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12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11월 24일 10:00am~07:00pm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白玄 박경묵의 산수, 그 강건한 정도(正道)의 미학 1. 생명의 힘을 드러내다. ● 우리의 산천을 그려온 화가 박경묵이 보여주는 먹의 향연은 반듯하고 건강하다. 그의 산수화에는 우뚝 솟은 바위나 폭포, 오래도록 그 자리에 위용을 잃지 않은 나무의 솔직한 기상과 넘치는 생명력이 담겨 있다. 이 화면을 뚫고 나올 듯 점잖은 검은 빛의 웅변들은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봄의 섬세한 표정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뿌리에서 간취되는 담담하고 성실한 본질적인 모습들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실경산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경회루, 향원정, 태종대, 구룡폭포, 명륜당 등 이들은 고유한 역사성과 의미를 가지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또한 화가들의 영감의 대상이 되었다. 실경산수는 겸재 정선에게서 시작되어 중국의 이상화되고 관념화된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가 보고 자라난 우리네의 자연을 담아내는 그림이다. 우리의 정서가 스며들어 있는 풍경과 그 의미들을 담아내는 것이 실경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의 작품 또한 시간을 머금고 오롯하게 자리 잡은 대상의 성정과 드라마틱한 삶의 내용이 거친 필의 운용 속에 담겨 있다.
작가가 주목하는 자연의 성정은 우리 땅 속에 스며들어 있는, 형상 속에 감춰진 뼈(骨)의 본질과 정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그의 필묵의 운용은 건조하고 빠르며 힘차다. 건조하고 빠르게 지나간 산천의 돌과 나무에는 골격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찾아내는 골법용필(骨法用筆)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자연의 정신성을 발견하고 음미함이 포착 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골의 본질은 자연의 감추어진 힘찬 생명력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전작(前作)에서 보여주었던 죽순(竹筍)이 하늘로 향해 뻗어나가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의 출렁거림, 폭포의 떨어짐, 천고의 세월을 한 자리에 굳건하게 자리한 바위의 표현처럼 우주를 움직이는 힘과 자연을 자라나게 하는 생명력이 가시화 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가 닮고 싶어 하는 이상으로서의 본질적인 삶의 모습이기도 한 듯하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듬직하고 건장한 생명들은 그들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사물의 질서, 자연의 질서는 숨 쉬고 자라나게 하는 생명의 흐름과 개별 사물들이 모여 세계를 구축하는, 조화로움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산수에는 생략과 구조화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간략한 산과 바위, 나무가 하늘과 땅의 움직임에 수긍하고 때론 포효하는 질서를 보이고 있다. 그 질서는 바위는 물을 범하지 않고 산은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들의 질서 속에 내재된 조화로움에서 개별 대상이 갖는 정직한 생명의 기상이 드러나고 있다.
2. 정도(正道)로서의 미학, 발견된 자아의 세계 ● 산수화는 5세기 위진남북조시대에 불교와 노장사상의 철학적 영향아래에 성립하고 발전하였다. 노장사상이래로 자연은 도(道)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본받고 다시 돌아 가야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산수화의 발전은 도의 본성에 기반 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산수화가 성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군자의 자질을 함의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본보기로서 4군자와 같은 문인화가 유행하고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박경묵의 회화세계에는 이러한 성리학적 세계질서로서의 자연을 관조하고 음미하는 모습들이 관찰된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성인들의 말씀을 담고 군자적 모델을 제시하고, 세상의 올바른 이치(天理)로서 다가오는 듯하다. 물론 작가뿐만 아니라 산수화는 성리학의 가치관을 투영한 것으로, 그리고 감상하는 것은 삶의 덕목이자 수양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러한 산수화의 가치는 작가에게 진리의 본질과 화가로서의 창작의 당위성에 관한 물음들에서 그 답을 제시하고 대안으로서 중요하게 인식된 듯하다. 물질문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삶이나 생명과 같은 본질적인 물음들은 자연에 투영되고, 그 자연은 작가의 물음을 담고 있거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그것 자체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본질로서 작용한 듯싶다.
이렇듯 박경묵의 산수화는 작가가 고민하고 희구하는 성인의 삶과 세계의 이치가 외부세계에서 발견되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자아에서 고민한 이상(理想)들이 투영된 것임을 알게 한다. 즉, 작가의 자아가 투영된 사물들을 발견하고 그 발견되어진 세계를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근작에 보여주는 두꺼비의 등장과 시선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작가가 「경회루-설경」에서 유장하게 써내려간 왕양명(王守仁)의 글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왕양명은 사물을 움직이는 이치는 실재하는 것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자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마음 곧 양지(良知) 속에서 깨닫고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 속에서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실천적인 자기성찰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개개의 사물을 체험하고 그 본성을 깊숙이 투과한 대상들 속에서 자신이 희구하는 세계의 이상과 모델을 발견하고 형상화하는 듯하다. 그 형상들은 역사와 시간을 담고 자리한 웅혼하고 담박한 우리의 자연이며 우리의 궁궐과 같은 시간을 인내하고 역사를 길러낸 의미체로서 드러나고 있다.
석도(石濤)의 저명한 화론서인 『화어록(畵語錄)』 에는 예술작품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객관 실제 가운데 깊이 들어가 감득한 바가 있어야 묘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먹은 정도(正道)를 닦지 않으면 정기(精氣)가 없고, 필(筆)은 생활(生活)이 없으면 신묘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는 곧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자연의 대상에 자아가 이입되고 체화되고 또한 물화(物化)되어 그것의 본성에 감동받아야만 대상의 본질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먹의 숨소리를 이해하고 잘 다스리는 정도(正道)에서 기초하고 탄생하는 것이다. 박경묵의 수묵작업들이 온건하고 정직한 먹의 다스림이 간취되는 것도 석도가 말하는 정도와 같이 먹의 성질을 소중히 다루고 있음일 것이다. 작가가 먹이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방법임을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먹의 발묵과 표현의 스펙트럼(spectrum)에 감정적 일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풍경 속에 들어가 대상을 익히고 깨닫는 생활지신(生活之神)으로서의 체득으로 일궈낸 화작의 태도 또한 실경산수로서의 자신의 근원을 잃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한다. 동양화의 신 해석, 전통의 현대화라는 테제들이 그 의미의 양산을 증폭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사물의 본질과 자신의 사유를 투영시키고 초연히 대상을 관조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 長江 박옥생
나는 삶과 예술을 행함에 있어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느꼈으며,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행하여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또한 존재함으로 존중에 대한 보편적 진리에 대해 사고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본질과 이치에 대한 깨달음으로 질서를 이해하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범관(范寬)과 왕수인(王守仁)의 뜻을 본받아 나의 예술이 마음으로 소통되길 바란다. ■ 白玄 朴京默
Vol.20111124a | 백현 박경묵展 / PARKKYOUNGMUG / 白泫 朴京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