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119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화~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1, 2층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무위(無爲)로서의 인위(人爲) 혹은 예술 ● 양태모 작가의 작업실은 그가 전국의 여기저기를 직접 돌아다니며 얻고 사고 옮겨온 나무들, 식물들, 암석들로 이루어진 정원을 지나야 나온다. 그는 비교적 한적한 도시 근교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당히 너른 개인 정원을 만들었다. 단독주택이나 양옥에 비치된 정원은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표준적이다. 중앙은 잔디밭이 차지하고 비육우나 양계 닭처럼 조경사들이 사육한 나무들, 꽃보다 더 화사한 꽃들이 변두리에 배치된다. 돌은 산에서 대량으로 캐내 다듬고 모양을 낸 상품이다. 작가의 정원은 그 상투형에서 좀 떨어져 있다. 그의 '눈'에 띤 독특하게 휘어져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눕는지 알 수 없는 나무들, '제멋대로 생겨먹은'(자연스러운?!) 화산석, 화분이라고 불리지만 비바람에 노출되어 제 기능을 상실한 화분에서는 야생초나 야생화들이 별 차림새 없이 자라고 있었다. 그의 정원은 그의 방식으로 인위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옮겨온 자연의 자연스러움, 저마다의 개성과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일부러 꾸민다기보다는 '저절로' 생겨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지키는 중이었다.
물론 양태모 작가는 만드는 자(maker)의 위치를 떠나지 않는다. '무위자연'을 읊조리는 작가의 정원은 그렇다고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한, 자라는 것들을 모두 인정하는 잡초가 무성한 정원아닌정원은 아니었다. 그의 정원은 잡초가 없었고, 질서가 있었고 작가적인 컴포지션이 들어가 있었다. 즉 대단히 의도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자연', 그의 작가적 태도를 사로잡은 '무위(無爲)'의 특수성을 포착해야 했다. 더욱이 그의 작업실과 정원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쓰레기장에서 직접 사들인 산업폐기물이었다. 배수로용 관으로 사용되다가 부피를 줄이려고 압축된 시커먼 산업쓰레기들이 온갖 기이한 모양으로 한데 모여 있었다. 그것들은 현실 속 어느 것도 닮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쓰임새'를 벗어남으로써 개체성을 획득한 것들이었다. 작가는 또한 망망대해에서 인간적 표식으로 사용되는 부표 역시 고향 바닷가에서 주워와 작업에 소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애써 '촌놈'이라고 지칭하는, 어릴 적 왠지 쓸쓸하고 외로울 때 자신을 위로해준 것은 집근처 산이나 들판 혹은 들꽃이었다고 말하는, 예의를 중시하고 '진심'을 전달하는데 골몰하는 남성 작가의 자연, 무위의 '개성'(유위)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그의 '정원'을 먼저 분석했다.
작업실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사물'을 창조하는 예외적 개인인 예술가는 물론 근대의 산물이다. 예술가는 원본으로서의 자연을 모방하는 전근대적 단계에서 벗어나 내적 자연의 표현이나 '다른' 자연의 창조로 옮겨왔다. '예술가는 자연에 내재한 질서나 규칙과는 다른 질서와 규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근대적 예술가의 이념은 인공적인 낙원으로서의 도시 거주자의 특성을 설명하는 문화적인 구성물이었다. 지금껏 서양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작업을 해온 양태모 작가는 무위자연이라는 '동양적' 관념에 천착하면서 자신만의 방향을 설정해왔다. 그는 쪼개고 분석한 뒤 종합하는 서구적 사유와 달리 직관과 통찰에 익숙한 '동양적인' 사유를 반영한, 가령 전통산수화의 이념을 자기화하고 있다. 그의 서구적 매체와 방법은 그의 동양적 관념과 맞물리면서 혹은 어긋나면서 조금씩 변형되어 왔다. 그는 텅 '빈' 캔버스에 형상을 채우고 그 형상으로 작가 개인의 개성이나 독창성을 증명하는 '작가'의 태도를 지우고 있다. 그는 캔버스 대신에 직접 자신이 짠 나무판을 사용하고, 붓질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평면과 평면을 채우는 오브제라는 회화의 형식은 견지한다. ■ 양효실
Vol.20111117a | 양태모展 / YANGTAEMO / 梁泰模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