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a gift 삶은 선물이다.

윤은숙展 / YOONEUNSOOK / 尹銀淑 / painting   2011_1101 ▶ 2011_1112

윤은숙_나무빛과 소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6cm_2011

초대일시 / 2011_1101_화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보우 Gallery Bow 울산시 남구 신정2동 679-3번지 3층 Tel. +82.052-266-6226

삶은 선물이다. ● 문득 신이 "너희들에게 자유의지와 생활이라는 선물을 주겠노라"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머리를 감다가... 우리에게 많은 것이 생활 속에서 주어진다. 넘침과 모자람, 고통과 기쁨, 좌절과 희망. 순간 순간 주어지는 것들이 고통이기도 하고 즐거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수 많은 사건들.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이러한 사건들이 재해석 되고 충분이 검증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 여기서 사건은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란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윤은숙_사유하는 나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cm_2011
윤은숙_동백꽃 피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0cm_2011

왜"라는 말에 나의 대답은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그리고 좀 더 충분히 즐겨라"라고 말하고 싶다. 성인들은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다시 우리에게 즐길 기회를 주는 것이고 모자람이 있으면 좀 더 즐겨라는 의미에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성인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저축해 두었다가 다시 찾아 쓰고 하는 것은 아닐까. 기쁨, 슬픔, 좌절, 고통... 모든 것에 해당되는 기회들 반복되는 삶의 형태 속에서 오는 기회라는 선물 현재 나의 자리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이 선물을 즐거이 즐기고 있는지... ■ 윤은숙

윤은숙_붉은 잎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19cm_2011
윤은숙_푸른 열매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16cm_2011

그림과 대화를 나누다 ● 텅 빈 푸른빛의 캔버스. 그 화면 속에서 한바탕의 춤이 시작된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Bitches Brew는 락(rock)과 재즈(jazz)의 융합을 시도한 음악이다. 작가에게 융합(融合)이란 단순히 몇 개를 합치는데(fusion) 있지 않다. 세상과 작가, 그리고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 서로 소통하는 상호간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융합(convergence)이다.)의 음악에 파묻혀 한 뭉치의 나뭇잎에 물감을 묻혀 마냥 뿌려나간다. 물감을 뿌려 나가는 단계는 작가가 자신을 버려나가는 과정이다. '뿌리기'란 버리기이다. 일상에서 생각을 가로 막았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몸부림이다. 뿌려나가는 몸짓 속에서 색(色)은 공(空)으로 바뀐다. 그리고는 다시 음악에, 그리고 그 흥에 의식들을 내맡기면서 한겹 한겹 더해서 칠해나간다. 원래 공(空)이란 것은 다시 색(色)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 도는 것이 동양적 윤회(輪廻)의 본질이 아닌가. 작가가 세상에 희망을 품고 있는 한은, 마냥 버리기만 할 일은 아니다. 작가가 할 일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헤매는 일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고원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은숙_풍경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19cm_2011
윤은숙_푸른열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3cm_2011

사물과 상징이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을 거쳐, 물감은 손과 얼굴, 몸에 흔적을 남기면서 그림과 작가는 하나가 되어간다. 미리 계획된 구상 없이 오직 그림과 하나가 되려고 애쓴다. 수십 번의 되풀이 되는 몸부림 끝에 수많은 색들은 작가가 예상하지 않은 공간들 속에서 독자적인 존재로 어울려 숨을 쉬고 있다. 이게 물상일여(物像一如) 아닌가. 이런 과정은 작가의 에너지 분출이자 작가의 몸이 그리고 영혼이 이미 과거부터 있던 것, 현재에 있는 것, 그리고 미래에 있을 것까지 담아내고자하는 몸짓이다. 행위 뒤에 오는 또 하나의 과정 속에 그림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작가가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경외감을 느끼는 자연의 형체들이 하나 둘씩 그 위에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작가만의 일방통행은 성립되지 않는다. 화면의 몸짓과 어우러지고 그 몸짓을 담아 낼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의 의식으로 억지로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이고, 작가는 이런 화면과의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색(色)이 공(空)이 되고 공(空)이 다시 색(色)이 되는 과정은 작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이고, 화면과의 조율은 작가가 세상과 통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사물과 상징이 하나가 되고, 사물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꿈꾼다.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세계이다. 작가는 자신과 조율된 그 화면을 통해 세상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비록 나무 한 그루, 바람 한 줄기 또는 세월에 져서 떨어진 잎사귀 하나일지라도. ■ 안국진

Vol.20111103f | 윤은숙展 / YOONEUNSOOK / 尹銀淑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