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TENTE

손석展 / SONSEOCK / 孫錫 / painting   2011_0921 ▶ 2011_1016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15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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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23_금요일_05:00pm

기획 / 가나아트

관람료 /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손석, 영롱한 빛으로 재탄생한 고전 ● 손석의 회화는 우리에게 친근하고도 낯익은 것이다. 그는 소나무의 껍질을 연상시키는 두툼한 표면 위에 전통적인 도자기나 사발의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그가 모티브로 삼는 도자기나 사발은 이전에는 술을 담거나 꽃을 꽂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물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예술품으로 각광을 받는 물건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자기는 뛰어난 조형미로 우리나라 화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김환기, 도상봉, 김인승 등이 대표적인 화가들인데 작가마다 약간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가령 인물화가였던 김인승에게 도자기는 배경을 꾸미는 상수(常數)로 등장하며, 정물화가였던 도상봉의 도자기는 꽃과 더불어 주된 모티브로, 추상화가 김환기는 도자기에 나오는 문양과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에 이러한 복고열이 손석을 비롯하여 일부 작가들에 의해 다시 점화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거기에 한국사람들의 꾸밈없는 생활정서가 깃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순박한 미의식에 감응되었기 때문이리라.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00×104cm_2011

그러면 손석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도자기를 전면에 등장시켜 그림의 화두로 삼는다. 이전 작가들의 작품에서 도자기가 부수적인 요인으로 도입되었다면 손석의 화면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역대 어느 화가에게서도 볼 수 없었으리만치 도자기를 '중용(重用)'하고 있는데,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려는 작가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그렇다면 그가 이처럼 도자기에 심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자기 자체가 주는 꾸미지 않은 자태와 무심한 경지, 잔잔한 유백색의 아취가 그를 매료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최순우선생이 도자기를 모르고서는"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하였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고 한 이유를 알만하다.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14×130cm_2011

그러나 작가가 대상을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선배화가들에게 있어선 단지 페인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손석의 작품에선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대장장이가 숙련된 솜씨로 연장(鍊匠)을 만들어내듯이 온갖 공력을 기울여 재탄생된다. 도자기를 만든 도공 못지않게 그의 도자기 그림도 엄청난 공과 시간이 투자된 산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수한 색점을 쌓아올린 것이나 그 색점을 떠받치는 길다란 벽모양의 블록들을 구축한 것이나 요철을 지닌 이미지들, 치밀한 계획에 의해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르게 채색된 색채들이 이점을 확인시킨다. 득달같이 제작한 그림이 아니라 물감을 입히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쌓아올리며 조형을 구축해가는 정말로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진액이 다 빠질 때까지 그림을 잡고 늘어지는 억척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장인적 우직함'의 미덕이 그의 작품에 든든한 후견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 화면을 보면 수직으로 된 블록이 촘촘히 조성되어 있고 그 위에 다시 이미지가 불룩하게 솟아오른 것을 알 수 있다. 도자기를 한 시각에서만 보도록 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도록 계획되어 있다. 이렇듯 작가는 홀로그램 기법을 적용하여 도자기가 고색찬연한 신비감을 머금은 듯 연출하였다.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30cm_2011

기법적으로 홀로그램이 기계적 장치에 의한 것이라면 손석의 홀로그램은 순전히 수작업에 의한 것이라는 차이점을 지닌다. 밭이랑처럼 2cm 가량 된 칸을 수백개로 나눈다든지,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올려 퇴적층처럼 꾸민다든지, 빈틈 사이에 여러 색채로 표정을 준다든지 하는 것은 그가 도자기를 한가지 맛이 아니라 여러 맛을 지닌 예술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작가는 좌우에 서로 다른 컬러를 입히는데 가령 네모의 좌측에는 푸른색, 우측면에는 초록색, 하단에는 흰색, 상단에는 노랑색 등을 채색하여 시점에 따라 이미지와 색채가 변하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갖게 하였다. 이런 수법을 빌어 작가는 과거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옛 것이 지닌 아우라를 시차를 뛰어넘어 환기시킨다. 이로써 옛것과 새것의 괴리감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는 사람을 미의 항구성에 머물게 한다.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95cm_2011

또다른 특징은 그의 도자기는 공중에 부양되어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도자기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허공속에 떠있는 도자기라는 일루전을 통해 그림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활처럼 구부린 독특한 캔버스를 개발하였다. 정면에서는 식별이 잘 안되지만 측면에서 보면 그의 화면은 앞으로 상당히 돌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앙에 도자기를 위치시킨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도자기가 가장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도자기의 형태를 이루는 네모꼴들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아지고 중앙으로 올수록 넓어지게 함으로써 입체감을 보탰다. 색채에 있어서도 가장자리는 채도를 낮추고 중앙에 올수록 높임으로써 마치 입체적인 도자기를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150cm_2011

우리나라의 도자기나 질그릇은 무척이나 독특하다. 꾸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졸한 느낌을 준다. 둥그런 모양은 어질고 백색은 사심없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에게 가장 어필된 점은 아무래도 표면의 질박함이 아닐까. 매끈하지 않고 약간 굴곡진데다가 투박한 표면에 착안하여 도자기의 새로운 해석에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화면에서 도자기는 대단히 우툴두툴하고 촉각적이다. 난관과 역경이 닥칠 때마다 특유의 끈기와 인내로 잘 이겨낸 민족성처럼 질긴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표면은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일찍이 한국미술의 거봉(巨峰)인 근원(近園) 김용준과 수화(樹話) 김환기와 교류가 잦았던 소설가이자 평론가 이태준은 고전이나 전통이 보존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고전을 불사조처럼 되살려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골동품이 단지 보존과 완상 차원에 머문다면 그것은 복고주의에 불과하지만 새 조명을 받을 때 옛 것의 아름다움이 현재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손석_L'attente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200cm_2011

그의 주장은 손석이 표방하는 예술의 지향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단순히 옛 물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에서 한국미의 특질을 구하고 있다. 화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수한 표면, 그 안에 담긴 영롱한 빛, 고요함 속의 평화스러움, 도공을 방불케 하는 철저함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허세도 버린 도자기가 그에 의해 좀더 신비하고 영롱하게 해석되고 있다. 단조로운 듯 보이지만 고요한 전언은 어떤 장황한 그림보다 설득력을 지닌다. 흔히 전통을 말할 때 재연 자체로 만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는 정작 자신의 해석은 결여되어 있다. 전통의 고루한 답습이 아닌, 창조적 승화는 그의 작품을 말할 때 놓쳐선 안될 대목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출중한 미적 감각으로 되살린 고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눈과 귀가 손석의 작품에 집중하는 이유가 아닐까. ■ 서성록

Vol.20110921i | 손석展 / SONSEOCK / 孫錫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