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그 후

송창展 / SONGCHANG / 宋昌 / painting   2011_1109 ▶ 2011_1115

송창_솔바람_캔버스에 유채_162×777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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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실존'의 풍경으로 되살리다-송창 개인전에 부쳐 ● 1. 시작 송창에게 '분단'은 하나의 시작이었다. 1982년 '임술년' 이래 꿈틀거리기 시작한 그림의 언어였고,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망원경이었으며 역사를 울려내는 항아리이자 거대한 질문이었다. 땅이 두 갈래로 나뉘고 찢기는 물리적 고통만이 아니라, 믿음이 깨지고 마음과 생각이 갈라지는 우리들 삶과 세상의 상처를 헤집고 속으로 들어가 온 몸으로 아픔을 겪어내는 '육체적' 인식의 숨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내면에 잠재의식처럼 자리잡고 있는 획일적 집단주의와 폭력적 이분법적 사고, 치유되기 힘들 정도의 극단적 이념 대립과 갈등이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분단이란 우리들 일상에 파편처럼 흩어져있는 상처이자 상처의 근원이었음을 감지하면서 착지된 것이었다. ● 분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목숨처럼, 죽음처럼, 상처를 모태로 하여 태어난 태생의 원리를 안고 그려졌다. 하지만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 살이 돋아나 아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처로 전이되고 키워져 덧나고 자라났다. 그런 상처의 돌연변이적 성장은, 오직 분단을 몸으로 마음으로 정신으로 증상(症狀)적으로 '바라보는 자'에 의해서만 보이는 것 같다. 분단 트라우마와 같은 사회 병리적 현상은 여전히 발생하고, 우리에게 분단은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되고 확인되는 가운데, 자꾸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중이다. 분단의 상흔은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자니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질문과 방황을 예감하는 사고 구조로서, 고통을 감지하는 신경계로서의 분단의 의미가 아직도 명백한 것이다. ● 그래서 송창은 임술년을 지나 30년이 다가오는 이 시점까지 분단을 그린다. 물론 분단을 주제로 일종의 '사회적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1986년 전후이니, 세월의 셈법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먼저 그린 난지도 매립지 풍경조차도 도시 빈민의 유랑과 울분을 담아냄에 있어 분단의 구조를 비켜갈 수는 없지 않을까. 단지 분단을 지시하는 여러 기표들, 즉 철조망과 사격장, 무기, 전쟁 기념물, 보초서는 군인 등의 형상이 민통선과 임진강, 문산 등의 자연 풍경 안에 배치되어 불길하고도 참담함의 정서로 강렬하고도 충격적으로, 그리고 시적으로 그려진 것에서 차이를 드러낼 뿐이지만, 근저에 흐르는 소외와 박탈의 행위가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창에게 임술년은 울음이고 확성기이고 발성법이고 복화술을 품어 낸 자궁과도 같은 시공간인 셈이다. ● 사회적 풍경이라는 의미로 진행된 송창의 분단은 1990년대 들어 서서히 다른 모습을 만들어갔다. 여기서 사회적 풍경이라는 말은 풍경을 사회적 의식으로, 정치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풍경이란 원래 누군가의 시선이 있어 탄생하는 것이다. 어떠한 풍경도 무중력의 상태는 없으며, 오히려 개인적 경험이 역사화되는 시선을 통해 풍경이 더욱 더 명료해지는 법이다. 이전의 풍경에는 일정하게 분단을 지시하는 표지들이 있어 명료함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게다가 그 지각의 속도가 빠르고 강렬하며 집중적이었지만, 점차로 가시적 지표들이 풍경으로 녹아드는 상태로 변화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합쳐지는 풍경은 송창의 또 다른 시선을 받으며, 그 의미를 넓혀갔다. ● 분단의 풍경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함평, 황토현, 남한강 유역의 여러 지역으로 번져갔다. 풍경으로 옮아가 분단은 은유가 되고, 나무가 되며, 강이 되고, 바람이 된다. 그림 그리는 행위 혹은 회화적인 언어가 열릴 때는 주어진 겉모습의 이면에서부터 방출된 직관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반응하는 것이다. 송창의 그림은 그림 자체의 표면이 아니라, 속과 깊이, 두께와 너비를 가로지르는 화법의 결과다. 표현주의적 색채가 강한 그의 그림에서는 햇살조차 불안하고 들녘의 흔들리는 들꽃조차도 섬뜩하다. 모든 풍경은 멈춰있지 않고 두터운 육질의 손길이 닿은 듯 거칠고 격정적이며, 그리고 안으로는 스산하며 음울하다. 뚜렷한 표지나 형상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풍경 속에서 분단의 은유를 직감으로, 냄새로 읽어낸 바 있다.

송창_가을_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_194×259cm_2011
송창_dmz 봄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0
송창_dmz 여름_캔버스에 유채_181×259cm_2010

2. 이번 전시 ● 크게 보면 이번 전시도 여전히 풍경이다. 하지만 풍경이 세월 속에서 자라고 분단의 의미가 풍경 속에서 감응을 일으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 풍경은 정치적 풍경으로, 혹은 실존적 풍경으로 넘나들면서 서로의 부재(不在)를 노래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실체가 된다. 역사로부터, 정치로부터, 개인의 삶으로부터, 축적된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격리될 수 없는 송창의 풍경이 자연의 존재를 다르게 규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분단은 자연 그 자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송창이 분단이 되고, 풍경이 되고, 풍경이 송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송창의 세월이 분단을 자연으로 투사하고, 자연을 분단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육감, 영혼에 대한 응답, 격렬하고 명료하지만 동시에 모호하고 불확실한 대화, 혹은 질문과 대답의 형태일 필요가 없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 임진강과 DMZ 등의 분단을 지시하는 지리적 지표가 이번에도 지속되고 있지만, 풍경은 오히려 명백한 의미나 판단을 의도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그 모호함을 말한다. 「DMZ의 사계」와 「침묵의 강」, 「검은 울음」, 「침묵의 강」, 「골짜기에서」, 「산자락」, 「길섶」 등은 오히려 형상을 지워가는 듯한 풍경이며, 그 곳에서 무정형성은 의미를 담아낼 어떠한 수용시설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기처럼 방 안을 채울 뿐이다. 마치 분단이라는 멈춰진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진공과도 같은 「고요」 그 자체처럼,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 사실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어떤 초월의 순간, 모든 것이 직관과 순수감각으로 간파되는 순식간의 일체감을 위해 열어놓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현실이지만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잠겨있는 현실을 말한다는 것이다. ● 물론 「DMZ의 봄」을 말하는 방식은 옛 노동당사 건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내부에서 바라보는 앵글로 그려진 이 풍경에서, 그럼에도 눈에 띄는 것은 무너진 건물 사이로 채워진 햇살의 모호함이다. 봄날 햇살이란 사실 풍경의 기쁨이자 희망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햇살은 그러한 기대 이상의 느낌을 빚어낸다. 오히려 햇살은 건물의 윤곽을, 잔해를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대비로 인해 빛과 어둠의 대결을, 그 칼날을 세우는 듯하다. 노동당사는 마치 죽음의 집, 혹은 기억을 회복하지 못할 것 같은 망각의 그릇처럼 와 닿고, 바깥 공간의 너무도 밝고 맑아 백지처럼 평면화된 햇살은 완벽한 부재, 혹은 시간의 종말, 기억의 죽음 같은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한번에 '턱'하고 다가오는 건물의 뼈대가 햇살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의 언어가 너무 많은 요구를 할 경우, 사실적 언어를 버리게 되고 이내 겹겹의 웅변으로 언어를 구출해 낸다. ● 다른 한편 그의 불확실성은 공간 질서의 교란을 통해 혹은 비현실적 공간 점유방식으로 드러난다. 「아픔」이나 「기원」, 「작은 검버섯」, 「갈증」에서 모든 오브제와 대상들은 자기 나름의 고유한 공간을 점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갖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작은 물건 하나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보다 더 많은 공간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 순간 공간의 질서가 무너지고 공간의 관계가 무수하게 설정된다. 모든 것은 특별한 경험에 달려있다. 그러나 생생하게 경험된 사건은 모호하다. 모호함은 곧 수없는 기억과 시간의 중첩된 차원을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해 공간적 조건을 거슬러 가로질러 간다. 혀처럼 선홍빛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두 가죽(아픔)은, 그 색깔이 명료한 것과 달리 설명되지 않은 다른 사건들을 수반하고 있다. 연천의 느티나무(기원)가 마치 온 몸으로 당굿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역사적 시간의 층위들을 혼돈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는 몸이 있다. 그의 풍경에는 몸 안에 자연을, 분단을 잉태하게 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또 다른 유형이 있다. 때로는 분리된 두개의 몸이고, 때로는 봉합된 몸이고, 때로는 하나로 된 두개의 몸처럼 그려진다. 「기다림」의 노인 형상이나, 「태몽」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신체와 임산부의 형상, 혹은 태아를 낳는 형상 등이 그것이다. 「증언」 연작에서는 유골발굴단에 의해 수거된 유골의 이미지에 보행인 형상을 배치함으로써 몸의 이별과 만남, 괴리와 간극을 말한다. 바위처럼, 울음바다처럼 그려진 「새터민」의 존재, 임진강에서 목욕하는 군인을 그린 「강가에서」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그런 경지와 그런 세계, 그런 실루엣 속에서 풍경은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눕고, 서고, 울고, 그 곳에 있다. 어쩌면 송창은 상처를 드러내면서 치유를 이루어낸다는 역설의 원리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가 분단을 극복하는 법, 혹은 능동적으로 치유하는 법이란 스스로 분단이 되는 것이다. 그 조차 분단을 바라보고 분노하는 객관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위치를 서로 바꿔보고 내가 아닌 무생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풍경을 그리는 자아와 풍경 그 자체의 물성과 서로를 섞기도 하고, 서로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실을 넘어서는 일이 커지게 된다. 표현적 방식이 강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그림에 오래 머물면서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분단의 상처와 만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상처가 비밀이고, 비밀이 영혼인데. 화가 자신이 상처이고 고통이다. 화가가 치유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명료한 답을 보장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송창_동토전체_캔버스에 유채_181×454.6cm_2010
송창_골짜기에서_캔버스에 유채_91×116cm_2011

3. 그리고... ● 그리고 송창은 다시 분단을 만나기 위해, 그 '진원지'를 찾아 뒤로 걸어간다. 2009년 어떤 계기로 연해주를 여행하면서 다시 길을 되밟은 것이다. 분단이 일제 강점기의 연해주로, 발해의 자취로 시간을 거꾸로 연결해 주었다. 그 가운데 우스리스크는 이러한 발자취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지역이다. 발해 내성과 외성, 그 곳에서 바라본 솔립강과 드넓은 초원, 작은 관목과 초목이 어우러진 숲, 넓은 평원 등, 그 곳은 이웃 하얼빈의 만주벌판과 유사한 풍경이다. 구한말 함경도에 대기근이 들자 한인의 연해주 이주와 개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 망국의 한을 품고 나라를 구하고자 민족의 역량을 결집한 곳,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멀고먼 중앙아시아로 쫓겨 간 대 이주의 아픈 역사가 숨쉬는 곳이다. ● 「동토」, 「지평선」, 「찬바람」, 「땅거미」, 「역사를 밟다」 등은 그 광활한 평원을 그린 것이다. 넓은 평원과 작은 하천 및 늪지대, 호수가 많아 땅이 기름지고 돌이 없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기회의 땅이었던 이곳으로, 다시 고려인이 재이주하면서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다. 그러나 송창의 북간도는 망자와의 대면을 그린다. 어쩌면 강제 이주 시 사망한 40여만명의 영혼들이지도 모른다. 그 슬픔으로 벌판은 영혼이 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저 멀리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루엣이 차가워지니까요"(존 버거가 쓴 희곡에서 인용한 문구로서, 스페인 화가 고야(Goya)가 고백처럼 쏟아낸 대사로 되어 있다. 존 버거, 『랑데부-이미지와의 만남』, 이은경, 임옥희 옮김, 동문선, 2002, p.141)

송창_검은 눈물_캔버스에 유채_194×112cm_2009

그래서 10월 우스리스크 벌판에 갑작스레 하얀 눈이 내린 것일까. 10월에 내린 눈은 풍경을 실존적 모습으로 바꾸어놓는다. 마음 속에 각인된 '풍경'으로부터 역사의 냄새와 체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행을 통해 본 '풍경' 속에서 송창은 인간에 대한 성찰과 그 실존의 비극적 의미, 애수를 여느 때보다 더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풍경이 정치적 시각을 투사할 때 역사성이 명료해지는 것처럼, 상실과 결핍을 통해 그 풍경은 자신의 존재를 되찾아가는 것이다. ● 송창은 우스리스크에 머물며 작업할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좌절되었지만, 늦지 않은 시일 내에 그는 그 곳에 갈 것이다. 분단의 스산한 자취를 예비한 그 곳에 갈 것이다. 송창이 '늦길'을 간다. 그런데 늦게 간 그 길이 벌써 앞에 와 있다. 북간도에는 아직도 분단이 크지도 못하고 그저 웅크린 채 몸을 지탱하고 있다. 산산조각으로 머물러 있다. 분단은 여러 곳에서 살았고, 모든 곳에서 죽었다. 아직도 죽고 있다. 분단은 회화가 되고 있다. 이미 회화는 치유가 아니라 상처 그 자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치유를 말하기 위해서라도 그 본분을 다해야 해서, 여전히 송창은 분단이 되고 있다. ■ 박신의

Vol.20111106k | 송창展 / SONGCHANG / 宋昌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