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빛 Lights in the dark city

이은숙展 / LEEEUNSOOK / 李恩淑 / painting   2011_0928 ▶ 2011_1011 / 월요일 휴관

이은숙_마음의 괴물 Gargoyle_색한지에 안료_91×61cm_2011

초대일시 / 2011_0928_수요일_06:00pm

Space inno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이노 SPACE INNO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2층 Tel. +82.2.730.6763 www.spaceinno.com

내면으로부터 이루어진 가식 없는 순수조형 ● 이은숙의 작업 공간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작가가 직접 모은 다양한 신문 기사들이 테이블을 비롯하여 벽 한쪽을 온통 채우고 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기사들은 자유롭게 찢어낸 듯한 것들과 정갈스럽게 오려낸 것들로서 마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는 전문가인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인터넷과 여러 책들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꺼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정독하며 사색하기를 즐긴다. 이러한 사색 속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나의 삶의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를 조형화시키는 일에 몰두해왔다. 이 때문인지 작가의 작품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타임머신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많은 이야기가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형상을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붓장난을 해놓은 것처럼 무언가 형태가 있는 듯하거나 혹은 아무 형태도 갖추지 않은 무형의 붓 자국만이 화면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득 메운 것도 아닌, 마치 허공 속을 가르는 외로운 몇 줄기의 안개나 연기의 흔적 같은 형태들이 붓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리워져 있다.

이은숙_갈증 Thirst_색한지에 안료_91×61cm_2011

이러한 작업은 한때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서양의 추상 작업도 아니고, 과거에 동양에서 그려왔던, 먹 맛이 어린 필치도 아니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자칫하면 서양의 추상과 동양의 필력이 적당히 어우러져서 이루어진, 추상성을 지닌 형상 정도로 오해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서양의 추상 미술이나 중국의 미술을 적당히 응용하는 듯한 작가들이 우리 미술계에 적지 않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이은숙_속임수 Inflated cow_색한지에 안료_91×61cm_2011

확실히 이은숙은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색다른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아직은 유명한 중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예술적 기질과 특성이 있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며 표출해낸 특별한 관조로부터 비롯된 미적 상상력이 그 기저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 세계는 순수하고 참신하며 창작의 진정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러한 이은숙의 작업은 매섭도록 철저하다. 이 철저함은 어떤 대상과 사건 그리고 관심거리 등을 직시하고 그것과 거짓 없이 함께 조응하면서 이루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힘이라 하겠다. 이 힘은 자연의 본질과도 같은 힘이며, 관조 속에 드러나는 정곡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곡의 실체는 곧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기운의 실체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많은 동양의 화가들이 이 기운을 조형화시키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현은 대체적으로 지극히 관념적이었거나 지식 또는 개념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가식적이었으며 허상이었다. 거짓과 위선 및 가식으로 이루어져서 도무지 발상의 근거가 없이 단순한 지식적인 생각만으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들의 작업과 예술적 행위를 과대 포장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은숙_덧없음 Vanitas_색한지에 안료_91×61cm_2011

이에 비해 이은숙의 작업세계는 비교적 창작의 근저가 확실하고 독자적이며 근본이 명료하다. 앞서간 자들의 이론들을 단순하게 섭렵하는 예술론이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거짓 없이 드러나는 예술을 구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현실적인 대상이나 여러 곳에서 발생된 사건들을 진실로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각각 하나의 조형력으로 조망해보며 작품화시키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진지한 사색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일과 조우하는 특별한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체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체험으로서, 작가가 그만큼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본성과 본질에 대한 관조를 통해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미적 조응력과 조형적인 응집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은숙_구토 Vomiting_색한지에 안료_45×30cm_2011

그러기에 이은숙의 무형상적인 일련의 작품들에는 밀도가 있으며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힘이 흐른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절제한 간경(簡勁)한 백묘(白描)와 같은 선묘의 힘이 흐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조형과 백묘가 같은 부류의 것이라는 것은 아니며, 거짓 없고 강한 힘이 담겨져 있다는 의미이다. 본질에 대한 관조와 대상에 대한 조응 속에서 형성된, 작가와 표현 대상과의 완벽에 가까운 교융과 소통은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수준 높은 조형으로 표출되어 우리들 앞에 무형상적인 형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는 대단히 섬세하면서도 예민함이 흐를 수밖에 없다. 어떤 미술사적인 방향을 주장하거나 흐름을 타지 않으면서 이은숙만의 독특한 조형이 창출되는 것이다. ● 그만큼 작가의 작업세계는 어느 작가의 그것보다도 진지하며 순수하기에 그의 작품은 은근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또한 이은숙의 작품은 추상적이면서도 추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펼치는 듯한 기묘함을 담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작품세계가 추상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순수하면서도 진지한 상상력과 독창성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은숙_홀로서기 Being alone_색한지에 안료_22×15cm_2011

이러한 면들은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왔던 작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들은 다양한 이미지로서 현대인의 삶의 의미가 넘치는 압축된 조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조형적인 특징은 곧 투박함과 단순함 등에서 비롯된 효과를 통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단순한 붓놀림처럼 보이면서도, 조형적인 예리함과 투박함, 질박함이 한데 어우러진 타고난 감각으로 펼쳐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 그동안 이은숙은 현대 문명 속의 현대인들의 삶에서 비롯된 일련의 현상에 대해 사색하면서, 평소 생각해오던 자신의 예술을 욕심 없는 마음으로 비교적 정직하게 조형화시켜 왔다. 모든 대상들과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며 순수함과 겸허함으로 조형적인 진리를 사색하며 자신만의 조형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모습은 한국인의 삶과 부합되는 것으로서 결코 우연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생각과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사색과 예술 창작에 대한 애정이 이은숙만의 조형 예술을 탄생시키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 그럼에도 아직은 검증되어야 할 부분도 있고 아직은 젊은 작가라 할 수 있기에 그 가능성은 작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이처럼 당찬 작가가 우리 화단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자유로움과 질박함 그리고 겸양을 토대로 한 사색 속에서 드러난 결과물이기에 더욱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장준석

Vol.20110930g | 이은숙展 / LEEEUNSOOK / 李恩淑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