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le Different Animals

2011_1108 ▶ 2011_1124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108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안세은_이주은_주영신_Asayo Yamamoto_Marie Lelouche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화~금_10:30am~06:30pm / 토_12:00am~06:00pm / 일요일, 월요일 휴관

갤러리 차 GALLERY CHA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97번지 Tel. +82.2.730.1700 www.gallerycha.com

중립(中立) 혹은 중용(中庸)이라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균형 잡힌 상태이지만 달리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지만 실재 인생 대부분의 상황들은 명백하지 않고 늘 어중간하다. 이상과 현실,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안과 밖, 낙관과 비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흔들린다. 본인이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오브제인 일회용 종이 장식, 그럴듯하게 빛나는 금색의 십 원짜리 동전, 하루가 지나면 쓸모 없이 버려지는 일간신문, 싸구려 스티커 등은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일상의 사물들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깝고, 가치를 두기에는 흔하고 사소하다. 어찌 물건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고, 또 내 자신이 그러하다. 오늘도 나는 수많은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 안세은

안세은_Floating Between 사이에서 헤매다_gold leaf & acrylic on canvas_50×50cm_2011
안세은_Floating Between 사이에서 헤매다_gold leaf & acrylic on canvas_50×50cm_2011

땅 아래 바닥을 바라보고 이러한 소소한 주변이 소인이 되어 바라보니 거대한 풍경이 되어 나타난다. 늘 옆에 있던 흠집 많은 컵 하나가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푸른 산 위에 바위가 되고 또는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동굴이 되며. 무심코 편안하게 앉아만 있던 아주 오래된 나무 의자 속에서 커다란 힘으로 짓누르는 기념비적인 기둥을 찾아내기도 한다. 매일매일 사용하던 수건 안에서 넓고 넓은 하얗게 쌓인 눈을 찾아낼 수도 있다. 주름 잡힌 천이 둘러져있는 테이블에 넓은 지평선이 있다. 지평선 위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다. ■ 이주은

이주은_onstage_캔버스에 프린트, 합성수지, 나무_각 80×118cm_2011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항상 헤매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지형도를 만든다. 이미 내게는 출구 따위를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세계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나의 이미지와 결합할 수 있다. 그래서 캔바스 속 이미지는 끝도 시작도 중심도 없이 언제나 무엇과도 접속 가능한 상태로 떠돌아다닌다. 내가 만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접속하며 그 무엇인 채로 또는 그 무엇도 아닌 채로 부유한다. 내부의 것이 외부로 표출되기도 하고 새로운 형식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단순한 생물학적 의미 이상을 가진 나의 이미지들은 서로 결합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어지러운 외부 환경과 내부자아의 균형잡기를 시도하는 노력이며 일상의 기록이다. 이것이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읽는 나의 방식이다. ■ 주영신

주영신_Transplantat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0cm_2011
주영신_Transplantate_캔버스, 유리에 아크릴채색, 실크스크린_35×35cm_2011

나는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의 임시 거주자이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체계가 있다. 이 체계로부터 분리되거나 고립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곳에서 행해 질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찾고 있으며 내가 그곳의 일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살아있는 것이든 생명력이 없는 물건이든 모든 것들 사이에는 관계와 연관성이 있다. 나는 이러한 관계를 끝없이 반복되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패턴으로 보고 있다. 내 작업에서 이러한 패턴을 시각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매우 단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단단하고 부드러운 재료를 서로 교차시키는 것이다. 산의 모양으로 천천히 변하는 기류가 있는 자연처럼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관계는 어디에서나 발견될 수 있다. 현존하는 풍경에 나의 작업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나는 우리의 일상 속의 가장 흔한 곳(안이든 바깥이든)에서 새로운 연관성을 찾는다. ■ Asayo Yamamoto

Asayo Yamamoto_orange and white string_컬러 인화_30×51cm_2011
Asayo Yamamoto_white string_컬러 인화_30×51cm_2011
Asayo Yamamoto_three color string_컬러 인화_30×51cm_2011

나는 타성(他姓)에 관심이 있다. 타성이란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서 만나는 타자를 말한다. 나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우리가 우리의 문화적인 면들을 어떻게 보존하는지에 주의를 집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사회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좋은 실험대가 된다.

Marie Lelouche_variation in building4(Deajon)_종이에 드로잉_69×54cm_2011
Marie Lelouche_variation in building4(Heongde)_종이에 드로잉_54×69cm_2011
Marie Lelouche_variation in building4(Namdemun)_종이에 드로잉_54×69cm_2011

실제로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나에게 낯선 상황, 즉 내가 뭔가 다르다거나 불쾌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 속에 위치시킨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적절하게 접근해서 작업할 수 있게 된다. ■ Marie Lelouche

Vol.20111108k | Whole Different Animals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