교 영성에 뿌리내린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어떻게 하면 질풍노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파고를 극복하고 폭넓게 사람들과의 교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외부의 물결이 거셀수록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앙에 뿌리내린 작품이 눈에 띈다. ●「나들: Mes」는 절묘한 개작이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원작을 개작한 이 작품은 이색적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을 위에서 포착한 구도로 되어 있어 더욱 극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김홍도의 대장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예수님 발에 못 박는 인물로, 서당에서 공부 못해 우는 철부지 아이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보며 슬퍼하는 인물로, 활 쏘는 사람을 예수의 가슴을 겨냥하는 인물로, 신윤복 단오 명절의 풍속화에서 그네 뛰는 여인을 십자가에 끈을 매달아 유희를 즐기는 인물로, 빨래하는 여인들을 예수님 손에 못을 박는 인물로 역할을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타이틀은 「나(들)」로 되어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십자가 사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방관자,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모습들이 모두 내 자신의 모습들"로 여기며 제작한 작품이다. 신앙인으로서 작가의 고백이 들어 있는 특별한 작품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로마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예수를 부인하며 심지어 조롱하는 요즘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 가운데는 피노키오 연작이 있다. 앞의 작품이 기독미술과 풍속화 및 만화 캐릭터와의 만남이라면, 피노키오 연작은 피노키오를 화가들의 명화와 결부시켰다. 알다시피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면 코가 길어지는 바람에 코가 신체의 특징이 되어버린 인물에 속한다. 작가는 이점에 착안해 예술가들의 초상화에다 그 사람의 특징이 될만한 것들을 덧붙였다. 가령 뒤러의 코에는 옷장식을, 베토벤의 코에는 음표를, 산책을 좋아한 슈베르트는 전원적 분위기가 나도록 나무형태로 변형시켰다. 비너스석고상에는 그녀의 꼽슬머리를 본따 웨이브 코를 만들었으며,이외에도 고흐,클림트,에콜쉴레와 같은 화가의 자화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바흐와 모차르트, 쇼팽과 같은 음악가들을 각각 코믹하게 연출하였다.

민경아_피노키오「베르메르 진주귀걸이를 한소녀」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민경아_피노키오「뒤러 자화상」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민경아_피노키오「프리다칼로 자화상」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근래 들어 지식의 대통합을 일컫는 '통섭'(Consilience)이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만일 이 용어를 민경아의 작품에 적용한다면 종교와 예술의 차이,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차이를 묶어내는 말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회화에서 거의 사용치 않는 성경의 이야기를 테마로 삼는 것이나 거기에다 콜라나 우유병같은 현대사회의 이미지, 그리고 풍속화를 등장시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특히 기독교와 예술은 그의 작품에서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것은 현대미술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그림은 유럽에서 오랜 기간 중추신경역할을 해왔지만 근대 이후로는 상당히 약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경아의 작품에서 여전히 미술은 종교와의 관계속에서 얼마든지 상상력을 얻고 창조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민경아의 작품은 수법적으로 차용에 의한 재구성이 주종을 이룬다. 옛 것과 새 것을 뒤섞고 한편으로는 기존의 이미지의 재배열로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원작자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상반되는 내용의 전개, 다른 기법, 시제의 차이 등 기존의 명화에 이질적인 것을 충돌시킴으로써 원래의 의미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감상자가 의외의 사건과 마주함을 통해 현실을 곰곰이 뒤돌아보게 만든다. 차용과 패러디와 같은 현대적 표현수법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흐르는 주제의식이란 인간의 타락, 죄의 속량, 고통받은 삶으로부터의 구원, 메시야의 한량없는 사랑과 같은 묵직한 주제들이다. ●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치한 재현과 꼼꼼한 세부처리, 고도의 감각 등은 감상의 재미도 더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리놀늄에 새겨진 선의 자취들과 패턴들은 작가가 얼마나 조형구사에 능숙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어느 한 부분 소홀함이 없이 시종 차분하고 절제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전 과정이 일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번거롭고도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것을 거뜬히 이겨내는 작가근성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적재적소의 이미지 차용과 드라마틱한 재구성까지 보태져 한편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이 보는 사람에게는 잔잔한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같다. ■ 서성록

Vol.20111130a | 민경아展 / MINKYEONGAH / 閔庚娥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