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TOPIA

조은필展 / CHOEUNPHIL / 趙恩畢 / installation   2011_1130 ▶ 2011_1213

조은필_일렁이는 궁전_혼합재료_7m 이내 설치_2011

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5:00pm

2011 미술공간現 신진작가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미치도록 blue! ● '파랑은 무한하고 신적인 일치감이 지배하는 공허다' (Max Heindel) 사람마다 잘 쓰는 언어가 있다. '블루'는 조은필에게는 가장 오랫동안 그녀를 대신해 줬던 언어이다.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블루란 단어의 경직성이 작가의 손을 거쳐 완전히 의미가 다른 새로운 단어가 되었다. 일종의 파격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의 블루는 그녀와 함께 움직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색에 집중하는 방식은 오늘날 미술 경향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곽인식, 이우환, 박서보와 같은 과거 1세대 모노크롬 작가들의 회화가 그런 측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모노크롬은 지극히 평면주의를 지향했으며, 그들이 추구한 궁극의 회화관은 색을 바탕으로한 우리 전통적 회화의 여백에 대한 감성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조은필의 블루는 조형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녀에게는 정신이며, 전작과 다름없이 이번 미술공간現에서의 작업들도 작가자신만의 blue를 보여주기 위해 조각과 회화, 설치의 영역을 하나로 통합한 집요함과 더 완전한 블루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조은필_일렁이는 궁전_혼합재료_7m 이내 설치_2011

조은필은 'blue'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의 지평을 탐구한다. 눈에는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추상적 색을 재료로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면면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와 소재들에 파랑색을 대입시켜 가장 적절하며 완전한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미학적 안목과 실력을 키워갔다. 동시에 복잡미묘한 감정과 애환이 뒤섞인 개인사를 파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성장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조은필의 기억과 감정의 단편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결국 파랑이라는 하나의 색깔로 마침표를 찍는다. 작가는 파랑을 알면 알수록 더 순수한 파랑을 찾기 위한 욕망이 생겼다. 완전한 백색, 완전한 검은색과 같은 완전한 블루. 이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광기의 블루를 보고 싶은 그녀의 집착은 전공인 조각을 통해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런던 시절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입체적인 조형물과 평면, 드로잉, 비디오 작업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하면할수록 기법의 과잉이 오히려 순수한 블루의 존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이브클라인의 IBK(International Klein Blue)같이 '플르트로 한 가지 음을 끝없이 내는 것처럼' 그 강도에서 어떤 변화도 느낄 수 없는 블루. 조은필 작가도 그런 순도 100%의 사색과 같은 블루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조은필_일렁이는 브릿지_혼합재료_1.5m 이내 설치_2011
조은필_일렁이는 브릿지_혼합재료_1.5m 이내 설치_2011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블루를 에워싸던 수많은 필터를 걷어내고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갔다. 조형적 기법에서도 2차원과 3차원을 동시에 넘나드는 뜨개질을 이용한 작업들을 구체화 시킨다. 신작 "블루 너머의 블루", "일렁이는 브릿지", "일렁이는 궁전"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라 보여진다. 이 작업들은 실 하나하나를 평면상에 겹친 2차원 배열을 통해 3차원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뜨개작업으로, 작가는 데자뷰처럼 기억 속에 생생히 전달되는 상황들에 대한 감정과 사유들을 현재라는 공간에 그대로 재현시켜 시공간을 초월한 기억들이 씨줄 날줄 얽히면서 그동안의 여러 가지 변화들로 인해 무너졌던 자아를 다시 찾아가고, 과거의 나를 위로해주는 자기 치료를 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일단 블루라는 키워드로 복합적인 형상을 색으로 통일시켰다. 어떻게 보면 인위적인 풍경이다. 일상과 기억. 내가 기억하는 시간과 객관적 사건의 간극이 만났을 때 사실과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추상적인 블루의 힘을 빌리고 있다. 뜨개실 하나하나는 가장 사실적인 사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현실성과 추상성이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현란하게 짜이지도 날카로운 묘사력도 없지만 대신 느긋하고 일상적인 시간의 교직(交織). '소리나는 대로 받아쓴' 작가의 일기이며 시가 읽혀진다. 이것은 옛 기억과 새로운 기억들이 공존하는 중간지대이며 재생과 환영이 동시에 보여지는 청색의 심연이기도 하다.

조은필_채울 수 없는 꿈_혼합재료_5m 이내 설치_2011
조은필_채울 수 없는 꿈_혼합재료_5m 이내 설치_2011

실재론자들은 하나의 색채가 실재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거울인 것처럼 생각하며 표현되어 있는 색채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에 반해 수많은 색채이론가들은 색채는 거울이 아니라 구성되어진 삶 자체이며 고정된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생생한 운동이라고 주장해왔다. 조은필의 작품을 보고나면 우리는 실재론자들의 이야기보다는 색채이론가들의 주장에 마음이 갈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설치예술로는 보기 드물게 명상적이며 이 명상적인 힘을 더 하는 것은 우주적인 색상 블루이기 때문이다.

조은필_Drawing

색은 인류문명사의 고비마다 불가사의한 문화적 성취를 종종 이끌어낸 힘이었다. 대부분은 신앙에 바탕한 상징적 의미들이 색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정신적 에너지와 상상력을 주었다. 특히 "블루"라는 색은 역사 속에서도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희귀하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존재를 'oiseau blue'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힘을 나타낼 때도 있고, 우울함, 울적함 불행, 비극성 공허함, 극도의 고독을 나타낼 때도 이 블루라는 색은 등장한다. 우리는 조은필의 이번 전시에서 블루의 이런 2가지 극단적 힘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성찰과 반성의 마음, 그리고 생명감이 충만한 서정적 세계를. ■ 김가현

Vol.20111129c | 조은필展 / CHOEUNPHIL / 趙恩畢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