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展 / WENCHENG / 文成 / painting   2011_1123 ▶ 2011_1129

문성_나무시리즈 11-02_캔버스에 유채_91×65.2cm_2011

초대일시 / 2011_1123_수요일_06: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LEE's Studio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나무의 질감, 생기와 혼 ● 뜨거운 햇볕에 녹아 내린 날개처럼 덧없이 스러진 이카루스의 꿈. 태양에 닿고자 하늘 높이 오르고 올랐지만 한 순간 날개를 잃고 바다로 떨어져 포말처럼 사라진 이카루스. 그는 순리를 거역하는 무모함과 오만함의 상징인 동시에 이상을 좇아 운명과 겨루다 비극적 종말을 맞고 마는 낭만적 영웅의 전형이다. 이런 역설적 가치와 평가 들이 공존하기 때문일까. 이카루스는 '예술'하는 이들의 이상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 자만', '오만함' – 우리말은 차치하고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들로도 옮기기 힘들기에 라틴어 문화권에서도 있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 등을 뜻하는 라틴어 hubris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 사전적 의미 이면에 조금만 절제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자만, 오만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살포시 감춰져 있는 역설적 단어이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hubris를 지난 5~6년 동안 시도했던 서로 다른 네 가지 작업들을 이어주는 키워드로 삼아 자신의 작가 정신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젊은 예술가 강석호의 시각적 비망록이 바로 『Hubris Disembodied』이다.

문성_나무시리즈 11-04_캔버스에 유채_70×70cm_2011

작가는 이처럼 회화의 몸이며 살점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기 위해서 붓 대신 나이프를 쓴다. 나이프는 칼이다. 정신을 벼리고 감각을 벼리고 몸을 벼리는 사무라이의 칼이다. 작가는 그 칼을 도구 삼아 나무의 감각적 닮은꼴을 해체한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대기 사이를 헤집고 뒤덮어 가려 유기적인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 덩어리는 얼핏 무분별한 안료들의 지층처럼 보이고, 무의미한 얼룩들의 단층처럼 보인다. 그렇게 화면은 오리무중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암중모색의 표면 위로 나무가 보이고, 대기가 보이고, 나무와 대기와의 관계가 보이고, 이 모두를 싸안는 생기가 보인다.

문성_나무시리즈 11-09_캔버스에 유채_197×670cm_2011

작가는 나무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생기를 그렸다. 나무는 다만 생기를 그리기 위한 구실이었던 것이다. 생기를 그리면서 비로소 나무를 그릴 수가 있었고, 나무의 나무다움을 더 실감나게 그릴 수가 있었고, 나무와 내가 교감한 흔적을 그림 속에 아로새겨 넣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문성_나무시리즈 11-06_캔버스에 유채_65.2×91cm_2010
문성_나무시리즈 11-11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0

작가가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는 백두산 나무며 숲이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영산이다. 백두산 속에서 작가는 백두산이 내뿜고 싸안는 영기를 느낀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한 에너지로 육박해오는 그 기운을 그리고 싶다, 고 작가는 내심으로 욕망해왔고 그 욕망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 욕망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시각적인,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는 촉각적인, 그리고 몸적인 그림을 통해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민족의 정서의 질감을 그려낸 것이다. ■ 고충환

Vol.20111124c | 문성展 / WENCHENG / 文成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