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1101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도근_권용택_권성택_문수아_장용수_박일훈_박정신 오은주_윤희경_이오연_이윤기_이윤엽_이주영_이창세 임종길_송주희_도토리교실_손바닥판화_칠보산자유학교_엽판네
주최/주관 / 사단법인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수원시지부 후원 / 수원시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수원시미술전시관 SUWON ART CENTER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정로 19 제2,3전시실 Tel. +82.31.243.3647 www.suwonartcenter.org
공감의 연대를 위한 공동체 예술의 현장 - 수원민미협 '수수미꾸락지'의『동네야 놀자』전 ● 11월 7일, 일주일간의 전시를 끝내고 2011년『동네야 놀자』전이 막을 내린다. 『동네야 놀자』는 수원민미협 '수수미꾸락지'가 연례기획전으로 치루는 전시다. 전시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전시는 작가들의 전시가 아니라 '예술동네'를 꿈꾸는 미술가들이 시민들의 삶터로 들어가 그들과 만났고 놀았고 꿈꿨던 예술을 펼쳐놓는 일종의 '결과전'으로서의 아카이브 전시다. 전시내용만으로 보면 예술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는 계급적 구조를 갖지 않는 듯이 보이고, 성격으로 보면 그래서 예술이란 나누고 쪼개고 흩뿌려서 마치 농부가 품앗이로 농사를 짓듯 모두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두레미술'로 읽힌다. 수 년 동안 수수미꾸락지의 예술가들은 수원의 곳곳에서 원효의 '염정불이․진속일여'(染淨不二:더러운과 깨끗함이 둘이 아니다. 眞俗一如:깨달음과 세속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의 실천으로 살았다.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출간된 뒤 우리사회는 '공감'을 화두에 올렸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경쟁사회에 대한 비판적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고, 폐기하라고까지 주장했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이유다.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은 수수미꾸락지의 두레미학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네야 놀자』전의 출품작들은 여럿이 함께 모였으되 각자의 꼴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그려지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 작가를 중심으로 작은 예술공동체가 형성되고, 그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어른에서 아이까지 참여하는 예술가족이 되자 출품작의 내용이 풍성해졌다. 더 유쾌하고 더 신명이 났다. 신명이 난 공동체의 예술은 그래서 '놀이'와 '짓거리'의 생래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술하기'일 터. 결과로서의 '품 만들기'가 아니라 과정적 행동으로서의 미술하기! 순 우리말로 '짓거리'이고 한자로 '(어떤)행위行爲'이며 포괄적으로 '~하기'일 수 있는 예술.
우리말에 '마당놀이', '광대놀음', '굿판'이 있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을 가리켜 '광대', '무당'이라고 불렀다. 속칭 '~쟁이'라고 놀리거나 '~꾼'이라고도 했다. 계급사회가 철저했던 중세의 잔재라고 보아야겠지만, 나는 그 말에 우리미술이 새롭게 추구하고 바꿔야 할 어떤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 쟁이든 꾼이든 광대나 무당이 된다는 것은 총체적 예술가가 되는 것이고 그 만큼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 '짓거리'를 할 정도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은 '~하기'를 이끌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일 터. 왜 우리 민족은 그것을 '놀이/놀음'이라고 했고 '판'이라고 했을까?
21세기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는 담론에 '커뮤니티아트' 즉, 공동체 예술(나는 이것을 두레미술 혹은 마당미술이라고 부른다)이 있다. 아마도 새로운 세기에는 예술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이미 그 담론의 쟁점은 던져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동네야 놀자』전이 지속되면서 추구해야 할 가치도 그것일 터이다. ■ 김종길
Vol.20111102k | 2011동네야놀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