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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전시 www.leeminhyuk.com
유령들의 풍속화로 본 이민혁의 Bar series... ● 이민혁은 그의 작업 세계속에 현실을 풍자하는 비유와 다중적 감정으로 현실을 축도하고 예지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것이 비관이든 낙관이든 그가 목도한 절대적 시간과 현장 속에서의 그 감정을 그대로 보존하고 표출하는 회화적 제스춰는, 일반 작업자들과 구별되는 비여과적 무차별적 의식의 증거물이고, 바로 그 점이 작가 이민혁의 감각이 갖는 정체적 특징으로 보여진다.
그의 속칭 '바 시리즈'도 그런 산물 중에 일부로써 그가 명명한 BAR라는 의미가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BAR에 국한되지 않고 '군집성' '집단 유희성' 혹은 그에게 소여(所與)된 현장의 느낌에 의해 주관적으로 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현상에 포착된 현실적 상황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회화로 풀어 놓는 보기 드문 정직성을 내포하고 있다. ● 이민혁의 회화를 '파격적' '원초적' '야수적' 특성으로 규정하는 데는 작업이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표현형식의 범주에서 파악되는 방법적 측면이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소재를 선택하는 의식의 태도에서부터 그는 이미 필요충분적 조건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서부터 음습한 일탈의 장소와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Bar들은 마치 세잔 청년기의 대주연의 현대적 해석으로 느껴질 만큼 강렬하고 역동적이며 원색적이다. ● 화면속의 인물들은 술을 마시고 바텐더는 불의 유희를, 혹은 적나라한 나체로, 카지노와 시장 등 소재의 개별로 보면 개연성의 틈새가 보이는 이것들을 Bar라고 통칭한 그의 의식 안에는 그 현장에 있지만 자신을 제외하고 바라본 인간들의 군집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추상적 의미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 아마도 이 부분은 작가의 의식 내부에 있는 감성과 연관된 유희성을 키워드로 보는 게 타당하리라.
현대사회에서 유희성은 인간 생활세계 전반에 작용된다. ● 매체와 방송 그리고 도처에 깔려있고 그것은 중압감들이 느껴질 정도로 유희적 시그널을 강화하고 있다. 그 반면에 삶의 현실은 치열한 각축장으로 변하고 냉혈한 생존논리를 진보적 의미로 재해석, 재생산해서 생활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 휴머니즘과 공생은 거추장스럽고 개인의 소외는 심화되고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군집을 이룬 현장에서 안전에 대한 대리만족적 의식이 작용하는 비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민혁의 bar 시리즈는 외형적으로 보면 현장적 유희성에 초점을 맞춘 듯 보여지지만 그것은 마치 곧 증발될 시간에 한바탕 벌이는 군중의 푸닥거리, 즉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한바탕 벌였던 환타지들이 빛과 함께 증발될지 모른다는 위기가 처절하게 배어 있고, 현실의 장이 갖는 비애감과 불안성을 bar라는 도피의 공간으로 설정하여 현실의 인간들이 갖는 불안적 잠재성들을 스멀스멀할 정도의 유쾌함 속에 찰나의 시간으로 정지시키고 있다. ●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탈과 초월의 의지는 있지만 그 역시 현실의 문제에 한정될 수밖에 없겠다. 그의 작품들이 Bar라는 일상에서 벗어난 특정한 장소들을 지목하고 있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현실의 삶 자체를 Bar스러운 에너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가 아니면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소임적 태도로 일관하는가? 그런 고민일 것이다.
그의 작업들을 바라봄에 있어서 연출된 소재들에 대해 사회 역학적 규범성, 도덕성, 건강성에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런 풍속을 양산시키는 현실의 비정함과 우리 주변의 '어떤 상태'를 염두하고 작품 밖의 또 다른 현실을 유추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 여겨진다. 그것마저도 여유롭지 못하다면... ● 설령 그 존재들이 유령들의 풍속화라고 한들 이 역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장소와 시간의 반영이기에 그 푸닥거리에 신경적 반응보다 감각적 촉수로 그 질감과 에너지를 삶의 활력으로 흡수하는 여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정화성
Vol.20110921d | 이민혁展 / LEEMINHYUK / 李民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