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ed

이국현展 / LEEGUKHYUN / 李國炫 / painting   2011_0929 ▶ 2011_1008 / 일요일 휴관

이국현_Veiled-1920_캔버스에 유채_91.1×116.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국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9_목요일_05:00pm

기획 / 소헌컨템포러리 "MOVING 2011" OF YOUNG CONTEMPORARY ARTISTS Ⅰ~Ⅲ 릴레이 개인展

1부 이국현 2011_0929 ▶ 2011_1008 2부 이상재 2011_1011 ▶ 2011_1020 3부 한휘건 2011_1022 ▶ 2011_1031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소헌컨템포러리 SOHEON CONTEMPORARY 대구시 중구 봉산동 220-3번지 Tel. +82.53.253.0621 www.gallerysoheon.com

페티시, 유혹하는 몸, 도구, 기술 ● 현대미술에 논란을 불러온 사건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네의 「올랭피아」 스캔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성 관념 내지는 성 인식을 건드리고 있는 이 그림에서 올랭피아는 정면으로 쳐다보는 눈빛과 적나라한 포즈로 당시 부르주아 남성 관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누드에 길들여진 그들의 눈앞에 던져진 발가벗겨진 육체가 그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올랭피아의 목을 장식하고 있는 리본(작가의 그림에서는 진주 목걸이에 해당하는)은 그녀가 인격체로서보다는 일종의 성 상품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성 상품의 공공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은 그들의 위선과 도덕적 이중성을 건드린 것이다. ● 그리고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초기사진작업에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유명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 그대로를 재현한다. 이 일련의 자기연출사진에서 셔먼은 미디어를 통해 접해지는 여성의 이미지가 사실은 실제를 가장한 연출된 이미지임을 밝히고, 이를 통해 유포되는 여성스러움 역시 알고 보면 여성성을 가장하고 포장하기 위해 고안된 기호화된 이미지임을 밝힌다. 그리고 연이어 여성스러움의 기호들을 전유하고 해체하는 소위 그로테스크 이미지로 나아간다. 그런가하면 비교적 최근의 예로는 성인용 화보집 『플레이보이』 지의 촬영장 장면을 소재로 한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영상작업이 흥미롭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상에서 뭇 남성들이 흥분해 마지않는 화보 속 여성 이미지들은 사실은 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마저도 우연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철저하게 연출되고 만들어진 이미지, 성 상품을 강조하고 극대화한 이미지임이 드러난다.

이국현_Veiled-1527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0

누드와 네이키드, 시선과 응시, 시선과 권력의 문제, 성과 권력의 문제, 성 상품과 페티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여성스러움의 기호들, 그리고 그 기호들에 간여된 이데올로기와 특히 자본주의 물신 등 이 일련의 작가들이 주제화한 성 테마는 심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학적인, 그리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실로 광범위한 문제의 지점들에 걸쳐있다. 이국현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들, 이를테면 한눈에도 섹시하고 육감적인 포스로 어필해오는 여성의 이미지들 역시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 문제의 지점들 특히 성 상품과 페티시의 지점들을 건드리고 있다. 이국현은 전작에서 호모섹슈얼과 함께, 여성스러움의 기표들, 이를테면 수동적이고 내면적이고 다소곳한 자세를 강조한 일련의 연출된 여성의 이미지를 그린다. 이 과정을 거친 연후에 마침내 근작에서 성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에 귀착한다. 이렇듯 작가의 관심은 진작부터 성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성 테마에 대한 관심은 주제의식에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패키지가 그것이다. 포장된 상품을 뜻하는 패키지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 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여성성의 기표들 중에서도 특히 성 상품화된 이미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주제는 작가의 사사로운 관심이 표출된 것일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미디어를 통해서 유포되고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반응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고, 그럼으로써 성을 매개로 한 이미지의 정치학과 사회학적 문제의식의 지경으로까지 작업의 외연을 확장시켜놓는 계기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싶다. 실제로 작가는 최근에 패키지(Package)에서 패키지즘(Packagism)으로 주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일종의 조어일 수 있는 패키지즘을 굳이 번역하자면 포장술 정도가 되겠다. 여성성 혹은 여성의 이미지를 성 상품화하는 경우가 공공연한 현실이 되었고, 그 자체가 일종의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수행되는 관행 내지는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음을 알 수가 있고, 이러한 현실을 작가가 인식하고 주제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국현_Package-2427_캔버스에 유채_90.9×65.2cm_2011
이국현_package-1617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그리고 하부 주제로서 도입된 인형과 베일 역시 흥미롭다. 인형은 섹스머신을 떠올리게 하고, 성적인 상대를 인격체로서보다는 사물화하고 객체화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하고, 페티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베일은 가리면서 보여주는 성의 이중성을 상기시키고, 성적 판타지를 강조하는 유혹의 기술을 상기시키고, 무엇보다도 욕망의 모호한 대상성을 상기시킨다. 인형으로 나타난 사물성과 페티시, 그리고 베일로 나타난 성적 판타지와 유혹의 기술 그리고 욕망의 모호한 대상성이 어우러져서 패키지 곧 성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로서 현상하는 큰 주제를 부연케 한 것이다. ● 작가의 그림에서 여성은 페티시 곧 성 상품화된 이미지로서 나타난다고 했다. 페티시를 위한 장치로는 우선 일체의 배경을 삭제한 채 시선을 모델에 집중시키는 것이 주목된다. 배경색 역시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로써 여성스러움을 강조한다. 이렇게 설정된 화면 위에 모델이 세팅되는데, 정면을 응시하거나 얼굴선이 잘 드러나 보이게 살짝 비튼 각도(소위 얼짱 각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멍한 표정과 치아가 살짝 엿보이는 반쯤 열린 입술 혹은 격렬했던 키스의 순간을 암시하는 립스틱이 뭉개진 입술, 그리고 하늘거리는 레이스로 정교하게 장식된 의상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일 듯 말듯 드러난 가슴과 목선과 어깨선과 같은 포즈가 연출된다. 보일 듯 말 듯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가리는 것 같기도 한 욕망의 모호한 대상성을 전략적으로 강조하고 연출한 포즈다(어쩌면 예술은 관음증과 관련이 깊은지도 모른다. 그 욕망의 종류가 무엇이든 보고 싶은 욕망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서로 좇고 좇기는, 그 욕망을 드러내고 숨기는 숨 막히는 사건이며 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보조 장치를 위한 소품들이 등장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얼굴의 절반을 덮을 만큼 큰 선글라스와 가면무도회에서나 볼 법한 눈 부위를 장식하는 가면이다. 이 소품들은 말할 것도 없이 성적 페티시를 강조하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동원된 것들이다.

이국현_Veiled-1907_캔버스에 유채_161.1×227.3cm_2010

가면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선글라스가 연출에 의한 것임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키스할 것 같지가 않고, 더욱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부드러운 벨벳 소재의 자리에 누워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포즈로 상대를 유혹할 때마저 여전히 선글라스를 쓴 채로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부자연스럽고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에서 드러난다. 그 자체가 극적인 상황이며, 일상에서의 일탈이 감행되는 극적인 순간을, 그 숨 막히는 사건을 의도하고 강조하기 위한 기표라는 말이다(성적인 사건이 여전히 가슴을 떨리게 한다는 전제 하에). 여기서 기표는 더 이상 현실원칙에 붙잡히지가 않고 추상화된다. 현실원칙의 경계를 넘어 판타지를 생성시킨다. 기표의 기의는 더 이상 현실의 자장에 속해져 있지가 않다. 기표의 기의는 판타지다. 말하자면 선글라스의 의미기능은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선글라스는 유혹의 도구다. 그리고 가면은 페르소나 곧 대리주체를 의미하고 수행한다. 나는 그 대리주체 뒤에 숨어서 너를 탐욕하고, 탐색하고, 탐식한다. 대리주체(혹은 가면)는 선글라스(혹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성적 주체)가 그런 것처럼 허구의 영역에 속하고, 판타지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 만큼 나는 나의 욕망을 대리주체에 자유자재로 투사할 수가 있고, 나아가 나에 대한 너의 욕망마저 탑재하고 실현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욕망하고 유혹할 수가 있다. ● 이국현은 여성을 페티시 곧 성 상품화된 이미지로서 제안한다(제안이라기보다는 공공연한 혹은 암묵적으로 공모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반응). 그리고 그 부수장치(작은 페티시)로서 선글라스와 무도회 가면을 제안하는데, 유혹하는 도구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보는 도구들이며 보여주는 도구들이다. 유혹하는 도구들이며 유혹 당하는 도구들이다. 더 효과적으로 유혹하고 유혹 당하게 해주는 도구들이다. 본다는 것, 그것은 성적 사건과 관련이 깊고, 관음증과 관련이 깊다. 주체에 대한 사르트르의 정의에서처럼 서로에게 주체로서 군림하려는 투쟁과 관련이 깊고,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가 각축하고 시선과 응시가 상박하는 존재론적 사건과 관련이 깊다. 유혹할 것인가, 유혹 당할 것인가. ● 어쩌면 에로티시즘은 상대를 대상화하고, 사물화하고, 객체화하는 사건이며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형이나 마네킹이야말로 에로티시즘의 진정한 대상이며 최종적인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근작에서 여성을 인형처럼 그리고, 실제로도 인형이라고 명명한 경우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나는 너를 인형처럼 사랑하고 싶다. 혹은 새장 속의 새처럼?- ■ 고충환

* 서교예술실험센터 신진작가 지원사업 중 평론 부문

Vol.20110929b | 이국현展 / LEEGUKHYUN / 李國炫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