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ving

권영술展 / KWONYOUNGSUL / 權暎述 / painting   2011_0923 ▶ 2011_1011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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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바이러스 주체성으로의 여정 ● 욕망의 자리는 언제나 경계에 위치한다. 때로는 생산의 토대로서 작용하여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 내지만 때로는 평범한 결합관계를 훼손하는 카오스로 돌진하여 다가치적인 해충으로서 나타난다. ● 그러므로 욕망의 장소는 항상 팽팽한 긴장이 유지된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충돌하는 것이다. 권영술의 욕망은 그 충돌의 지점에서 원심력보다는 좀 더 큰 구심력으로 작용하여 욕망을 넘어서 갈망(Craving,간절한 욕망)으로 질주하고 있다. 작가는 갈망의 장을 펼치고 있다.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60.6cm_2011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갈망은 경계 안에서 유영하지 못한다. 갈망은 본성상 안으로 침잠한다. 형태 안으로, 부처의 상 안으로, 자동차 안으로, 세상 속으로, 구심력적 갈망이 끊임없이 형태 안으로 침잠하고 또한 침식한다. 작가의 상위의 경험이자 능력은 그 갈망의 형태 안으로 욕망의 원심력적 작용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유영 안에서 갈망은 그것의 속박을 건너뛰듯이, 형태와 형태를 뛰어넘고 형태가 결속된 장을 배회하고 있다. ● 이러한 갈망과 욕망의 융합이 때로는 그리고, 그리고로 종종 혹은, 혹은으로 나아가서는 가정과 조건의 세계로 펼쳐나간다. 이 융합의 장이 배경과 형태를 흐릿하게 유지하면서 그러한 구별성을 허물어뜨리는 새로운 형태가 연속적으로 연결된다. 이 형태는 불현듯 드러난다. 그것은 어디에서 도래하는가?

권영술_Craving-Mahamay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권영술_Craving-Mahamay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권영술_Craving-Siyamatara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1

갈망과 욕망의 이중주가 펼치는 형태의 연속적이고 단속적인 세계는 작가의 기억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다. 지나간 삶의 흔적과 현재적 갈망의 양상들이 다양한 변이적 형태들 속에서 시공간을 풀어헤치면서 기억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권영술_Craving_캔버스에 연필, 아크릴채색_65.2×91cm_2011

그 시공간에 속박된 형태 속에서 원심력적 욕망으로 탈(脫)하는 것이 작가의 생명적 발아, 생의 변이이다. 그런데 이 변이는 또 다른 형태를 추구한다. 곧 탈(persona, mask)을 쓰고 또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 아름다운 성의 형태 속에서, 양주, 보석, 배, 비행기, 꽃, 구름 등등으로 부유하며 변이하고 있다. 이러한 탈의 행위 속에서 탈을 쓸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욕망은 갈망의 파도 속에서 몸담고 있는 세계가 탈(disease)이난 영역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 그러나 작가가 소유하는 탈이 난 장소는 탈 주체성이 잉태하는 빈곳이기도 하다. 탈이 났기에 그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에. 가득 찬 곳에 거주하는 그것에 비밀스럽게 거주하는 바이러스처럼 작가는 이 빈장소를 소유하게 된다. 아직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한 빈 곳. 시각적으로는 가득 채웠지만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가득 찬 곳 그리고 그것의 끊임없는 환상 그리고 또 다시 빈곳으로의 변형. 이 빈곳의 정향은 새로운 주체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빈곳이기에 긍정할 수 있는 초월론적 지점이다. ● 그 초월론적 지점에서 새로운 주체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생산된다. 곧 회한과 끝없는 용기와 침잠 속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항상 어떠한 환영도 없는 표면에서 사후적으로 기입된다. 사후적으로 곧 뒤 돌아선 등 뒤에서만 볼 수 있는 바이러스의 위력. 그렇지만 작가가 발견한 사후적 표면은 탈의 변이 속에서 잉태한 갈망과 욕망의 생산성을 또 다시 함축한다. 그것은 갈망 안에 내재한 욕망의 탈주체성을 발견하는 것 곧 삶의 생산적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것이다. 권영술은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주체성을 추구한다. ■ 安九

Vol.20110923j | 권영술展 / KWONYOUNGSUL / 權暎述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