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in Invasion

지호준展 / JIHOJUN / photography   2011_1029 ▶ 2011_1126 / 월,공휴일 휴관

지호준_Who killed Diana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45×22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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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29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8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낯선 가능성들의 접경지대 ●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들을 배경으로 확대된 동전과 신문이 오버랩(overlap)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이나 사회적 · 개인적 상황으로 인해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이 서로를 마주한다. 기념비처럼 확대된 동전,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의 만남, 중력이 사라진 것 같은 공간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의 전형(典型)을 보여주며 우리를 압도한다. 지호준이 「코인 인베이젼 Coin Invasion」 연작에서 만들어내는 이 낯선 세계 안에는 미시(微視)와 거시(巨視), 창조와 파괴, 통일과 분열, 미래와 전통, 탈식민주의와 극우주의, 평화주의와 테러리즘(terrorism)처럼 상반된 현상과 가치들이 교차한다. 조화와 충돌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접경지대(borderland)에서 인간의 역사는 새롭게 직조된다. ● 지호준은 「나노그래피 Nanography」 연작에서부터 접경지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연작에서 작가는 물체를 전자 현미경으로 나노미터(nm) 단위까지 확대 촬영하여 얻은 이미지를 컴퓨터로 편집 ․ 채색한 후 실제 공간에 영사(映寫)하여 재촬영했다. 홀로그램(hologram) 혹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연상시키는 결과물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나노 입자가 자연 풍경처럼 재현되는 상황은 하이 테크놀로지(high technology)와 아날로그(analog)적 감성의 교차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호준이 확대된 나노 입자를 통해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지(認知)하는 사실(事實)과 실재(實在)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본주의(人本主義)에 대한 확신과 불신을 동시에 담아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나노그래피」 연작에서부터 「코인 인베이전」 연작에 이르기까지 지호준의 작업을 아우르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지호준_Washington and 91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45×290cm, 110×220cm_2011

지호준은 인본주의적 태도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경계(border)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위해 근대적 인본주의를 대표하는 과학 기술을 역이용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과학 기술을 통해 확장된 눈인 현미경을 발명했고 나노 크기의 미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노 입자로 만들어진 세계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시각적 고정관념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함의하는 패러독스(paradox)를 이끌어낸다. ●「코인 인베이전」 연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인공은 나노미터, 마이크로미터(µm)로 확대된 동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동전을 쉽게 소비하며 그것의 외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동전에는 역사적 인물, 건축물, 문화재와 같은 인류 문명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또한 동전은 그 액수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경제 활동을 대표하는 물건이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화폐가 상징하는 자본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며 세상 곳곳에서 인간사(人間事)에 관여한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미시 세계를 통해 인본주의를 되돌아보고 절대적 가치 기준을 허무는 지호준이 일상 속 소소한 대상이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동전을 기념비적 존재로 확대하여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재확인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호준_Nano 5 Cents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50cm_2011

이번 연작에서 지호준이 보여주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나노미터로 확대된 동전의 일부와 마이크로미터로 확대된 동전을 중첩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자의 형식을 유지하되 확대된 동전 속 인물에 주목하여 그 인물과 관련된 신문 기사 ․ 잡지 등을 한 화면에 결합시킴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나노미터와 마이크로미터로 확대한 동전 이미지를 중첩시킨 전자의 작품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건축물과 풍경이 새겨진 동전들이다.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 광활한 자연이 미니어처(miniature)가 되어 작은 공간에 놓인 상황은 인간이 시각적 경험과 판단의 중심에서 비켜난 상황을 암시한다. 인간을 기준으로 놓았을 경우에는 동전이 미물이지만 동전보다 작은 존재에게 그것은 매우 광대한 것이다. 반대로 인간보다 거대한 존재에게 인간 세상은 동전보다 더 작은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인간 세계도 나노 입자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은 지호준이 작업 초기부터 지속해온 인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고민과 비판, 미시 세계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 광활한 자연과 거대한 건축물이 축소되고 작은 동전이 확대된 이 낯선 상황은 원근법이 사라진 모호한 공간으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작품을 마주한 관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150배에서 300배까지 확대된 동전은 긴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한 흔적인 녹(綠), 상처, 오염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솜뭉치, 구름을 연상시키는 나노 입자로 이루어진 배경은 딱딱하고 차가운 동전의 금속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촉감은 피부가 어떤 대상과 맞닿았을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지호준의 동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충족된다. 1960년대 이후 이성 중심적 철학에 대한 비판이 감각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인간의 이성과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절대성을 소유했던 시각 대신 촉각과 미각 같은 유물론(materialism)적 감각이 강조되었다. 이는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고 지호준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작가이다. 그러나 지호준은 다른 감각을 사용하지 않고 시각을 통해서 공감각(共感覺)을 제공한다. 인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인본주의적 결과물인 과학 기술을 역이용했던 것처럼 시각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시각을 역이용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지호준_Antagonist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10×160cm_2011

한편 지호준은 동전과 신문 기사를 중첩시킨 작품들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우리 세계의 작은 부분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접점(conjunction)을 찾아낸 후 자신만의 역사적 내러티브(narrative)를 이끌어낸다. 동전이 그렇듯 신문은 일상적이고 값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흔하고 작은 물건에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과 이슈(issue)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뉴스가 모여 역사가 구축된다. 작가는 서로 혁명의 감동을 나누거나, 우울하고 불편한 감정을 갖거나, 공격하는 관계 속에 놓이는 역사적 인물들을 짝지어 놓는다. 시공간, 혹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함께할 수 없었던 인물들과 사건들의 결합은 무심히 지나쳤던 역사를 바로 오늘의 시각에서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때 동전과 신문 사이의 틈새를 채우는 나노 입자들은 유실된 미시사(微視史, microhistory)를 은유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함유하는 새로운 역사 쓰기를 상징한다. 나노 기술(NT)이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분자의 기본 구조를 10억분의 1미터(m)인 나노라는 단위로 파악하는 것처럼 미시사는 종래의 역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작은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역사의 기본 단위로 상정한다. 나노 기술과 미시사는 아주 작게 보기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고 재창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세상을 줌-인(zoom-in)해서 보여주는 지호준의 나노 세계는 동일한 목표를 갖는 다른 영역인 나노 과학과 미시사를 연결시키는 접경지대인 동시에 작은 것으로부터의 혁명을 이끌어내는 가능성의 세계이다. 그러나 지호준이 단지 작은 세계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지호준이 작업 초기부터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작업은 절대성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 거시 담론에 의해 배재되고 망각된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결합시켜 새로운 전체상(全體像)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호준의 작업은 이제 인간의 역사를 지배해온 철학, 가치관, 이데올로기, 권력에 대한 주제로 확장된다. 일반적으로 뉴스는 의심받지 않으며 절대적 사실 혹은 진실로 여겨진다. 이것은 역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란 객관적인 연구 방법에 기초한 과학적인 것이자 완벽한 리얼리티(reality)를 갖는 것이라는 관념은 모더니즘(modernism) 시기까지 이어져온 정설이었다. 그러나 리얼리티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문맥(context) 속에서 계속 변한다.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쓸 것을 권유한다는 고든 S. 우드(Gorden S. Wood)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 ● 역사의 본질과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그 스스로 역사를 편집하고 만들어내는 것에 이른다. 지극히 주관적인 지호준의 기준에 의해 선택된 신문 기사들은 실제 간행되었던 그대로가 아니며 작품의 주제나 화면의 시각적 구성과 더 잘 어울리게 교체되고 편집된 것이다. 심지어 신문 전체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진실로 믿는 뉴스와 역사 모두 저널리스트(journalist)와 역사가 혹은 제 3의 누군가의 관점에서 기록된 세상의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담아내는 것이자 보다 나은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지호준은 이번에도 역사가와 소설가로서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역사가는 명백한 사실만을 다루어야 하는 엄격한 의무를 갖지만 소설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서 허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호준은 사실과 허구를 한 화면에 버무려 넣음으로써 기록자와 창조자를 넘나드는 모호함을 유지한다.

지호준_Dancing on the Freedom_유리에 피그먼트 프린트, UV 프린트_150×150cm_2011

지호준은 하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정답이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지호준이 과학을 이용해 보여주는 세계는 정답이 없으며 모호하고 흐릿하다. 인간의 감각과 판단, 역사와 진실, 세계의 실재와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면서도 명확한 길을 제시하지 않아 상대주의(相對主義) 혹은 라프로쉬망(rapprochement)적 태도를 생각나게 한다. 지호준의 작업을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 미시와 거시, 과학과 예술처럼 서로 상반된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무수한 접경지대이다. 그러나 이 작업의 목표가 무질서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접경지대에서 현미경과 확대경을 함께 들고 작은 세계와 큰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보다 근원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찾는 본질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거대 담론이나 고정관념의 절대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잠재적인 전복성(顚覆性)과 변화를 내포하는 것이다. 지호준은 인간 세계의 한계를 절감(切感)하지만 그것이 가진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가능성을 위해 여러 세계를 월경(越境)하며 끝없는 넓이와 깊이를 갖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를 그가 만든 접경지대로 초대한다. ■ 이문정

지호준_Nano Colorado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55×120cm_2011
지호준_Revolution_유리에 피그먼트 프린트, UV 프린트_150×150cm_2011

Beyond Truth"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가 주장했던 것처럼 순수한 눈은 존재하지 않는다. 눈은 항상 과거의 것을 보고 과거와 이전 것들에 매료되며 귀, 코, 혀, 손가락, 심장, 뇌의 새로운 암시를 받는다. 눈은 독립적인 체제의 활동이 아닌 복잡하고도 변덕스러운 생물체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보는 것만이 아닌 어떻게 보는가 또한 필요와 편견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 -Nelson Goodman, Languages of Art (Indianapolis: Hackett, 1976 ) p.7 ● 우리는 대상이 낯설게 보이면 그것이 진실이 아닌 허구라고 간주하기 쉽다. 보는 행위는 사회적 약속과 훈련을 통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익숙한 것, 미리 익힌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게 된다. 보는 것은 곧 사고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주지하듯이 기술의 발전은 보는 영역을 확대시켰고 이는 사고의 확장과 함께 미감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은 육안으로 보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지호준은 우리의 시지각을 확장시키기 위해 카메라의 렌즈, 나아가 현미경의 렌즈를 통해 가장 작은 단위의 보기 행위 즉 확대촬영으로 대상에 접근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체험 방식의 제시로서 우리가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내면서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든다. ● 지호준이 광학현미경을 통해 마이크로 단위로 재현한 동전은 평범한 일상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보이게끔 한다. 그는 광학현미경을 통해 본 동전의 미세한 부분들을 한 장 한 장 이어 붙여 인쇄 시 화질이 손상되지 않는 최대 사이즈로 하나의 큰 동전을 만들어 내었다. 약 150~300배로 확대되어 육안으로 보기 힘든 미세한 기스들과 녹슨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동전은 거대한 원형 조형물에 날카로운 조각도로 파낸 듯한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동상의 부식된 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낯선 세계로의 진입은 그를 또 다른 세계로의 침투로 이끌었다. 그는 동전 속의 테마가 그것을 발행한 한 국가의 대표적 이념 혹은 역사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에 기반한 가상 스토리를 구상했다. 동전 속 인물이 본다면 묘하거나 혹은 감동적일 수 있는 사건의 기사가 담긴 신문을 중첩(Overlap)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순간을 주선한 것이 그 예이다. Coin Invasion 이라는 제목은 동전이 시공을 초월하여 침투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한다. 그는 극사실주의 회화가 실제와 닮게 그렸지만 기계의 눈을 통해 본 실제와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어 예술적 가상이 주는 환상을 깨버린 후 기계로서 또 다른 가상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주목한 점 - 기술 복제된 영상은 실제를 뛰어넘는 리얼함을 보게 해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 자체를 하나의 미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 한편 지호준의 미시세계 탐구의 첫 시작인 나노그라피(Nanography) 연작에서 행해졌던 전자현미경의 나노단위 촬영은 이번 동전 작업에도 이어졌다. 동전의 나노입자는 동전이 해체된 영상으로 실제를 상상하기 어려운 형상을 띤다. 리얼하게 재현된 동전과 전혀 실재 같지 않은 화면의 중첩은 가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극단적으로 연결시켜 육안으로 보는 행위의 한계를 자극하고, 자연물 형상의 나노입자는 인공물에 감춰진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그려보게 한다. 이러한 효과는 그가 현미경으로 재현한 세계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맥락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 궁극적으로 지호준이 미시세계 탐구를 통해 던지는 화두는 절대적 진실의 부재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일까? 예컨대, 극사실화로 동전이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실재처럼 보이기 때문에 경탄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나 광학현미경을 통해 만들어낸 동전과 비교해보면 전자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미래에 현재의 광학현미경의 기술이 발전하여 더 정교한 다른 형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지호준이 촬영한 동전 또한 실재라고 정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집착은 본능적 욕망이지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 절대적 진실은 잡지 못한 채 욕망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다시 말해, 닮음(ressemblance)만이 있을 뿐 사물의 진실은 계속 유예된다. 지호준은 대상을 극도로 확대하여 미처 몰랐던 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는 사실 절대적 진실이란 정의내릴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대상의 본질, 원형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인간 시각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또 다른 보기의 방식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작품들 속 닮은꼴들이 이루는 가상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절대적 진실을 초월하여 기술을 통한 시대적 미감을 비평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지호준은 하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정답이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지호준이 과학을 이용해 보여주는 세계는 정답이 없으며 모호하고 흐릿하다. 인간의 감각과 판단, 역사와 진실, 세계의 실재와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면서도 명확한 길을 제시하지 않아 상대주의(相對主義) 혹은 라프로쉬망(rapprochement)적 태도를 생각나게 한다. 지호준의 작업을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 미시와 거시, 과학과 예술처럼 서로 상반된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무수한 접경지대이다. 그러나 이 작업의 목표가 무질서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접경지대에서 현미경과 확대경을 함께 들고 작은 세계와 큰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보다 근원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찾는 본질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거대 담론이나 고정관념의 절대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잠재적인 전복성(顚覆性)과 변화를 내포하는 것이다. 지호준은 인간 세계의 한계를 절감(切感)하지만 그것이 가진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가능성을 위해 여러 세계를 월경(越境)하며 끝없는 넓이와 깊이를 갖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우리를 그가 만든 접경지대로 초대한다. "눈은 선택하고, 거절하고, 정리하고, 편의하고, 관련시키고, 분리하고, 분석하고, 구성한다. 눈은 받아들이고 만드는 일에서 거울만큼 하지 못한다. 눈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음식 · 사람 · 별 · 적 · 무기 등으로 본다." -Nelson Goodman, Languages of Art (Indianapolis: Hackett, 1976 ) p.7 신민

Vol.20111029k | 지호준展 / JIHOJUN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