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권여현_김성국_김종준_위영일_이이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일현미술관 ILHYUNMUSEUM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 191-8번지 Tel. +82.33.670.8450 www.ilhyunmuseum.or.kr
명화에 대한 명화 ● 명화는 또 다른 명화를 만들어 내는 창작의 원천이다. 이것은 미술의 역사안에서 손꼽히는 명화들의 상당수가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재해석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 명화에 대한 가치와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마네의 걸작 「올랭피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며, 고흐의 작품 여러점이 밀레의 작품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색채와 형태를 구축할 수 있었다점이 그러하다. 또한 20세기 천재화가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비롯한 루벤스, 들라쿠루와 등의 작품을 여러번에 걸쳐 인용함으로써 이미지 해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구축할 수 있었다. ● 명화에 대한 미술사 속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동시대에 들어와 현대미술작가들에 의해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창의성이 절대적인 독창성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화에 대한 정당한 차용과 변용, 재해석의 과정 또한 창작의 한 부분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즉 현대미술작가들은 명화를 더 과감하게 변형하고 스타일화시키며, 자신만의 언어로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명화를 창작의 유용한 토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명화를 통해 과거와 현대를 잇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다양하게 구성해 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양, 서양의 명화가 차용되며, 원래의 이미지와는 다른 문맥과 생각을 끌어내 명화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는 그 원본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탐구해 보는 기회와 함께 동시대 작가들의 명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형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관람자에게 이미지를 보는 폭넓은 시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원작을 풍자적이고 재치있게 패러디한 권여현의 작업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한 역할놀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업은 특히 명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작가와 제자들의 얼굴로 대체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찾아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성격, 지위, 역할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며, 이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자아에 해당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신템브리드(syntagmbrid: 신템(syntagm)+혼성(hybridity))시리즈 중 신템(syntagm)에 해당되는 작업으로 그의 작품들은 명화를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원된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국의 작업은 명화의 이미지 안에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나 현상들을 차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The Revealed Apostles」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하여 극적이면서 어색하게 표현된 제자들의 자세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다빈치의 1474년작 「수태고지」에서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제스쳐를 일상으로 가져와 다른 두 인물을 배치하고 두 인물만이 알 수 있는 소통의 표시로 전환시켜 버린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관점에 대한 확장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며, 소외된 자아에 대한 투영으로도 해석 될 수 있다.
김종준은 1960년대 아메리칸 팝의 두 거물인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원작의 이미지를 작업의 밑그림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독창성을 고의로 훼손하려든 60년대 서구 미술운동의 결과물 가운데 일부를 고스란히 옮겨와 색 변환과 텍스트 삽입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원화 이미지(파일)를 차용하여 자신이 직면한 시공간(2007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현안을 패러디하여 회화를 명상 또는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도 행복한 눈물이 있는가?」는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작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한국에서 2007년 한 글로벌 그룹이 비자금으로 구입한 그림으로 폭로되어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아이콘과 같은 작품이라 보여진다.
위영일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여전히 형식을 창조하는 일에 몰두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와, 예술에 있어서 독창성이란 무엇이며, 또한 예술의 자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서양의 유명작가들의 최소한의 조형언어로 표현된 유니트(unit)를 구성하여 하나의 팔레트안에 진열하고 있다. 그는 형식을 창조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기존 작가들의 형식과 매체 속에서 끄집어 낸 독특한 유니트들을 차용하여 포스트-모던 패러디를 보여줌으로써 예술의 본질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이남은 고전의 명화속에서 다 표현되지 못하거나 생략되어 버린 시선을 찾아 미디어에 구현하는 방식으로 원작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오래전 평면회화속에 잠재되어 있던 움직임을 상상하고 그 상상의 세계를 테크놀러지 기술을 통해 생기 넘치는 움직임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어색하지 않은 만남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이이남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패러디나 혼성모방이 현실을 비판하고 과거 전통적인 방식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부정을 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새롭게 해석된 고전의 명화에 대한 관람자의 자연스러운 동화와 긍정적인 수용을 통해 명화의 감동을 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 김유진
Vol.20111119k | 명화에 대한 명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