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yscape, seoul

이동준展 / LEEDONGJUN / 李東俊 / photography   2011_1117 ▶ 2011_1127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09

초대일시 / 2011_111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00pm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칙칙한 리얼리즘'의 아름다움 ● 꾸준하게 한국의 도시와 건축물의 기록 작업에 천착해 온 이동준이 1993년의 첫 개인전 이후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들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달동네를 담은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동안 그가 '일'로 기록해 왔던 도시의 모습에는 대상에 대한 사진가 고유의 관점이나 감성이 상당부분 배제되어 있었다. 정보가치를 중시하는 공적(公的)기록은 대상에 충실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 그가 찍었던 사진들은 냉정한 관찰의 결과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정함과 객관주의적 시각이 배어있었다. 물론 그 사진들에도 작가의 개인적인 감성과 주관이 바탕에 깔려있을 테지만 기계 종속성이 강한 사진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한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대상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 카메라 워크에 대한 제한 등이 굴레로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한편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들은 이런 제약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워 보인다. 공적(公的)기록에서 벗어난 사적(私的)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시각적으로만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의 주체에게 그 차이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키는 의미의 파장과 감흥의 밀도는 측정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개인의 내밀한 기억과 세계관, 감성, 취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공적 기록에는 그런 것들이 빠져 있으며, 어떤 점에서는 마땅히 배제되어야만 한다. 반대로 사적 기록에서는 그것들이 곧 작업의 추동력이 된다. 그런 것들을 읽어내어 우리가 작가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 사진들은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이 된다.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0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0

재개발 지역을 사적으로 기록한 이번 작업에는 작가의 관심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지역이 지녔던 공간으로서의 지위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삶의 체취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집과 골목, 주거환경보다는 지역주민들의 발길이 수도 없이 오갔던 길바닥과 계단, 녹슨 호미와 모종삽, 때묻은 장갑, 각종 청소도구 등이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거공간이 사진에 담겨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열악한 삶을 이 소품들을 통해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0

담벼락의 칠은 흉측하게 부르튼 상태이고, 벽 자체가 갈라져 임시방편으로 땜질해 놓은 모습도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주워온 듯한 판자로 대충 막아놓은 문, 툭 치면 떨어져 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녹슨 자물쇠는 그야말로 '대충'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에 대한 구슬픈 상징이다. 그래도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이들의 몸부림이 곳곳에 묻어 있다. 얼마나 많은 흙과 돌을 치웠을지 모를 부러진 삽, 한 쪽으로 쏠리고 닳아 더 이상 아무 것도 쓸어 담을 수 없어 보이는 플라스틱 비, 심하게 녹슨 쓰레받기, 팽개쳐진 호미, 벽에 기대어 놓은 대걸레 등이 그것이다. 이 도구를 가지고 이 곳을 얼마나 열심히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을 것인가. 어쩌면 그들은 그러기 전에 우선 살아남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한겨울의 맹추위로부터 간신히 온기를 전해주었을 다 탄 연탄재 위에는 녹지 않은 눈이 얼음으로 남아있고, 냉기 때문에 집안에서 말리지 못한 양말은 처량하게 밖에 걸려 있다. 그들에게 겨울은 재앙이었을 것이다. ● 이 사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재개발 지역의 모습은 어둡고 칙칙하다. 사실 도시의 대부분은 본래 잿빛 건축물로 뒤덮여 있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화사하고 현란한 모습도 함께 있다. 오래되거나 실용성이 떨어지면 개축을 하는 탓에 도시의 모습은 쉴 새 없이 바뀐다. 도시는 늘 새 것을 꿈꾼다. 하지만 이 사진들에 나타난 재개발 지역은 낡은 차원을 한참 벗어나 거의 부패해 있다. 손을 대면 부스스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담벼락의 페인트칠, 썩어서 푸석푸석해진 판자, 깊이 녹슨 각종 철재, 한번도 물청소를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콘크리트, 이 모든 요소들은 이 곳이 버림받은 지역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실제로 이 곳은 버림받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개발의 손길이 닿지 못했고, 어떤 점에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악착같이 살았고, 그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이동준이 꼼꼼하게 채집해낸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0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1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그들 "삶의 흔적과 손길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담아보려 했다고 적고 있지만, 사진은 오히려 음습하고 칙칙한 인상을 짙게 풍긴다. 아마도 작가는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자 했던 삶을 향한 건강한 의지를 그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그리 표현했을 것이다. 여전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어둡지만 작가의 시각은 밝다. 작가가 '밝게' 보았던 '어두운' 이 사진들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는 전적으로 수용자에게 달려있다. 그것이 사적(私的)기록의 매력이자 딜레마이다. 이는 공적(公的)기록에 오랫동안 매달려 왔던 작가가 앞으로 진행해 나갈 작업의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고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동준의 이번 작업을 일종의 '칙칙한 리얼리즘'이라 부르고 싶지만 사적(私的)기록에 결정된 의미는 없다. 거기에서 건강한 삶과 '아름다움'을 읽어낸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 없기 때문이다. ● 버려진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기이하지만 그런 감성이 그 사물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의 질긴 삶에 대한 애정에서 온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아름다운 대상이란 본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상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감성에 따라 이 사물들을 아름답게 보았다. 그런 감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안타까움 때문일 수도, 연민 때문일 수도, 혹은 애정 때문일 수도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것들을 기록해 오면서 몸에 밴 본능적인 집착일 수도 있다. 어쨌든 관건은 그가 버려진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따뜻한 심미안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칙칙한 리얼리즘'의 심미적 차원이 여기에 있다. ■ 박평종

이동준_Alleyscape_seoul_90×60cm_2011

도시라는 역동적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만들어간다. 삶이 담긴 공간 또한 그 삶의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추어간다. 해질 무렵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화려한 모습은 절대 멈추지 않을 거대한 현대 문명의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달빛도 어두운 밤 아스라한 불빛 아래 어둠을 벗삼아 걸어 돌아가는 서울의 뒷골목은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전한다. 서울의 주거 형태를 기록하면서 낮은 곳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고단한 삶이 깃든 사실적 공간들이 내게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우연히 마주치는 담벼락, 무심히 세워져 있는 도구, 금방 벗어놓은 듯 뒷축이 구겨진 신발, 일을 마치고 가지런히 널어 놓은 지저분한 장갑, 차가운 회색 벽, 우리 시야에서 오래 전에 이미 멀어진 낡고 오래된 사물들이 어느 순간 내게 무언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반전되어 다가왔다. 세월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빛 바랜 벽, 덧칠한 페인팅 사이로 배어 나오는 미묘한 명암, 다양한 삶의 오브제 등 그 거칠한 질감에서 오는 색들의 정겨운 맛을 가장 사실적인 매체, 사진의 틀 속에 담았다. ■ 이동준

Vol.20111119e | 이동준展 / LEEDONGJUN / 李東俊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