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재생과 환원에 관한 사유와 꽃의 상징성 ● 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양도 고운 향기도 벗어던졌다. 모양은 현상이다. 이를 벗어 버리면 남는 것은 본질이다. 현상은 시각에 의해 파악되지만 본질은 심안에 의해 인식된다. 보이는 것은 시각에 그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무한히 증폭된다. 대상의 최소한의 형태만을 취한 작가의 꽃은 손에 닿을 듯 여실하지만 문득 시각의 저편 아득한 곳에 자리한다. 그 꽃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남은 재 마냥 본질만 남았다. 그것은 육안에 의해 발견되는 현상의 꽃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전해지는 본질의 꽃이다. 아득한 피안의 향기를 전해주는 상징이다. 피고 짐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꽃이다. 작가 박미희의 꽃이다. ● 꽃은 예술에 있어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소재이다. 더불어 꽃은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 사랑받아 왔다. 꽃은 어쩌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향수나 동경일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꽃은 대개 자연의 서정과 낭만의 의미로 읽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의 꽃은 특정한 형상을 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왜곡되고 개괄된 단순하고 함축적인 형상으로 드러날 뿐이다. 당연히 그것은 이미 육안에 의해 감지되는 객관의 꽃이 아님이 여실하다. 생태나 식생의 특징들은 이미 배제되었기에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고 느껴야 하는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낭만적인 서정이나 유미적인 대상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과 사유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수단이자 형식인 것이다.
작가는 꽃의 의미를 재생(再生)이라는 함축적인 단어로 개괄한다. 그리고 이를 무속에서의 지화(紙花)로 연결시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무속에서의 종이로 만든 꽃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그것은 바리데기의 설화를 통해 재생(再生)의 상징이자, 염원과 희구에 대한 은유로 인식되고 있다. 설화에서의 바리데기는 부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진하여 저승으로 간다. 결국 곡절 끝에 구해온 영약은 바로 몇 송이의 꽃이었다. 이 꽃이 바로 바리데기 꽃으로 이미 저승에 간 자신의 부모를 이승으로 다시 되돌린다. 꽃이 바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상징적인 매개물인 것이다. ● 일정한 의미가 부여되고 상징성이 설정된 꽃이기에 작가의 꽃은 외양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감성과 직관에 의해 포착되어진 본질만을 드러낼 뿐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삶이 겪게 마련인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시작과 끝을 전제로 펼쳐지는 순차적인 과정이다. 그 과정의 끝에 자리하는 죽음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미망이다. 그러나 꽃이 피고 짐을 통하여 삶의 연속을 느끼고, 또 그것의 반복됨을 통하여 무한한 질서를 알게 되는 것은 깨달음이다. 이러한 순환은 반복이 아니라 또 다른 것으로의 재탄생이다. 그래서 재생이다. 재생은 불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을 자연이라고 한다.
작가는 꽃을 통해 이러한 자연의 순환을,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을 말하고자 한다. 작가가 차용하고 있는 'SHAPE_Nature In The Raw'라는 일련의 명제들은 바로 이러한 사유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당연히 여기에서의 자연( Nature)은 복합적인 의미로 읽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본질로서의 자연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무작위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본질은 인간의 작위에 의해 부여된 관념을 반영한다. 작가가 포착한 관념의 자연은 꽃으로 표출된다. 그 꽃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같은 상대적 가치에 대한 내밀한 사유를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자연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본질의 내용이다. ● 식물의 생장에서 꽃은 그 절정이다. 꽃은 외양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목적이 아니라 재생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며 치열한 몸부림이다. 절정은 다음 과정으로의 이행을 위한 마침표이자 쉼표이다. 죽음을 통해 다시 삶을 취하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변화를 일구어낸다. 모양을 버리고 의미를 취하고, 의미를 통해 또 다른 관념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현상과 본질,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작가의 꽃은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의 소통을 위한 통로이다. 그것은 작가의 직관에 의해 생육되어지고 아득한 관념의 숲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꽃이다. 꽃은 반복이며 순환이고 재생인 것이다. ● 분명한 윤곽선으로 절단된 꽃의 형상은 설명이나 수식이 배제된 채 침잠하는 색감들로 그 사변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수용성 안료 특유의 자율성과 반복적인 작업과정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 무수한 무작위의 요소들은 그의 사변을 수렴하는 조형 수단이다. 그것은 본래 묘사나 재현, 혹은 객관과 현상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설명과 수식에 구애됨이 없다. 색채는 중첩되면 탁해지지만 깊이를 담보해준다. 이를 안정적인 틀 속에서 수렴해 낼 수 있음은 바로 조형적인 기능이다. 작가의 화면에서 발현되는 안정적인 색채감각은 단연 돋보인다. 마치 유희와도 같은 분방한 색채의 운용은 바로 이러한 안정감이 전제된 것이기에 혼란스럽지 않다.
꽃의 한 모퉁이를 엮어 변화를 준 것은 조형에 대한 작가의 배려일 것이다. 더불어 부수적으로 더해지는 도마뱀의 형상 역시 주제에 대한 부연설명과 화면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배려일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에 대해 마치 여백과도 같은 이완의 기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확대되고 변형된 꽃의 이미지 속에는 무수한 우연의 흔적들이 집적되고 있다. 이에 더해지는 삼베 등을 이용한 질감의 효과는 바로 우연의 내용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우연과 무작위의 내용들을 엄정한 절단에 의한 단호한 형상들로 수렴됨으로써 일정한 질서와 조화의 틀을 갖추게 된다. 그것은 우연과 필연, 작위와 무작위의 반복적인 대비이자 병열이다. 우연과 무작위는 자연의 성질이며, 작위와 조형은 작가의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생과 사, 현상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의 대비와 같이 상대적인 것으로 존재하지만 언제나 상호작용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작가가 꽃은 재생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영생과 불멸을 희구하는 인간의 염원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상대적 가치에 대한 성찰에 다름 아닌 것이라 여겨진다. 구체적인 대상을 취하지 않고 관념적인 상징으로서의 꽃을 취하고, 부차적인 설명이나 수식을 배제한 본질로써 사유를 표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화면은 깊은 공명의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 이전에 인간,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루어진 내밀한 사유의 소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 김상철
Vol.20111129g | 박미희展 / PARKMIHEE / 朴美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