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성_이민경展   2011_1005 ▶ 2011_1018

이민경_하루의 시작_캔버스에 장지_97×130.3cm_2011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백운 갤러리 서울 강남구 청담동 32-5번지 백운빌딩 5층 Tel. +82.2.3018.2352

이민경의 작업은 시간이라는 삶을 쌓기와 채우기라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일부를 보여주고자 한다. 쌓기와 채우기는 차곡차곡 일정한 간격을 두고 채워 나간다. 1초 1초가 지나가면서 하루라는 거대한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는 한 달을, 한 달은 일 년을 만들어낸다. 커다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쌓기와 채우기는 이민경의 1초 1초가 모인 시간을 보여 주는듯하다. 우리에게 작가의 하루 하루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 이민경

이민경_하루의 시작_캔버스에 장지_130.3×97cm_2011_부분
이민경_하루 하루_캔버스에 장지_130.3×97cm_2011
이민경_하루 하루_캔버스에 장지_100×80.3cm_2011

화면을 채우기 위한 이 '쌓기'의 작업은 매우지난한 일이자 작업의 개념을 상승시키는 주요 전략이 되고 있다. (중략) 작가 이민경은 자신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결을 이런 작업으로 풀어내 보고자 하였다. 즉 쌓기와 채우기라는 개념으로 집적된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던것이다. ■ 김종길

이민경_비우며 살기_캔버스에 장지_45×38cm_2011
이민경_채움 4_캔버스에 장지_72×60cm_2009

산과 나무, 길, 꽃, 잎, 탑과 같은 익숙한 소재를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천연덕스럽게 단순화한 그의 용기는 흉내내기 어려운 시도이다. 여기에 '쌓기'의 미적 감각을 동원해 무늬가 되고 결이 되어 시간을 형상화 한 그의 의도는 응축된 그의 삶의 표현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디서 본 듯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삶은 시간이고 언제나 이 순간이 아니던가? 채워야 하는가 비우던가 아니면 그대로 두던가. 늘 고민하고 후회하고 버리려 한다. 그러면서 묵직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발산하고자 한다. 이민경의 그림은 그것이 제작되는 시스템 자체가 다른데서 독특한 구조와 형식을 찾았다. 캔버스라는 현실적 평면에 모필의 자재로운 필운을 던져 버렸다. 그러므로 매재(장지)를 회화작품에 도입하여 형식과 의도는 관객을 차단시키지 않으며, 조금은 감각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삶(일상)에 대한 함축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캔버스 화면에 에스키스(밑그림) 한 후 어떤 이미지를 위한 색면 분할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방식이며, 닥종이를 일정한 두깨로 잘라서 켠켠이 붙이는 엄청난 공력을 통해 완성한다. ■ 황흥창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50×100cm_2011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40×40cm_2011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45×90cm_2011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45×45cm_2011

최민성 枯木生花-아름답고 고독한 소통의 시도 ● 최민성의 꽃은 화려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화려함은 불완전하고 고독하다. 그러나 그의 고독은 절대 고독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환경과 시선이 만들어낸 상대적 고독이다. ● 고목에서 생물학적으로 꽃피울 수 없는 장미는, 작가의 현재적 自我 – 앙상한 나뭇가지 - 와 투영된 他者로서의 自我 – 장미 - 간 괴리에서 나오는 실존적, 상대적 고독의 표현이 된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볼 때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작가는 그 고독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소통을 시도한다. ● 소통을 위해 작가는 끊임없이 외계에 신호를 보낸다. 때로는 색으로, 때로는 화려한 장식으로… 그의 연작에서 장미가 다양한 색의 변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소통의 방식이며 작가가 외계에 보내는 필사적인 신호다.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45×90cm_2011
최민성_枯木生花_혼합재료_30×60cm_2011
최민성_枯木生花2_혼합재료_30×60cm_2011

스스로 '내가 아닌 나'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고독의 정서에 작가는 일정부분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고목에 핀 장미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혹은 공유되는) 것은, 현실을 지배하는 듯 보이는 인과율의 틀을 한 걸음 벗어나서 사유했을 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 우리의 현재는 스스로 만들어낸 질서일 뿐이고,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진리가 아닌 관념의 집적과 설명 불가능한 존재의 구성물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 작가는 깊이 있게 성찰하는 과정에 있다. ● 이에 작가는 이 괴리를 소통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세상이 바라보는 자신을 일정 정도 인정하고, 스스로가 인지하는 자신을, 세상이 인식하는 자신과 세상이 자신을 이해하는 있는 방식으로 병치 시킨다. ● 화려한 꽃이 있고, 앙상한 가지가 함께 있다. 그것이 合一態 가 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이 작가와 세상이 인식하는 현실이므로. 하지만 이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직 젊은 그가 세상의 시선과 합일하고자 도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앙상한 가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는 변증법적 과정이 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그의 작품은 도전적이거나 충격적이지 않게 세상의 진실을 포용하려 한다. ● 아직까지 작가는 삶에 대한 자신감에 가득하다. 고독하지만 괴로워하지 않는 그의 자신감이 작가로서의 그의 앞날에 커다란 창작의 원천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 황시형

Vol.20111005d | 최민성_이민경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