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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협찬,주최 / 트렁크 갤러리 81 기획 / 최현중 큐레이터
관람시간 / 11:00am~07:00pm
트렁크갤러리 81 TRUNK GALLERY 81 서울 종로구 인사11길 22(구, 견지동 81번지) 1층 Tel. +82.2.737.3781 www.trunkgallery.com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사진가로 살기로 결심했고, 예술가로써 지금 이 시간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야 하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나중에 단 몇 줄로 채보 될 음계와 리듬을 구성해 내기 위해 수 백배의 시간을 고민한 즉흥연주자처럼, 당신이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원하고 원했던 무대에 오르기 위해 매니저도 없고, 악기를 안전하게 이동할 차량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연습할 시간을 빼앗겨 가며 관계자들을 만났겠지요. 내가 이 무대에 서야 할 이유를 보여주고 설득하기 위해 노래방까지 따라가서 악기를 연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시간이 아까워 당장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을 술자리와,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웃거나 울며 지었을 표정도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지친 몸을 뉘인 배게 위에서 떠오르는 자기 의심과 불안. 그러면서도 다시 자기 자신을 다잡으면서 되뇌었을 자신만의 주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 그런 간난신고 끝에 히데카 토노무라는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곳까지 왔습니다. 이 곳에서 사진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불륜 상대와 정사를 벌일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피붙이인 딸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광경은 필름에 자취를 남기고 적절한 방법을 거친 후 인화지에 갇혀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전시될 것입니다. ● 당신은 예술가라 이 장소와 시간, 이 무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다시 한 번 가정해 봅시다. 그렇지만 이 무대의 대도구이자 소도구이며, 주인공이자 관객으로 설정 된 당신의 엄마와 그 애인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엄마의 딸이자 사진가인 한 편, 오늘 이 곳에서 배우/연주가/무대감독이 된 히데카 토노무라는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내 만족스런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이 한편의 소극은 과연 기획자가 의도한 결말로 갈 수 있을까요? ●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은 이 전시를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무수한 사진 이론과 관계 없이 말입니다. 기념사진이니까 서로 친한 포즈를 잡아보라고 주문할 때, 카메라 렌즈 앞에서 자신이 가장 멋지게 나오는 포즈를 궁리할 때, 사진에 찍히기가 징글징글하게 싫을 때, 어떤 사진은 버리고 어떤 사진은 앨범에 간직할 때를, 그리고 당신이 카메라의 액정화면 뒤에서, 그리고 렌즈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기억해 낼 수 있다면, ● 당신은 이 전시를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어떤 결말을 얻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 최현중
이 작가는 여자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실제 가족을 찍었습니다. 가족은 불행합니다. 아버지는 거의 돈을 벌지 않고 직업도 없습니다. 가족을 때립니다. 성애를 하는 여자는 작가의 어머니입니다. 집에서의 어머니와 성애를 하는 어머니는 전혀 다른 여자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어머니의 불륜 장면을 찾아가 어머니를 직접 찍었습니다. 어머니와 얽혀있는 까만 부분 혹은 남자는 어머니의 남자친구입니다. 어머니의 불륜을 찍기는 했지만 남자의 요청인지 남자는 까맣게 칠했습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예술가적 감각이 있었는지 까맣게 칠해진 남자로 인해 훨씬 임팩트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이 아버지에게 보여지는 것이 두려워 전시도 집에서 아주 먼 곳에서 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작가의 아버지는 이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사실입니다. ● 이 작품을 보고 이 사실들을 듣는다면 페미니즘이나,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특히, 라깡의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이용한다면 증폭된 관계의 끈을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시간이 있고, 아직 전시장 안이라면 작품을 한 번 더 보고 아래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은근 바라는 것이 많은 글입니다. 아래 글은 제가 느낀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고 이 작품에 없는 두 가지에 관심이 갔습니다. 하나는 작가의 아버지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읽는 당신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 그리고 이 가족 내에서 -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불행의 씨앗처럼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진에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 작품의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어쩌다 한 번 아버지와 작가가 서로에게 관심 없어하는 시선을 보일 뿐입니다. 아버지는 저 딸년이 또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하나하고 무관심했을 수도 있고, 딸은 아버지가 무서웠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빈 공간은 우리가 채워가면 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 전체에서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아버지에게는 딸의 존재가 하찮겠지만). 이 작품 어느 것 하나도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첫 사진부터 마지막 사진까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부터 허망한 방안 사진까지 아버지를 의식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아이덴티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나오고, '가정의 어머니와 불륜의 어머니'같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머니도 여자구나'하는 어머니의 아이덴티니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작품이(전시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매우 세련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어머니를 통해 – 드러냈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 다음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당신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이 전시를 본 것일까요? 아니면 보여짐 당한 것일까요? 상당히 쓸데 없는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살 돈이 없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도 이 작품을 내 방안에 걸어놓고 싶지도 않습니다.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날 낳아준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성애를 즐기는 장면을 매일 아침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작품 - 의 폭력성 - 을 보면서 지젝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포르노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 영화에서는 배우가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맞추는 것은 금기입니다. 배우가 렌즈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영화가 가상이라는 것이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르노의 여배우는 일반 영화와는 다르게 카메라 렌즈를 바라봅니다. 저는 흥분 속에서 그 시선을 즐겼지만 지젝은 슬로베니아학파(슬로바키아와는 다른 나라입니다)를 만든 대학자답게 포르노도 학구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포르노를 볼 때 야한 것이라는 한가지 목적만 기대합니다. 마치 파블로브의 개 같죠. 이것은 포르노가 우리에게 도착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성적으로 흥분시킵니다. 여기서 지젝은 말합니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포르노 배우가 실제 시선의 주체이고 우리는 그저 마비된 대상이라고. 포르노를 보는 순간 우리는 시선의 타자가 됩니다. 라깡이 말한 '대상을 보고 있는 눈은 나에게 있지만 응시는 대상 쪽에 있다', 바로 그것입니다. ● 작가의 어머니 또한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를 시선의 타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갤러리 또는 사진집은 우리를 무장해제시킵니다. 여기서부터는 예술의 영역이니 야한 생각이나 돈 생각은 버리고 경건하게 작품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애를 즐기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장해제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저 마비된 체 응시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어머니의 시선은 현실과 가상을 가르는 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불편한 것은 그런 어머니의 현실적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사실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라깡은 이런 모습이 진짜 세계라고 말합니다. 그 진짜 세계를 곤혹스러워하는 우리는 지금 모두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작품에는 우리가 채워가야 할 빈 공간이 아주 많습니다. 저도 이 글을 통해 작품의 빈 공간을 조금 더 채워보았습니다. '이 작가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할거야', '어머니의 애인은 어떤 생각으로 촬영을 동의해주었을 거야'같은 스토리부터 데리다니 들뢰즈니 하는 부분까지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빈 공간을 함께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 남상부
Vol.20111031f | 히데카 토노무라展 / Hideka Tonomura / 殿村任香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