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민展 / CHOEBYOUNGMIN / sculpture   2011_1012 ▶ 2011_1025

최병민_구름넘기_브론즈_46×26×13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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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01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투명한 인간, 그 아름다움에의 獻辭 - 최병민의 근작「응시」에 대하여 ● 최병민 조각의 미덕은 바로 그만의 조각적 형식과 더불어, 넓고 광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인체에 축약해 내는 침묵의 음유(吟遊)와 은유(隱喩)의 발성법과 표현법이다. 소급해 보자면 그 침묵은 작품인물에서의 감각기관인 눈과 입의 생략과도 마찬가지로 일맥상통한다. 그 중에서도 눈의 약화와 입의 생략은 최병민 작품 읽기의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묘사되어 있으나 흐리게 처리된 눈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의 방향과 표정으로 작품의 주요 포인트가 된다. 눈은 무언가를 보는 감각기관이지만 눈을 뜨고 있을 때 사물이 저절로 보이기도 한다. 의식/무의식적 감각/지각행위이자 능동/수동을 아우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병민의 작품에서의 눈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눈이다. '凝視'라는 제목처럼 의식적인 바라보기 혹은 관찰이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앎의 의지, 즉 지혜를 구하는 행위다. 거기에는 올바로 봄과 올바로 인식하려는 인간의 지혜를 향한 원형적 본능이자 의지가 전제된다.

최병민_드림_합성수지_48×15×22cm_2011
최병민_바위섬_브론즈_49×20×14cm_2011
최병민_응시 11-01_합성수지_53×20×16cm_2011

눈에 비하면 입은 아예 묘사되어 있지도 않다. 봉인된 입. 말에 대한 절제, 혹은 묵언. 말을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화자의 의지가 있을 때라야만 가능하다. 감탄사나 비명 등을 제외한 말은 상호소통을 단서로 한다. 이성적 행위란 것이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어딘가 집중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언가를 응시하며 거기에 눈이 몰입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 대상과 현상을 분석하고 알고자 애쓸 때 말은 필요치 않다. 오히려 깨우침에 방해가 된다. 깨우친 이후의 말은 지혜가 되지만 깨우치기 전의 말은 군더더기다.

최병민_주사위-山_합성수지_35×17×15cm_2011
최병민_징검다리_합성수지_54×24×12cm_2011
최병민_탑_합성수지_46×16×13cm_2011

바로 이 때의 응시는 세계와 현상이 인간의 지식에 의해 개념화되기 이전 원초적 상태에서의 인지작용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 개념에 의해 사람의 순수한 감성과 인식이 방해받지 않아야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최병민 조각의 이 묵언(默言)을 수행하는 사람이 순수한 상태의 인간형이라거나--춤과 놀이와 사유와 노동을 하는 형상들--세계와 존재에 대한 직관적 깨우침을 지향하며 제의에 참가한 수행자나 예지자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속되지 않고 진리를 구하는 이들은 현자(賢者)다. 그런 현자의 침묵이 절제된 조각형식을 통해서 체현되어 나올 때 소재인 사람과 작가의 정신성이 동시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김진하

Vol.20111012i | 최병민展 / CHOEBYOUNGMIN /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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