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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기획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출판문화정보단지 516-2번지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존재는 더 깊이 ● 나는 내 손과 눈으로 범한 오류들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라공 ● 구명선은 추억은 꺼내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단호함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녀가 꺼내어서는 안 될 그것은 무엇인가? ● 이제는 새로운 형식이나 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정보와 이미지가 무한히 공유되는 환경에서는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점점 더 독해진다. 그리고 점점 더 불안하고 불경(不敬)해진다. 예술과 관련해 실재니 존재니 하는 것들은 덩달아 입에 올리기 머쓱한 지경에 이르렀다. ● 현실은 병적 나르시스트들 속에 불길하다. 어리둥절하고 두려운 사건의 연속이자 환경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미지와 실재, 예술과 존재 사이의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떠올린다. 홀로 등장하는 여인(소녀)의 초상은 자화상이자 그녀가 속한 세계상이다. 이런 이미지는 아주 모호하고 불투명한 징후처럼 느껴진다.
여인(소녀)는 빛나는 눈과 오똑한 코, 무채색이지만 분명 앵두색임에 틀림없는 입술, 비정상적인 두상과 순결함과 음란함이 뒤섞인 몸이다. 검은 분위기에, 별을 담은 듯 광선을 내뿜는 눈의 여인(소녀). 그로테스크한 순정만화 여주인공은 불타는 어떤 야망, 꿈, 복수 등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여인(소녀)이 있는 사건은 불길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평범한 일상이 한 순간 뒤틀린 공간에서 벌어진다.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며 마침내 멈춰버린다. 예고 없이. 사건의 순간, 찰나의 무채색이 공간에 홀로 나타난다. 어떤 뜻밖의 조우처럼, 흑연으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먹먹한 화면에 눈만이 영롱하다. 별을 닮은 빛은 내부에서 기원하거나 아니면 그녀가 바라보는 외부의 무언가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유난히 초현실적 분위기를 고취한다. ● 순정만화의 관습과 형식은 생각처럼 그렇게 순수하지도 맑지도 않다. 오히려 순정과 공포의 코드가 교차하면서 현실의 기묘한 감각이 과장되어 드러난다. 이곳의 현실은 무수한 차원의 결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현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잠복해 있다는 감각들로 구성되어있다. 청소년기의 미숙함과 타고난 직관의 섬세함이 뒤엉키어 성숙한 정신에서는 생성되지 않는 새로움이나 낯설음이 갑자기 솟는다. 닮은 듯 닮지 않은 형태의 왜곡과 표현의 과잉이, 이 정체불명의 뉘앙스가 흔적 같은 인물에 주목하게 한다.
여자는 무엇이 되는가? Was will das Weib? -프로이트 ●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빛이 눈을 찌른다. 그러나 이 빛은 오히려 그녀의 눈멈을 연상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다른 곳을 응시한다. 이 응시는 공격적 은유으로 불길하며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소녀와 섹슈얼리티를 연결하는 것은 금기이고 욕망을 함께 다루는 것도 위험한 짓이니 그녀는 소년처럼 보이나 여인이어야 한다. 그 여인(소녀)은 파멸적 결과를 앎에도 욕망으로 뛰어든다.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니(알랙상드르 코제브A.Kojéve), 그녀의 욕망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결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녀를 묘사하는 것은 신비하고 교묘해야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묘사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 깊은 우울, 어떤 범죄나 죄악의 앞이나 뒤에 자리한 여인은 마치 '양철북'의 주인공처럼 성장을 일부러 멈추기로 결심한 듯 미성숙의 불안과 공포. 허약한 신체와 견고한 의지의 기형적 조합, 깊은 사디즘과 마조히즘. 결코 해가 뜨지 않는 시간의 세계가 반복해서 벌어지는 사건, 음모, 범죄, 희생물. 정체불명의 사건이 벌어질 전조를 짙게 풍기는 세계가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속 인물들의 당혹과 혼돈을 담은 듯 홀려있는 여인(소녀)이 있다.
이 일련의 이미지들이 작품의 재료적 표면을 초현실적 음모의 세계로 비약시킨다. 어떤 음모나 계획을 심중에 담은 여인. 환상으로 가득찬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1985)'나 '여인의 음모'로 번안되었던 '브라질((Brazil, 1985)'의 그런 폐쇄회로와 같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복과 연속. 일본의 공포만화가 이토준지의 집착과 강박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불길한 징후를 본다. 구명선의 여인(소녀), 별빛은 더 이상 예쁘지 않다. 단순한 순결과 순정이 아닌 복잡한 기호와 상징이 배후에 꼬여있는 풀 수 없는 문제투성이의 그러나 자신의 욕망의 포기하지 않는 여인(소녀). 신체와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고 표현하려는 욕망을 욕망한다. 불길하고 위협적이다. 그녀의 눈과 손은 보이지 않으나 위험하다. 수없이 많은 경고음이 쏟아진다. 그러나 뛰어든다. ● 환영처럼 관객의 눈을 바라보는 그녀는 결코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정말 말 그대로 환상 속의 그녀일 뿐이다. 결코 따라잡을 수 없거나 또는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운동. 그녀의 눈빛은 초신성처럼 빛을 발하고 곧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나약하고 체념과 우울, 불안과 결핍. 그런 분위기들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닌 아주 깊이 슬프게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오래전 말했던 아주 낮은 환상이다. ● 개념의 운동에 앞서 감각과 정서의 운동이 먼저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비록 개념과 논리가 감각과 정서를 구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함에도 존재론적으로 감각의 운동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앞선 운동은 동시에 분위기를 생성하고 결정한다. 존재는 더 깊이, 이미지는 단박에 접촉한다. ■ 김노암
Vol.20111128i | 구명선展 / KUMYUNGSUN / 具明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