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109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석문_김선두_백진숙_이구용 이길우_이동환_임만혁_장현주_하용주
주최 / 공아트스페이스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5.9938 www.gongartspace.com
겹의 미학, 틈의 사유 ● 당대의 문맥에서 전통을 시대의 의미 체계로 성취하고자 하는 과제는 한국화의 담론과 실천 모두에서 주요한 쟁점 사안으로 다루어져 왔다. 특히 이 문제는 일제 강점기 외래 미술의 침투와 이식 속에서 단절과 왜곡을 경험한 전통이 급작스레 상속해야 할 유산의 형태로 주어진 해방 직후 긴박한 시대의 과제로 상정되었다.『만들어진 전통』에서 에릭 홉스봄이 지적한 것처럼 날조될 수도 창조될 수도 있는 전통은 굴절의 역사를 경유해 우리에게 계승과 청산의 화두로 재인식되었다. ● 시대의 과제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대안적 해법들이 제안되었고, 여기에 일본 그림과 중국그림과는 다른 우리 고유의 정체성의 문제가 비중 있게 결부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화의 현재는 늘 그 자체로 온전히 평가되기 보다는 과거와 미래와의 관계 속에 '다시' 점검되고, '새롭게' 진단하여, '향후' 방향까지 제시해야 하는 복합 시제를 취할 것을 요청받아왔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는 때로는 숙명으로, 때로는 사명으로, 때로는 강박으로, 때로는 당위로 한국화 담론 언저리에 머물러 왔고, 수묵운동, 채색 작업, 실경산수, 추상 작업 등과 같은 예술적 실천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정신의 근저를 살펴 이것을 현재의 지형에서 의미 있게 펼치도록 견인해 온 쟁점은 반세기라는 시간의 소요 속에서 긴장감을 상실한 채 관심의 영역 밖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누구나 흥얼거리지만 제대로 된 무대에 올려 집중적으로 조명할 수고로움을 좀처럼 내 몫으로 생각하지 않는 흘러간 유행가처럼 한국화의 방향과 지향의 문제는 부재하는 듯 존재하고 있다. 바로 지금의 시점에서 이것을 본격적인 의제로 다루고자 하는『겹의 미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겹의 미학』은 한국화 담론에서 중요한 논쟁의 한 축을 형성해 온 전통과 정체성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대의 언어로 제기된 문제에 답을 구하고자 한국화는 표현 매체에 주목해 왔다. 전통 재료와 기법의 소환이 주장되기도 했고, 새로운 형식으로 확장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시도와 모색은 '안이함과 진부함'고 '지나침과 공허함'을 질타 받으며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 이 시대의 몫으로 여전히 성찰되고 있다.
재료의 선택과 이것을 이용한 기법은 단순히 수단과 기교가 아닌 개별 예술 정신의 의지를 밝히는 풍부한 배후이자, 주목해야 할 태도이다. 그럼에도 기존에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시도되었던 대안적 해법들은 한국화가 궁극적으로 취해야 할 것으로 지나치게 확신된 정신성과 유기적, 종합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표현 기법으로 간과되어 이해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양자의 관계를 이원화해 위계적으로 파악할 경우 재료의 특성과 기법이 예술 정신의 발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결과를 형성해가는 한국화에 대한 이해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정한 사회적 행위들에서 특정한 세계관이 비롯되고, 그 세계관이 특정한 사고 과정을 유발하며, 역으로 그 과정을 통해 특정한 사회적 행위와 세계관이 다시 강화시킨다. ●『생각의 지도』에서 리처드 니스벳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하는 사유의 본질적 차이의 항상성 이해를 위한 전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유가 구성되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행위와 세계관 그리고 사고 과정이 상호교차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듯이, 재료와 기법은 특정 예술을 작동시키고, 재배치하는 사유의 근간, 정신의 맥락에 접근하기 위한 유효한 단초를 제공한다.
『겹의 미학』에서 독자적 예술로 개별적인 성과를 인정받아 온 강석문, 김선두, 백진숙, 이구용, 이길우, 이동환, 임만혁, 장현주, 하용주를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장지(壯紙)'와 이것을 이용한 기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국화를 관통해 온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집중하게 된 재료와 기법은 단순한 바탕과 기교를 넘어선다. 이것은 이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의식의 세계 이해를 위한 단서이자 입구로 기능한다. ● 두껍고, 질긴 우리 종이의 한 가지인 장지는 축적과 보존 그리고 지속의 재료이다. 이런 속성으로 말미암아 굵기와 속도가 다른 선과 선, 형태와 크기가 동일하지 않는 면과 면, 채도와 명도가 상이한 색과 색의 공존과 공생이 가능하다. 수많은 사건들이 누락 없이 기록되고, 숱한 이름들이 골고루 호명되고, 사소한 흔적들은 빠짐없이 서사의 일부가 된다. 시간의 층위를 발색의 깊이로 품어 내는 장지라는 관용의 우주 안에서 상이한 행위와 이질적인 시간은 논리가 아닌 논리로 연결되어 의미의 망을 형성한다.
조율과 삭제 그리고 통합의 수순을 대신 차이의 인정을 통해 『겹의 미학』에서 허용되는 것은 모순의 중첩이다. 김선두의「가까운 원경」에서 근거리의 현상은 원거리의 본질이며, 백진숙의「공원(空園)」에서 물리적 존재는 인식적 부재이며, 이구용의「산중」에서 특정한 형상과 보편적 개념이다. 이길우의「맨해튼과 인왕산」은 두 개의 구체적 장소이면서 하나의 추상적 공간이며, 하용주의「모순의 질서」는 비논리로 논리를 짓는다. 한편 강석문의「탑」과 장현주「어중간」은 자아 정체성과 내면 상태를 타자 혹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의 맥락없이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임만혁의「꿈」은 현실을 투영한 환상을 통해 다시 관심을 현실로 되돌리고, 이동환은「불길한 예감」은 가변적 상태를 확정짓고자 함으로써 유동적 상황의 이면에 골몰하게 한다. ● 현상과 본질, 부재와 존재, 특수와 보편, 장소와 공간, 자아와 타자, 내면과 외계, 현실과 환상, 표면과 배면. 이들이 선택한 재료와 쓰임은 양립 불가능한 인식들을 역동적으로 연결시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동시에 이를 통해 가시화되는 이들 작업에 내재한 종합적이고, 은유적이며, 경험적이고, 순환적인 시점은 궁극적으로 우주를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하나로 인식해 온 우리 고유의 정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유추하게 한다. ● 1920년 변영로 "타임스피릿(시대정신)은 모든 예술의 혈(血)이며, 육(肉)이며, 시대정신의 발로가 없는 예술은 허위의 예술"이라 했고, 1940년 고유섭은 전통을 '항구불변적이고 보편무변성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존재론적인 것이며, 전통은 지금에서 늘 새롭게 파악된 것이라야 한다."라 했고, 1984년 이경성은 한국화의 방법과 개념을 설명하며 "동양화로 통칭되던 우리 그림을 우선 한국화라 부르고 그 뜻과 개념을 차차 정리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표현 기법이 아닌 하나의 태도이자 질문의 형식이기도 한 『겹의 미학』이 오늘에 갖는 의의는 앞선 시대가 이미 주목한 시대정신과 전통 그리고 차츰 정리해 가자고 한 한국화의 뜻과 개념의 문제 그 행간에 존재한다. ■ 공주형
Vol.20111109j | 겹의 미학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