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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23_수요일_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미산 마을극장 서울 마포구 성산동 249-10번지 시민공간 나루 B2 Tel. +82.2.332.0345 cafe.naver.com/sungmisantheater
1. 2011.6.12 일.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 본 듯한 그녀, '기린'은 기다란 몸에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수수깡처럼 말랐다. 각진 뺨, 직선적인 콧날과 얇은 입술이 초식동물을 닮은 눈망울과 어울렸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갈색 원피스가 한 몸처럼 붙어서 흘러내렸다. 그 위에 밥풀 꽃 같은 무늬가 문신처럼 화려하다. 긴 팔과 긴 손가락이 느릿한 말투에 맞추어 움직거렸다. 높다란 천정 아래 야트막한 그루터기 걸상에 앉은 그녀는 잘 웃었다. 소리가 말이 되어 들렸다. 기린은 기억 속에서 남편과 자식, 부모의 모습 속에 비친 자신을 그렸다. 지금은 성미산 밥집에서 요리하는 남편과 함께 밥집 운영위원장을 하며 마을살이한다.
"어떤 색을 좋아하나요?" 기린은 인디안, 레몬, 야광의 노랑까지 노란색을 좋아했다. 엄마의 꽃집을 이어받았을 때가 27살이었다. 노란 튜율립, 노란 카라, 노란 프레지아 꽃들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도 튀고 싶어 노란 색을 좋아했다. 생리적으로 반응하는 색이 있고, 기억 속에 또렷한 색이 있으며,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색이 있다. 그녀의 노랑은 기억 속에서 몸으로 반응하는 상징적인 색이었다. 남편은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면 아마 "그냥"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주문진 앞바다의 깊게 푸른 물빛을 기억의 한 구석에서 끄집어내는가 싶더니 내게 되물었다.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색을 경험했다. 그 가운데 곰곰 되짚어보았다. 발광하는 색이 좋다. 살짝 아우라를 머금은 금속성의 색깔이 좋다. 발광색은 초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너와 나의 사이를 메우고 흐르는 공기를 느끼게 하는 색이 좋다. 발광색은 투명하다. ● "화가로만 살았나요?" 화가는 그림이 생업이다. 화가는 마을에 사는, 마을에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마을사람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마을화가는 새로운 그림보다 좋은 그림을 추구한다. 소위 프로의식을 요구하지만 프로의식은 놀이의 진정성보다 노동의 경직성을 정당화한다. ● "남편은 정말 요리를 좋아하고 잘해서 마을사람들이 요리사를 시켰는데, 그럼 진짜 요리사겠네요." 어느새 그녀의 말투가 귀에 익었다.
13. 2011.10.5 수 베로키오 커피숍 지하 다용도실에서 깜장 옷차림의 솔내음을 만났다.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저는 빨간색을 좋아해요."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탁한 색을 싫어한다. 쾌청하고, 환하고, 화들짝하고, 명랑한 색을 좋아한다. 비오는 우중중한 날이 싫고, 회색이 싫다. 남색을 좋아하는 남편이랑 반대다. 어릴 적부터 공주처럼 예쁜 레이스 달린 깔끔한 원색의 옷을 주로 엄마가 입혀 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 "싫어하는 색은 있나요?" "특별히 싫어하는 색은 없지만, 베이지 색 계열의 옷은 제게 잘 맞지 않아요. 다른 분들이 입으면 차분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저는 별로예요." 빨강은 그녀의 몸에 배인 색이었다. "남편과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데 산과 들판에 펼쳐지는 녹색이 좋아요. 아치형의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명한 색 또한 맑은 날에 또렷하게 보이는 그런 녹색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이 가득하며, 불의를 못 참아 욱하는 성정을 지녔다. 그런 그녀에게 대학 2학년 때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실어증을 심하게 겪었으며 10%밖에 안 되는 임신 가능성으로 여러 번의 유산 끝에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결코 순탄치 않은 큰 경험들이 그녀를 지나갔다. 그런 경험들이 상황에 부딪치면 즉각 어떤 식으로든 대처하게 하는 능력을 그녀로 하여금 갖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내는 남다른 리더십이 생겼다. "상복을 입어 본 후로 다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쩍 들었고 검정색 옷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살도 덜 쪄 보이고요. ㅎㅎ" 이제 불혹에 접어든 그녀는 몸이 원하는 색으로 빨강을 먼저 말하고, 두 번째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마주친 색으로 녹색을 떠올리더니, 마지막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혹은 몸의 변화 속에서 의식적으로 선호하게 된 색으로 검정을 꼽았다. 이런 순서는 사람들마다 달랐다. ■ 류장복
Vol.20111128e | 류장복展 / RYUJANGBOK / 柳張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