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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부산 GANA ART BUSAN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05-16번지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 4층 Tel. +82.51.744.2020 www.ganaart.com
동아시아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 ● 임영선은 동아시아 변방의 아이들을 통해서 동아시의 미래를 본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주변부 소수자에 주목해서 그곳 어린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임영선의 시각은 전지구화의 이면에서 떠오르는 지역화로서의 동아시아담론이나 중화패권주의의 급부상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거대담론의 틀에 포섭된 동시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해준다. 동아시아를 두루 꿰는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예술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그는 몽골이나 캄보디아, 티벳 등과 같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변방 마을을 방문해서 예술적 실천을 하고 있는데, 방문 현장의 어린이들과 벽화나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는 한편, 한 없이 맑고 깊은 미소를 보내는 어린이들을 현지의 풍경과 오버랩해서 담아내는 회화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관찰자 시점의 방문객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지의 상황과 함께 호흡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생산한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국제교류의 장에 동참하기를 갈망하면서 국제적인 명망성을 갖춘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골몰한다. 반면에 임영선은 동아시아 변방의 가난한 마을을 찾아간다는 점,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벽화 그리기 등의 예술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임영선의 행보에는 자원봉사자와 예술가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이 섞여있다. 애초에 그가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인연으로부터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그러니까 임영선은 예술작품 생산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만나온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어린이들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임영선은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지수를 높이는 사람이다.
임영선은 낭만주의자이다. 그는 1980년대의 학생시절에 조국통일과 민주주의의 쟁취를 갈망하는 학생운동권의 일원이었다. 20대 청춘 시절의 사상과 정서는 세월이 흘러도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2009년의 노무현 서거 정국에 고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하마을로 달려갔던 임영선이다. 대형걸개그림을 그려 봉하마을에 기증하기도 했다. 임영선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깊고 넓게 한반도의 정세에 관해 생각하는 예술가이다. 그러한 그가 한반도의 두 국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야기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을 화면에 담는다는 점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좁은 틀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문제를 남한과 북한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속에서 성찰하겠다는 것이다.
임영선은 동아시아담론을 자신의 예술적 어법으로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유사 이래 19세기까지 동아시아는 나름의 독자적인 틀을 가지고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특히 근세 수백년동안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심이 정치와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놓지 않았지만, 20세기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랐다. 거대한 힘의 상실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과 경쟁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상호간의 적대적인 태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미국중심의 일극 패권주의에 빠져 동아시아를 공동체나 지역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연대하는 일에 눈뜨지 못했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아시아담론이 대두한 탓에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것은 담론의 수준을 넘어 실행 모드로 이행하기에는 상당히 피상적인 것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문화적 상호교류는 이전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해있다.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에 입각한 국가와 국가, 도시와 도시, 나아가 개인과 개인의 상호성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은 이미 제국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고약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반한류 기류가 일각의 변죽으로만 듣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몽골이나 캄보디아 등의 소수자 국가들의 대중들에게 한국의 존재는 일종의 문화폭력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한류는 한반도 남단의 작은 나라가 생산해내는 돈 되는 문화콘텐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물결을 타고 거대자본의 힘으로 덜 자본화된 국가의 사람들의 안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자본폭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위해 10대 아이들을 섹슈얼 심볼로 내세우는 이수만의 전략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칭송할 일이 아니다.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전지구화 현상을 문화적 버전으로 실천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존재에 대해 국가브랜드 운운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긴 관점에서 봤을 때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산업의 논리가 팽배한 시대에 작고 낮은 목소리로 동아시아 변방의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임영선의 예술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임영선은 예술가적 양심에 따라 실천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적 실천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의 동아시아 교류는 국가 간의 교류가 아니라 민간의 차원, 특히 임영선이라는 예술가 주체의 실천의지에 입각해 있다. 흔히들 예술가의 해외 활동을 국제교류라고 명명하곤 한다. 그런데 그 국제적(international)라는 말은 국가 간의 상호성을 의미한다. 그 상호성이라는 것이 국가 간의 엄연한 경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예술적 실천이나 소통의 문제와는 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영선의 행보는 국가 정체성을 대변하거나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가로서 움직일 뿐이다. 물론 그를 규정하는 국가나 도시, 성별, 연령 등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임영선은 시대정신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예술적 실천 모색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임영선의 회화에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염화미소(拈華微笑)가 깃들어있다. 꽃을 집어든 석가에게 미소로 화답한 그의 제자 가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같이, 임영선의 그림에는 직관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있다. 임영선 회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질은 붓질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진을 바라볼 때는 전혀 다른 회화 이미지의 매력이다. 가령, 동아시아 어린이를 찍은 사진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이미지)가 있다'라는 인지를 가질 확률에 비해서 임영선의 그림을 보는 관객이 '저기에 (어린이를 그린) 그림이 있다'라는 인지에 도달한 가능성이 훨씬 높다. 어린이와 어린이를 찍은 사진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비해서 어린이와 어린이를 그린 회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훨씬 커 보인다. 따라서 임영선의 회화는 회화적 표현의 대상인 어린이들에 대해 성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 거리 두기를 통해서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화려한 붓질과 빛나는 색채의 임영선 회화에는 직관의 힘으로 시대정신을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동아시아를 사유하는 21세기의 염화미소가 있다. ■ 김준기
Vol.20111025g | 임영선展 / LIMYOUNGSUN / 林英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