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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4_금요일_07:30pm
기획 / 린다갤러리 기획 (Linda Gallery Singapore)
관람시간 / 11:00am~07:00pm
린다갤러리 Linda Gallery Singapore Blk 15 Dempsey Road #01-08,Singapore 249675 Tel + 65-64767000 www.lindagallery.com
대부분의 아름다운 것들 ● 카프카의 소설 "변신 (the Metamorphosis)"의 주인공인 그레고리는 종내 자신의 변신을 인정하면서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소외되며 죽어간다. 그의 죽음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편안하고 행복하다. 캘리포니아의 나른한 햇볕이 반사되는 수영장 데크 위에 말라 비틀어져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벌레를 바라보았을 때와 그 느낌이 자꾸 부딪힌다. 변신을 통해 극단적인 소외를 불러 일으켜 자신의 심적 자유와 이탈을 꾀하고자 한 그레고리와 그가 남겨놓았을 법한 흔적들의 묘한 겹침이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베어 나오지 않을듯한 건조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란 실로 그 치명적인 매력이 지극하다. 윤종석의 작품이 그렇듯이.
변형된실존을찍는다. ● 윤종석은 대상을 그리기 보다는 찍는다. 말하자면 선이나 면을 그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형의 가장 기초단위인 "점"을 찍어 대상을 표현한다. 대상이라기 보다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변형을 표현한다. 변형이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그 모양이나 상태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그의 변형력의 중심은 옷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작가의 생각에 의해 다양한 이미지들로 변형된 윤종석의 옷이다. 이 옷들의 변형은 곧 우리의 삶과 욕망을 대신하는 아바타의 변형인 셈이다. 옷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거나 감추거나 드러내거나 하는 역할을 하며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음식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과 함께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옷이 어쩌면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단적으로 추위와 더위가 극심한 극지방과 열대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기후 조건에서의 옷은 추위를 이겨내는 기능성과 더위와 환경에 따른 불필요함을 넘어 그 옷을 착용하는 사람의 기호와 사회적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쫓는 단서로서 옷에 집중하였고, 거기에 새로운 이미지들을 부여하고자 노력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옷의 실제적인 기능과 역할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가의 단서만큼이나 단순하지는 않은 듯 하다. 입는 사람의 기호와 함께 사회적인 관계설정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옷, 이른바 패션은 인간들의 또 다른 허물이며 가장 첨예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말초들이다. 거기엔 권력의 상징과 사회적 지위까지도 포함된다. 옷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래서 너무나도 사소하게 그래서 너무나도 중요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작가는 옷이 우리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급히 그 형태와 기능을 잊어버리고 대충 널브러져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에게 잃어버린 생명력에 대한 그리움과 그 생명력의 복원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생성되는 지점이다. 그리하여 옷은 윤종석의 화면 위에 점으로 환원되며 자신만의 실존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변형을 통한 실존적 가치의 회복. 그레고리들의 진정한 승리다.
변태, 변이 그리고 환원 ● 일반적으로 지구상에 진화의 단계를 거쳐 종을 이루고 있는 생물들은 그 자체 번식이나 자가치유와 같은 환경 적응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적응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어떤 생물들은 자신의 몸을 변태시킨다. 이는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생물들에서는 흔히 있는 현상이다. 생태계 내에서의 먹이 확보와 다양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자 꼭 필요한 현상으로 이해는 되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유충과 성충의 터무니 없이 차이가 나는 생존기간이나 성충이 된 후 천적들의 공격을 더 받게 되는 경우는 여전히 이해의 폭이 좁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변태는 다양한 생물들의 생존방식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윤종석의 작품에는 이러한 생물의 변태와 같은 기능들이 작동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미술 생태계에서 적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생존의 기능이다. 두 번의 변태와 최종적 환원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은 보통과 그 보통을 이루고 있는 존재들을 그려내고 있다. 점에서 사물, 사물에서 옷. 이렇게 두 번의 드라마틱한 변태의 과정을 거치는 윤종석의 작품들은 그 단정함과 치밀함에 숨이 막힐 정도다. 자기 자신의 치료행위이자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자 주사기로 점을 찍는다는 작가는 일차적으로 점 그 자체에 매료된다. 작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이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지니며 또한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 내고 있음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각각 고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점들은 작가의 주도하에 커다란 질서를 만들게 되고 그 질서가 확립되는 순간 그 셀 수 없었던 점들은 어떠한 이미지로 변태한다. 작가의 기억과 감성과 상상을 통해 재 구성된 이미지들로 변태한다. 가히 애벌레의 비상과 견줄만한 점들의 들끓는 함성이다. 또한, 그 순간 이미지는 바로 죽은 그레고리의 허물이자 변형된 인간 실존의 지표였던 옷으로 탈을 바꾼다. 위에서 두 번의 변태를 언급했지만, 정확히 말해 이는 한번의 변태와 한번의 변이가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이는 분 냄새를 풍겨 사랑과 이익을 얻으려는 매춘부의 그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임신과 같은 사랑처럼 풍부한 감정이 축적된 참다운 예술을 얻고자 하는 작가의 노동의 결실이다. 결국 변태와 변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발견과 실존의 경험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발견에서부터 인류 정신사의 가장 원류적이고 핵심적인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노동의 강도와 쉼 없음이 어떠한 경지에 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포인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맥락은 그 모든 결정의 순간 작가는 다시 전체에서 부분으로 집중하는 환원의 기능을 발동한다는 것이다. 답을 결정지을 수 없는 수 만가지 삶의 이유들을,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그 이미지들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음으로써 시작의 순간이나 결정의 순간이 한 지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환원의 기능을 통해 우리는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은 대부분의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생의 경험에서 비롯한 기억 가능한 기억들과 또한, 진화된 인류로서 유전적으로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기억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미지들이 저 아득한 과거로부터 저 멀리 우리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류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때로는 윤종석, 그의 작품이 지닌 순환적 시스템에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생각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 임대식
Vol.20111104c | 윤종석展 / YOONJONGSEOK / 尹鍾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