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의 색 Colors of Form

2011_1029 ▶ 2011_1127

한경우_Red cabinet_혼합재료, 실시간 비디오 영상_2005

초대일시 / 2011_1029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한경우_이철승_김상균_김무기_양진우

관람시간 / 09:00am~06:00pm

갤러리 보라 GALLERYBORA 서울 은평구 진관동 279-35번지 Tel. +82.2.357.9149 www.gallerybora.com

형식의 색 Color of Form ● 이번 전시회는 다섯 작가가 제시하는 작업의 고유한 형식과 관심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사유가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배태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타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묻기 위해서 몇 가지 규준을 제시해야만 한다. 우선 미술, 정확하게 시각예술에 있어서 형식이란 단순한 겉모양(appearance)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시각예술은 일상 언어와는 종류를 달리하는 시각적 언어의 사유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독특한 사유에서 작가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법의 용례는 무수히 많겠지만 아쉽게도 객관적 기준의 잣대란 있을 수 없다. 예술이 사실(fact)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실됨(truthfulness)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진실됨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 한경우는 영상, 설치, 사진, 조각 등 매체에 관계없이 시각적 마법을 선사한다. 설치미술의 근원은 후기 자본주의의 첨예화되었던 문화 상업주의와 관련이 있다. 한없이 분열적 상황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민화, 우매화의 길을 걷도록 조장한다. 사회 의식, 세계관, 우주론, 낭만적 심성의 가치보다는 엔터테인먼트나 고급상품, 글래머러스한 성적 만족, 스피드 있는 속도감을 우선시한다. 그 결과 볼거리를 중시하는 스펙터클의 문화가 독버섯처럼 창궐했다. 현대미술 역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스펙터클한 '가시성(visibility)'을 예술의 본질보다 우선시했다. 그 결과가 설치미술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한경우의 설치작품 자체의 '가시성'은 탁월하다. 그러나 이 설치의 가시성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설치작품의 국부에 카메라의 렌즈를 비추면서 또 다른 영상적 아름다움을 도출해낸다. 그 영상은 몬드리안의 회화나 TV 방송국 준비화면, 국기처럼 고도로 발달된 하이 모던 시기의 화면을 연상시킨다. 단순한 가시성의 양적 크기에서 정신성이라는 질적 크기까지 도출해내는 것이 이 작가의 "운명을 수정하는 능력"이다.

양진우_Slight Monument Scene2_혼합재료_400×450×300cm_2010

양진우는 이런 면에서 현재를 읽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버려진 사물을 수집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양진우는 한국의 시장, 길거리, 놀이동산, 유흥주점,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 속에서 우리 시대의 집단적 무의식을 현시(顯示)한다. 미국인의 시각에서 '야하고 천박한(tawdry)' 제프 쿤스의 시각적 현시는 미국인의 무의식이듯이 양진우의 야한 범속성 역시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이다. 양진우의 작품은 우리의 현재가 무엇인가, 더욱 궁극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기 때문에 인종, 민족, 성별, 계층, 정치적 성향에 굴하지 않는 소통의 힘을 지닌다.

김무기_Their garden_LCD, 알루미늄 주조_540×500×179cm_2009

김무기는 동양적 조각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작가다. 동양적 전통에서 조형이란 제의나 주술, 기복, 안녕의 기원을 담았다. 조각에 있어서 형식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물질적 특징을 강조하는 서구의 작품과 상궤를 달리한다. 김무기는 감각의 단순한 자극과 반응이라는 미술 세계의 현재적 추세에 저항한다. 오히려 명상으로서의 대상, 주술적 가능성으로서의 대상일 때 조각이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의 2011년 작품 '중얼거리는 나무'는 확성기를 통해 인간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물질로서의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목적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된다.

이철승_남자라면 바이크!_합성수지_100×95×50cm_2009

이철승 조각의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의 주변인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일면 작가의 자화상이며 다른 한편으로 작가와 관계를 현재 지니거나 과거에 지녔던 사람들이다. 그 인물들은 만화를 닮았다. 정확히 한국의 만화를 닮았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현재 일상언어를 닮았다. 삶이 예민하고 건전하되 깊이 있게 배어 나오는 것이 일상언어의 미학이듯이, 이철승의 시각언어 역시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시키는 힘을 지녔다.

김상균_Thanks to you_그라우트에 실크스크린, 브론즈 태그_26.2×40cm×4_2011

김상균은 한국 미술계에서 시멘트 캐스팅, 즉 석회주물로 완성된 환상적인 건축물과 집단적 건물군을 적절히 배치시키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성형한 건축물은 실재와는 엄밀히 다르며 현실에서 존재 불가능한 구조로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 있을법한 구성이기도 하다. 김상균은 그간 '인공 낙원' 내지는 '유사 낙원(pseudo-paradise)'을 만든 것이다. 김상균은 인간문명의 네러티브를 '유사 낙원'에서 '온전한 낙원'으로 가는 도정으로 이해하는 한편 그 끝의 종착점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상균 예술의 최대 묘미는 욕망과 꿈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며, 의미 없는 판타지와 상상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 사이의 간극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데 있다. ●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들 다섯 작가들은 모두 표면의 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형식 내부에 자기의 색깔을 주입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더구나 자기의 시각적 언어를 자기의 삶과 연동시켜 형식화하지 결코 무의미한 형식적 유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와 역사라는 정글을 선호하면서 제도적 맥락을 끊임 없이 고민한다. 결코 겉모습의 꽃밭에 주저앉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가들의 작품을 '형식의 색'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진명

Vol.20111030h | 형식의 색 Colors of Form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