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철 5주기 빛/SUBLIME

하동철展 / HADONGCHUL / 河東哲 / painting.printing   2011_1012 ▶ 2011_1025

하동철_Light 84-P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0×763cm_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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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2_수요일_05:00pm

주최 / 하동철기념사업회 주관 / 공아트스페이스 기획 / 아이안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5.9938 www.gongartspace.com

색과 선으로 만든 우주, 그 안에 담긴 빛과 정신성 ● 고인이 된 하동철 교수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다. 내 앞에 놓인 작품들과 그가 쓴 글들만으로 그의 창작 의도와 생각을 짚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하교수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을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그의 작품과 글들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의 작품 자체가 명쾌하고 분명한 메시지와 양식적 특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일견 그의 그림은 단순해 보인다. 논리 정연함과 절제된 표현 방식이 그의 그림을 단순하고 간결해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안을 메우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주목해 볼 때, 그 단순함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다채롭고 화려한 변화와 차이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대립과 차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우주공간과 같다. 그는 이 공간 안에서 이성과 감성, 물질성과 비물질성(정신성), 인간과 자연의 법칙성 등과 같은 구분들을 포용하려 한다. 그만의 독특한 색과 선의 구사라든지 양식적 특징들을 통해서 조화를 이루어내려 한다. 그런 만큼 그의 그림은 단순하지 않다. ● 색과 선으로 우주를 만들고, 그 우주 안에 정신성과 상징적 의미를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하교수의 작품은 이성적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물결치고 퍼져나가는 색들과 빛의 흐름을 볼 때, 그리고 그것이 그가 체험해온 감성적인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그의 예술세계는 이성과 감성의 체험이 교차하는 세계가 된다. ● 또한 하교수는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그 물질성을 흔들어 놓으려 한다. 그 수단은 빛이다. 빛의 줄기로 흔들림을 만들고, 그 흔들림에 의해 물질성이 해체되며 그것들을 넘어선 정신성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그림을 통해서 물질성과 비물질성 혹은 정신성의 조화를 이루고, 세계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그의 그림 안에서 우리는 자연의 움직임이나 인간사를 암시하는 법칙성과 본질적인 형태들을 짚어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그림 속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단지 색과 선으로만 그치지 않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자연과 인간사의 현상과 본질를 조화시키려 한다.

하동철_Light 91-1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220cm_1992
하동철_Light 88-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62cm_1988

그가 사용하는 색들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이며, 그 색들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나 역할이 그의 그림 전체의 틀을 이룬다. 흰색은 때로는 바탕에 깔린 듯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 속 구성요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흰색은 색 자체로서 갖는 의미보다 화면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흐르는 공기의 흐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바탕과 공간 위에 노란색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때 노란색은 색을 존재케 하고 인식하게 하는 근원으로서 빛의 원천을 나타낸다. 이렇게 노란색은 또 다른 하나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색채 구성 후, 그는 검정색 물감을 묻힌 실을 튀기면서 화면 구석구석을 구획 짓는다. '튀긴다'는 행위는 화면 위에 가득 찬 물질성을 흔드는 것이라 한다. 그 흔들림으로 물질의 흔적을 넘어선 정신세계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검정색은 선으로 나타나든 색 면의 일부로 나타나든 화면을 진동시키는 에너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일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암시하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 ● 이렇게 준비된 배경과 진동하는 에너지 속에서 그는 인간사나 자연의 본질과 법칙성을 구현해내려 한다. 빨강과 파랑이 그런 역할을 하는 주된 색 이다. 때로는 파랑이 압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빨강이 압도하기도 한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한 가지 색이 다른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하나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만남의 방식들이 나타난다. 마치 인간사와 자연 그리고 우주의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과 같다. 미워하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화해하고 서로를 포용하기도 하는 세상만사가 그의 그림 안에 녹아 있다. 파랑에서 이성적인 차가움을 느낄 수도 있고, 빨강에서 열정적인 태도와 감성적인 체험을 연상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파랑과 빨강이 보이는 다양한 방식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의 흐름을 나타내는 도구들이 되기도 한다.

하동철_Light 02-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400cm_2002
하동철_Light 04-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0×180cm_2004

색을 통한 융합과 조화라는 이런 방식은 그가 사용하는 선들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선들도 역시 단순함에서 시작하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사와 자연 그리고 우주의 법칙성에 이르는 포괄적인 의미들을 담아내고 있다. ● 수직선은 하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나 폭포수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의지를 연상할 수도 있고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상승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수평선은 끝없이 펼쳐진 자연의 원대함이고,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숭고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수직선으로 하강과 상승이라는 자연과 인간사의 법칙성을 암시한다면, 수평선으로는 우리들을 감싸는 자연 안의 원대함 평온함을 나타낸다. 이런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역시 인간사를 채우고 있는 일상적인 사건과 자연과 우주를 나타내고 있다. 광대한 자연과 우주의 원대한 세계 속에서 상승하고 하강하는 굴곡진 인간사나 자연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 거대한 삶의 이야기들이 수직선과 수평선이라는 두 개의 단순한 도식 안에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선의 움직임과 방향성이라는 의미들로 인해 단순한 수직선과 수평선은 살아 숨쉬게 된다. 그저 낱낱의 사건들이나 감정과 사상의 단편들로 그쳐 버릴듯한 색과 선의 세계가 이 사선의 움직임과 방향성, 그리고 그 떨림으로 인해 살아 숨쉬는 삶의 이야기이요 자연의 변화무쌍한 흐름이 된다.

하동철_Light 02-2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02

이로써 그의 그림은 우주의 보편적인 세계와 본질을 향한 구도자의 세계가 된다. 따라서 사선들 대부분은 명확하게 윤곽지어 있지 않다. 흔들림과 떨림의 흔적을 담아내기 위해서 때로는 불규칙하게 보이기도 하고, 거칠음과 고요함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그림이 대립과 충돌이 화해와 조화로 이르는 과정들을 담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교수의 그림은 색과 선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후, 인간사와 자연의 여러 가지 어휘들과 형식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선 배후의 본질적인 세계로 향하게 하려 한다. 이것은 그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빛'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 '빛'은 그림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물질과 대비되는 정신세계를 상징하며,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방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광선의 정연한 흐름이 이성의 냉철한 정돈과 차가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만물을 감싸는 따뜻한 품이 되기도 한다. 또한 빛은 그의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통합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 따라서 하 교수의 그림은 구도자로서 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예술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담은 거대한 우주이다. 그의 삶의 기록이며 구상이기도 했고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구도자로서 그가 인생과 예술세계의 빛을 갈구한 절절한 노력과 고민이 가득 담긴 전쟁터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물감과 캔버스의 물질성에 그치는 색면 회화가 아니라 '빛'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세계를 갈구했던 구도자의 갈망을 담은 공간이었다. ●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고뇌와 갈등과 갈망을 우리 앞에 과제로 제시하고, 5 년 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림이 과연 그 이상의 정신세계와 구원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뒤로 한 채, 지금은 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예술세계 이상의 그 무엇을 풀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이 본질의 탐구를 향한 보편적인 존재 양식이 될 수 있는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 박일호

Vol.20111015i | 하동철展 / HADONGCHUL / 河東哲 / painting.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