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원

정진용展 / JEONGJINYONG / 鄭眞蓉 / painting   2011_1102 ▶ 2011_1126 / 일요일 휴관

정진용_日月五嶽十長生圖_acrylic guache &crystal bead on canvas_145×245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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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토요일_11:00am~05:00pm / 일요일 휴관

이언 갤러리 EON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137번지 Tel. +82.2.725.6777 www.eongallery.kr

락(樂/落)원의 抒 ● 우뚝솟은 다섯봉우리에 금빛폭포가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로 쏟아진다. 나무와 새 사슴, 그리고 거북이들도 금빛으로 빛난다. 부귀영화, 장수번영의 상징들이 황금빛으로 섞여 노니는 곳, 일월오악십장생도의 세계다. 바로 황금의 낙원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번쩍이는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근정전의 처마위로 승천한다. 신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안정적일 때 세상이 평화롭듯, 군주의 권위가 신뢰를 얻을 때 태평성대는 이루어졌다.

정진용_金龍登天_acrylic guache &crystal bead on canvas_145×220cm_2010

낙원은 고대 페르시아어 pairidaēza에서 유래되었다. 어떤 장소가 낙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原意대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조건들이 주위를(pairi) 둘러싼(daeža) 곳이면 낙원이라 여겨질 법하다. 인간의 다양한 문명과 사회, 그리고 욕망의 변천사속에서, 낙원은 항상 비현실적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이를테면 극락, 혹은 천국은 한결 같이 衣食住와 生死의 고통이 없는 곳으로 묘사된다. 보통의 인간에게 현실의 생존은 낙원의 생과는 거리가 멀지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한 인생살이속에서 빈번히 찾아오는 공포, 불안과 같은 고통의 요소들은 결코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긴장의 요소들이 개인의 삶에 작용함으로서, 각자의 경계와 반성을 일으키고 개인이 세계속에서 능동적 개별자로 존재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고통의 경우에 대해, 인간이 그것을 비현실이라 치부하여 외면하려는 경향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닥치지 않은 불안과 공포의 요인을, 주의깊게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보다는 포기, 회피 혹은 외면의 방식을 통해 지금의 상황에서 적절한 안정을 취하려고 애쓴다. ● 이렇게 보면 낙원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수동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낙원은 현세와는 동떨어진 장소처럼 여겨지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초극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곳은 아니다. 창세기복락원이든 아미타극락정토건, 내세적 낙원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의식이 현실을 초월하게 만든다. 이것이 종교의 존립을 위한 필수조건이겠지만 종교적 낙원은 사실상 樂을 위해, 樂만이 존재하는 곳, 그야말로 樂園이다. 여기에 일방적 낙에 대한 인간의 반성이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낙원은 苦가 없으므로,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와 자유의지가 활발히 작동하는, 자발적인 의식구조를 가진 자성적 인간에게, 오직 낙을 위한 낙만이 존재하는 낙원이란 아무래도 탐탁치 않다. 이기적인 祈福의 기도가 이루어져 낙원에 입성한다면, 첫 번째 조건은 자율신경의 차단과 개별의식의 소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메트릭스 안의 가상들처럼 세속적 인간에게 내세의 낙원이란 현세의 부족함이 채워진 곳일 뿐이다.

정진용_락원1101_墨, acrylic guache&crystal bead on canvas_160×130cm_2011
정진용_락원1100_墨, acrylic guache&crystal bead on canvas_145×210cm_2011

현세의 욕망이 빚어낸 karma가 회계를 통해 소멸된다는 식의 종교적 신념은, 우리가 사는 공간을 낙원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낙원은 대부분 거짓회계로 이루어졌다. 신의 섭리를 빙자한 사제들의 물욕이 황금으로 된 신전과 사원을 끊임없이 지어대고, 우리는 빛의 존재를 향해 기도하기 보다는, 황금의 성상을 우러르는 짓에 더 익숙해져 있다. 타락한 마음들은 기도와 공양과 헌금의 질량만큼 빛나고 높아진다는 내세의 위치를 위해, 오늘도 황금의 성상들에 안부인사를 드릴 것이다. 물질적 풍요의 낙원에 대한 갈망이 천당과 극락을 금은보화가 넘처나는 곳으로 상상해 내었지만,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다만 그것에 있지만은 않다. ●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주변의 광기어린 종말의 징후에 대해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익숙해짐은 무관심을 낳는다. 우리가 모른체하는 동안 인간성의 막장을 드러내는 역겨운 사건들, 아동성폭행, 연쇄살인마, 자살률급증, 영화도가니로 다시 조명된 인화학교의 참상등이, 첨단의 낙원이라 여겨지는 고도의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속에는, 돈과 섹스와 마약에 얼룩진 향락의 뒷골목들이 고스란히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천사의 검은날개와 다르지 않다. 밝음과 어둠, 선함과 악함, 아름답고 추한 것이 뒤섞인 곳은 樂園이자 落園이다.

정진용_락원1103_beautiful RED_墨, acrylic guache&crystal bead on canvas_112×160cm_2011
정진용_락원1104_Seoul_墨, acrylic guache&crystal bead on canvas_145×245cm_2011

타락한 인류의 종말적 재앙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의 문서로부터 현대의 영화예술에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시점에서 인간존재와 인간이 제작해왔던 문명의 구조가 심각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은 신이 빚어낸 인성의 존엄을 타락시키고, 근래에 활발해진 세계각지의 기상이변은 물질의 풍요를 위해 소비한 석탄연료의 부작용 때문이다. 혹은 지난세기 이루어진 수천번의 핵실험에, 우리의 아름다운 초록별이 견디기의 한계를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 종교가 세속화 되고 초월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문명의 시대에, 인간의 기능은 신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문명의 현실은 낙원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인간을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인간의 능력이 신의 경계에 진입한 만큼, 파괴와 소멸에 대한 공포와 긴장도 신의 수준으로 커졌다. 마치 힌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묘사된, 아그네야(Agneya)와 유사한 파괴력의 대규모 살상무기를 현대의 인류는 이미 보유하였다. 불벼락을 내리치는 신의 파괴능력이 인간에게 쥐어진 지금, 파멸의 시계는 막장직전에 멈춰서 있다. 시한폭탄같은 괴멸의 징후는, 사실 외면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예견하면서도 외면하며 살아간다. 인위의 구조와 풍요로운 물질위에 세워진 인간의 낙원을, 반성없이 유지하려 애쓰면서 말이다.

정진용_락원1102_落照_墨, acrylic guache&crystal bead on canvas_112×160cm_2011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요, 그렇기 때문에 긴장과 공포 그리고 환희와 절망은 치열한 삶의 엑스터시(ecstasy)를 제공한다. 회계의 끝에 흐르는 통곡의 눈물과, 괴멸의 징후를 감지하게 하는 번쩍이는 섬광을 목격하는 순간 시간은 멈춰진다. 위대한 성상앞에서, 그리고 종말의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타오르는 장엄앞에서 인간은 숙연해진다. 수호자가 된 성상들의 머리위로 폭격기들이 몰려온다. 타오르는 하늘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부정을 경계하고 욕망을 추스르는 삶의 긴장감은, 우리가 그것을 놓지 않을 때 우리를 낙원으로 이끌 것이다. 그곳이 에덴(Eden)이건 정토(淨土)건 샹그리라(Shangri–La)건, 지금처럼 황량한 늦가을의 서늘한 풍경속에도 누군가 앉아 쉴 벤치가 있다. 아련한 초승달빛이 내리는 사원의 대리석이 은빛으로 빛나고, 저녁나절 호수의 낙조처럼 산자락의 어둠속에도, 금빛물결로 빛나는 아름다운 평온은 있다. 밤은 여지없이 찾아오겠지만 아침은 곧 밝을 것이다. ■ 로터스

Vol.20111118d | 정진용展 / JEONGJINYONG / 鄭眞蓉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