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식展 / HONGSANGSIK / 洪祥植 / sculpture.installation   2011_1021 ▶ 2011_1103 / 백화점 영업 시간과 동일

홍상식_Three people_빨대_각 70×50×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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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8_화요일_04:00pm

롯데갤러리 대전점 창작지원 4부展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영업 시간과 동일

롯데갤러리 대전점 LOTTE GALLERY DAEJEON STORE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82.42.601.2827~8 www.lotteshopping.com

르네마그리트「이미지의 배반」에 대한 오마쥬(Hommage) ● 작가의 작업적 변화를 마주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작업의 변화는 새로운 조형적 실험의 결과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어서 작가, 평론가, 관람객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홍상식의 작업적 변화를 요약하면 색(色)빨대를 활용하여 평평한 인물화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이전 작업이 무색(無色)빨대를 바탕으로 등고선과 같은 입체효과에 의존한 이미지 제시 등의 입체였다면, 이번 작업은 모든 입체효과를 제거한 평면을 강조한 바탕에 다양한 색(色)빨대를 활용한 이 시대 인물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에서 우리는 어떠한 의미를 읽을 수 있을까? 작업의 변화란 작가의 의식적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 의미를 읽어가는 것이 작가 홍상식 작업변화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다.

홍상식_Three people red, Three people blue_빨대_각 70×50×2cm_2011
홍상식_s Che_빨대_각 50×40×2cm_2011

실재화된 환영(이미지) - 그리는 것과 만드는 것 사이에서 유희 ● 평면작업은 평평한 바탕체에 색색의 물감을 표면에 덧발라 실재적 대상을 재현하는 이미지, 즉 허상(虛像)이다. 이러한 평면작업에 반해 입체작업은 물질을 재료로 어떤 대상을 재현했던 창조했던 간에 실상(實像)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입체작가들은 실재 재료를 다루는 만큼 입체감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모든 입체감을 제거하고 평면으로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평면화된 빨대가 구현한 이미지 제작방식은 마치 프린트의 확대된 색 픽셀이나 실크스크린의 확대된 망점처럼 빨대 하나하나를 색색의 망점과 동일하게 한다. ● 굳이 왜 입체적 재료를 활용하여 평면을 의도했을까? 이러한 시도는 그의 작업을 평면작업처럼 보이게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색 점 하나하나를 실재적으로 집적하여 이미지를 구축한 입체작업인 것이다. 즉,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입체적 실상이자 평면적 허상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안철수의 얼굴을 재현한 작업은 안철수를 평면적으로 재현한다. 즉 허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각각의 색 점들은 종이나 캔버스 표면에 덧 입혀진 정도가 아니라 일정한 부피감으로 존재하는 각각 빨대 색 점으로 안철수의 이미지를 만드는 실재인 것이다. 따라서 홍상식이 그려낸 이미지는 실재하는 허상인 것이다. ● 허상을 만드는 실재?, 실재가 구축한 허상? 이러한 질문을 생성하는 이 부분에서 홍상식의 교란작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개념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처럼 실재로 그려진 허상은 결과적으로 실재인가?, 허상인가? 이는 르네마그리트가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작업을 통해 이미지와 대상, 언어와 사고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전복시켰던 핵심개념을 더욱 더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만드는 이러한 교란은 이미지가 실재가 되고 실재가 이미지화 하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더 명확할 것이다. 안철수가 재현된 이미지에서 우리는 안철수를 보지만 실제적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환영(허상)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재현된 이미지(허상)를 입체적(실재적 안철수의 입체형태 재현이 아닌 평면적 이미지 형태로)으로 그려냈다. 도대체 우리는 이것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실재하는 환영(이미지)이라하면 실재적 대상을 모방한 조각개념이 결과물인데, 작가는 이미지를 그대로 실재화 하면서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많은 모순들을 증거하고 있다. 상품이나 정치나 이미지 만들기에 골몰하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흡수하는 현실의 이러한 모순적 관계를 증거하는 이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성 제시와 함께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홍상식_Eye blue_빨대_70×120×2cm_2011
홍상식展_롯데갤러리 대전점_2011

색의 변주는 사고의 변주 ● 이미지로 재현된 많은 초상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안철수, 김제동, 박경철 등 대체로 좌파로 분류되는 인물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 인물에 대해 작가는 다양한 색 배경을 대입한다. 마치 엔디와홀이 색만 다르게 하여 동일 이미지의 판화연작을 제작했던 것처럼 그 또한 이러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러한 색 변주 작업은 동일한 이미지의 눈을 제시하되 동공부분만 검정부터 푸른색, 붉은색,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변주한 작업에서 명확한 시선을 던진다. 이 색다른 시선들은 아주 흥미로운 의미를 제시한다. 현실에서 인종학적으로 동공의 색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지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개별적 배경지식과 시각의 방향 등 각각 주체의 사고에 따라 우리는 세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인지하게 된다. 개개별 시각의 차이를 말하는 이것이 각각의 색안경이고 이것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동공에 색을 가지각색으로 변주한 것이다. 우리는 색안경이라는 말을 매우 부정적으로 정의하지만 우리 모두는 개개별적 신념과 성장배경에 기초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이다. 굳이 우리가 좌파라 분류하며 한편에선 환호하고, 한편에선 질타하는 인물들도 우리가 가진 개개별적 사고의 색안경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각화한 이 '눈' 작업은 함축하고 있지 않은가? ●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결국은 개별적 시각에 불과한 것임을 작가는 아주 냉철하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눈작업은 라캉의 '거울단계'를 시각화한 것처럼 주체와 대상(타자) 사이에서 각자가 가진 사고의 폭으로 상대방을 투영하면서 그 상호간 투영의 교차점에서 스크린을 형성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대상의 진실이 아닌 자신의 투영뿐인 인식의 단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칼라로 세상을 바라본다. 좌파도 우파도 결국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투영이 만들어낸 구분에 불과함을 작가는 작업을 통해 말하고 있다. 표피적 형태는 유사하지만 그 안에 내표된 시각의 차이, 그 시각의 차이가 만든 이미지가 투영된 현실이 갖고 있는 모순점을 작가는 작업에서 각각 색의 변주를 통해 암호화 하여 우리에게 해독하도록 유혹한다. 이 유혹에 빠져 각각의 색이 상징하는 암호를 푸는 것이 작업을 해석하는 즐거움이자 자신의 색안경의 실재를 경험하는 계기일 것이다.

홍상식展_롯데갤러리 대전점_2011
홍상식展_롯데갤러리 대전점_2011

암호를 해독하는 즐거움 ● 이미지의 실재화를 통해 작가는 많은 것을 담아 새로운 신작을 선보였다. 이미지를 흡수하는 이러한 현상은 실재하는 이미지로 점철된 우리의 현실(실상)이다. 이 현실을 빨대라는 흡수도구로 재현한 점에서 우리는 그의 작업적 위트를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 보여준 명확한 목적의 색 변주와, 이미지형태 그대로 실재화(실상)한 작업시도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 더욱 더 많은 암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홍상식의 작업을 읽는 쾌(快)일 것이다. 홍상식이 교란시킨 이미지와 실재의 의미에서 르네마그리트의 오마쥬를 느낄 수 있다면 당신 또한 이 즐거운 놀이에 당당히 합격이다. 자 이 암호 해독에 당신을 초대한다면 당신의 색안경은 어떤 색?인 문제만 남는다. 당신은 어떤 색. ■ 이정훈

Vol.20111021k | 홍상식展 / HONGSANGSIK / 洪祥植 / sculpture.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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