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꼴(Shape of Mind)

박점욱展 / PARKJUMOUK / 朴點煜 / painting   2011_1102 ▶ 2011_1108

박점욱_구름이 그리다_45.5×53cm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가이아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관훈동 145번지 2층 Tel. +82.2.733.3373 www.galerie-gaia.net

자연 속에서 본 자연 ● 그림은 외부세계를 재현해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기계적으로만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미술이론이나 미학이 개입되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다. 미술이론이나 미학은 세계와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를 훈련하는, 깨우치는 공부다. 반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미술교육은 그 와는 달리 단조로운 재현적 방법론에 치중되거나 틀 잡힌 몇 개의 그림을 강제해내는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일반인들이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문화센터나 학원을 찾는 경우 한결같이 동일한 그림의 틀을 이식받는 경우를 본다. 그렇게 전범이 된 그림을 놓고 그와 유사한 대상을 거의 동일한 기법으로 그리면서 비교적 익숙하거나 능란해지면 좋은 그림이거나 잘 그린 그림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것은 그림을 그리는 주체의 대상을 보는 안목과 이해, 관점이다. 아니 그보다도 미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자 세계를 재현하는 입장이다. 결국 그것은 세상을 대하는 한 주체의 실종이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독자한 감성과 미적 감각을 지닌 이의 해석이 사라진 그림이란 결국 창백한 박제 같은 그림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은 미술을 전공한 이들 역시 그렇지만 이른바 비전공 작가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따라서 미술을 진정으로 향유하고 좋아하며 그림 그리는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이들이 정작 그림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미술’이 아닌 ‘관습’의 힘에 이끌려 동일한 그림을 대량생산해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 미술교육시스템의 ‘에러’에 의해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동시에 미술향유가 창작중심으로만 편재되고 감상에 대한 이해와 교육은 배제된 상황이 초래한 것이기도 하다.

박점욱_고요_45.5×60.6cm
박점욱_호수에 마음 던지고_41×53cm

박점욱은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림을 배우고 있는 이다. 그 역시 앞서 언급한 우리네 교육시스템에 의해 일정부분 견인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같은 관습의 힘에서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림을 배우기보다는 직접 자연과 부딪쳐 깨닫고자 한다. 좋은 그림이란 기존 그림의 보편적인 어법의 충실한 전수자가 아니라 생경하고 거칠더라도 그만이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의 진솔한 기술, 독백에 가까운 그림이다. 물론 그림은 일정한 테크닉, 재료에 대한 숙련 그리고 그림 그 자체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력이 요구되지만 어느 정도의 재료구사와 형태파악이 가능하다면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만의 눈과 마음으로 대상을 선입견 없이 그려나가는 일이다. 그만의 회화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 언어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이여야 한다. 예를 들어 많은 작가들이 자연풍경을 그리지만 그 대상을 자기 눈과 마음을 열어, 보고 그린다기 보다는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기성 그림의 틀을 앞에 놓인 대상에 투사해 그림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따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틀, 경로를 벗어나는 일이 소중해 보인다.

박점욱_시골서정_41×53cm
박점욱_4월의 향연_33×45.5cm

박점욱은 직장에서 정년퇴임한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그림에의 꿈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사실 앞으로 남은 생은 그림 그리는데 있어 분명 풍요로운 시간일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에는 정년이 없다. 경기도 안성 칠현산 자락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아담한 거주공간을 짓고 그 안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칠현산 칠장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바로 그 절 입구에 이런 작업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이 작업실을 오게 된 것이다. 집주인의 예사롭지 않은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축물과 마당, 정원수와 수석 등을 꼼꼼히 보면서 그가 그린 자연풍경을 만났다. 아마도 인생 후반기의 삶의 모습으로서는 그만한 것이 없을 듯 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 자본주의의 각박한 생의 시스템에서 자본에 저당 잡히지 않고 혼자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다. 그와 함께 세계와 나만의 긴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상정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린다는 사실은 살아있는 주체의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일이자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한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주밀하게 관찰하는 놀라운 공부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의 안목과 감각,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부지런한 노동과 끊임없는 탐구를 지속시키는 매혹적인 일이기도 하다. 새삼 옛 선비들의 공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근사’였음을 기억해본다. 가까운 것을 주의 깊게 파악하고 헤아려 우주자연의 이치를 궁구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그리고 식물과 뭇대상들을 바라보며 이를 그림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근사에 가까운 공부이자 체험일 것이다. 자신의 몸을 놀려 그 대상을 따라가 보고 그것들의 생김새와 색채와 속성을 깨닫는 일이자 이를 주어진 화면에 조형언어로 번안해내면서 새롭게 독해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림 그리는 일이다.

박점욱_흔적_50×65cm
박점욱_명적암 기마봉_38×45.5cm

박점욱의 그림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미 그것은 기성작가의 그림에 근접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조금 불안했다. 나로서는 기성작가의 내음이 가신 몇 점의 풍경이 좋았다. 작가의 그림은 구상화로서 자연풍경의 재현이다. 소박한 자연주의풍이라고 할까. 그러나 사실적인 재현이기보다는 색채와 물감의 질료, 붓질로 번안한 변형된 자연의 모습이다.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살아보니 매일 눈에 들어오는 그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이야말로 작가에게는 더없이 감동적이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는 그런 자연, 생명의 모습을 구상화로 담아내고자 한다. 자신의 작업실 주변이거나 창밖을 통해 만나는 산과 나무, 풀과 작은 생명체를 소박하게 올려놓았다. 가능한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경계 없이 담았다. 그것을 그린 그림 역시도 동일한 방법론보다는 그때그때 소재와 감흥에 맞는 기법을 구사하는 편이다. 거침없는 붓질과 시원스레 풀어놓은 물감과 색채가 어우러져 약동하는 자연의 생명감을 활달하게 재현하는 그림이 좋다.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물감과 붓질의 쫀득한 맛을 살리는 한편 그 안에 감각적인 선을 그어가면서 풀잎과 꽃, 산과 구름, 나무와 바위 등을 그렸는데 그중 몇 개의 그림은 기존의 익숙한 풍경화의 전범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일상에서 늘상 접하는 자연의 한 구석, 비근한 정경을 소박하게 그림으로 호명하는 마음들로 빚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그런 그림이 좋다. 생각해보면 그런 그림들은 결국 욕심 없이 그린 것들이고 무심하게 자연과 대면해서 그려낸 것들일 것이다. 관습의 힘을 밀어내고 진정한 주체가 되어 세계, 자연 앞에 섰을 때 좋은 그림은 가능한 것이다. ■ 박영택

Vol.20111103e | 박점욱展 / PARKJUMOUK / 朴點煜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