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展
부대행사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2011_0922 ▶ 2011_0928 장소 / 씨너스 이채와 파주출판도시 등 경기도 파주시 일대
주최 / 경기도_파주시_DMZDOCS조직위원회 주관 / (재)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_경기공연영상위원회 기획 / 이광기 큐레이터 / 김기민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지지향 GALLERY JIJIHYANG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4-3번지 Tel. +82.31.955.0090 www.jijihyang.org
전쟁이라는 뼈아픈 과거의 잔재로 여전히 서로가 총을 겨누고 대치되어 있는 슬픈 현실로 인해 그 누구의 침범도 없이 아름다운 자연만이 평화로운 곳, DMZ는 평화로운 자연 이면에 이념과 사상이 치열하게 뒤엉킨 채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역설적이고 모순된 공간입니다. ● 이러한 DMZ에서 열리는 『彼我同一:We are who you are』전은 '너'와 '나'가 하나되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 저마다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들을 가지고 '너'와는 구별되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지만 이는 어떤 것–영화 혹은 예술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로 더 나아가 분단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로 크게는 세계 속의 '우리'라는 하나의 커다란 카테고리로 묶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크나큰 대전제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나'와 다른 '너'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 예술을 통해 하나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彼我同一』전이 전시를 관람하시는 모든 분들께 전달 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단지 분단된 한국만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에서 서로의 차이로 갈등하는 세계 모든 이들이 예술을 통해 치유되고 하나되는 소통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 김기민
In the Korean Peninsula, KDMZ (Korean Demilitarized Zone) marks the division between North Korea and South Korea. Its existence is the living proof of the violent history between these two nations. Fiercely entangled in existence of philosophy and ideology, KDMZ marks the world's only divided nation in the 21stcentury. ● 『彼我同一: We are who you are』 is an exhibition held at the KDMZ that features a message about how there is still hope for reunification between the Koreas. Today's world features diverse perspectives and opinions that vary between different cultures. However through exhibitions like these, not only are we trying to promote the idea of peace and unification between these two countries, but through all of humanity. There should no longer be any distinction between different groups of people because in the end we are one. ● This exhibition will display how humanity can put aside their differences in ideology and philosophy to unify as one. This is not only simply limited to Korea, but also as it aims to communicate by curing and harmonizing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conflicts between nations through this form of art. ■ Kimkimin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 ● 이용백은(1966년 경기도 김포 생) 1990년 홍익대 서양화과와 1993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 회화과, 1995년 동 대학 조소과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국내외에서 활발할 활동을 해왔다. 이용백은 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싱글채널 비디오에서부터 설치, 음향, 키네틱, 심지어 로보틱스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실험해 왔고, 특히 한국에서는 이 방면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 위상을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대한 높은 평가는 그러한 기술적 실험 자체보다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적 형식 속에 우리 시대에 특유한 정치-문화적 쟁점과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최근 그는 그동안 주력해 온 비디오 작업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 등 매체의 다양한 영역들을 넘나들며 매우 새로운 시도를 담은 신작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점은 작가 이용백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손에 익숙한 한 가지 양식을 고집하지 않고도 기존 작업과 통일성을 유지한 체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최근의 신작들은 존재와 사회,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관심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이용백의 비디오 퍼포먼스 작업 「Angel Soldier」(천사와 전사)'는 천사와 전사라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우리시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모든 논리적 절차를 생략하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인식적 정서적 가치는 논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학문의 그것과 완전히 틀리다. 직설의 힘은 시와 같다. 영화가 소설이라면 그림은 시다. 이용백은 이러한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체적 장점과 힘을 가장 잘 끄집어 낼 줄 아는 작가 중 한명이다. 서사적이고 다소 지루한 영상작업을 보다가도 바로 '아!'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의 또 다른 영상작업 「Mirror」 역시 그의 이러한 작업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거울과 평면 TV, Mac Mini로 구성된 이 작업은 실존적 존재에 그 관심이 모아져 있다. 이 매혹적이고 간단한 작업 역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 한 방으로 끝난다. 그 앞에서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그는 허상인가 실재인가? 작가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난 작품이다. 그래서 작가적 삶과 작업과정은 스님의 수행과 많이 닮아있다. 끊임없이 반성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그 반성의 결과가 한 방에 온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그 한 방을 위해서 작가가 20여 년 동안이나 내공을 쌓아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러한 존재와 내면에 대한 천착은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회화작업 「Plastic Fish」에서도 보여진다. 진짜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덥석 먹을 가짜물고기, 살기위해 먹은 그 가짜로 인해 죽을 진짜 물고기,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인간, 이 지독한 존재의 역설, 이것은 장자의 '호접몽'도 아니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도 아니다. 천형처럼 어깨에 내려않은 모든 존재의 지독한 슬픔일지도 모른다. ● 최근의 조각 작품 「Pieta (자비를 베푸소서)」시리즈는 「피에타-자기증오」, 「피에타-자기죽음」등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다. 이 조각 시리즈는 조각 거푸집이 성모 마리아 역이고 그 속에서 나온 알맹이가 예수 역이다. '증오'에서는 이 둘이 K 1 격투기 선수처럼 처참하게 싸우고, '죽음'에서는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다. 존재의 모순과 종교의 위선, 문명의 어두운 야만 등등 모든 것이 녹아있는 작업이다. 그의 작업들은 마치 한 여름 밤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대책 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오싹한 한기가 있다. ■ 윤재갑
유토피아를 피하는 길 - 이세현의 그림에 관하여 ●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그 환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림은 유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디스토피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세현의 그림이 보여주는 풍경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집들만 보일 뿐 사람이 없다. 아름다우나 사람이 없는 세계는 일종의 디스토피아다. 아니다. 다시 보면 그의 그림은 유토피아이다. 그 유토피아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이다. 사실은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다시 디스토피아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그림은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 사이에 붉은 다리처럼 걸려 있다. ● 이세현의 그림은 전통적인 한국의 산수화와 서양화의 종합적 교배이다. 먼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식적인 특성이 그렇다. 게다가 그가 그런 그림을 그린 최초 장소가 한국이 아니라 영국의 런던이며, 일반에 공개된 곳도 런던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흥미로워 진다. 왜냐면 그의 그림의 배후에 있는 고민들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 동양, 한국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더 나아가면 유렵과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현대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정치, 경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인 것도 그러했다. 대중문화든 고급문화든 자신의 전통적인 문화와 해외에서 강제로 유입된 문화 사이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 딜레마, 즉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 되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방법이 문화의 형식과 내용을 나누고 거기에 각각 다른 관점을 적용시켜 통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등의 구호가 그것이다. 모두 다 서양의 기술과 전통적인 정신을 결합하여 딜레마를 극복하자는 내용의 이 구호들은 여러 방면에 폭넓게 적용 된다. 그리고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 그림 또한 마찬가지여서 전통적인 재료들을 서양적, 현대적 방법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서양의 재료와 도구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용해왔다. 이세현의 그림들은 후자에 속하며 시간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계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아마도 유럽,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이세현의 풍경은 오리엔탈리즘적이거나 아니면 이국적인 풍경을 유화로 옮겨놓은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 이세현의 풍경은 겉보기와는 달리 고통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정체성의 문제와 문화적 딜레마, 작가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 형식적으로 그의 풍경은 전통 산수화를 닮았지만 산수화는 결코 아니다. 시점들은 다시점과 이동 시점을 취하고 있고 전체적인 구성도 그러하다. 그러나 대상에 관한 묘사 방식은 산수화의 준법이 아니라 서양식 묘사이고 색깔을 붉은색 하나이다. 그 붉은 색은 전통적인 산수화에 사용되던 먹색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했던 색이며 한국에서도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 되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분단 상황에서 비롯된 한국 사람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세현의 그림은 형식적인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의도적으로 일관성을 배제한다. 그렇게 해서 이 세현의 작업은 논쟁적인 내용을 풍경화라는 외형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의도적으로 붉은 색을 택하고, 바닷가 시골 출신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한국의 기억-민주화의 고통스런 과정, 경제적 근대화와 분별없는 개발과 건설로 사라진 바다와 섬과 산들을- 서양식 화법으로 그린다. 이는 그의 그림이 현재의 상태에 이른 과정을 보아도 알수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린 그의 초기 그림은 도시의 거리에 있는 풀들이다. 그 풀들은 문명 이전, 인간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며 인간의 선조들이다. 즉 자연에 대한 경의와 그에 대한 인간의 횡포를 전통을 빌어 말하려 했던 것이다. ● 그 뒤에 이 세현은 지금의 작업 스타일을 발견한다. 그것은 겸재 정선을 비롯한 조선 시대의 대가들에 주목함으로써 시작된다. 이 세현에게 전통 풍경이란 박제된 파편이 아닌 현재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 이세현의 풍경 이미지들은 라캉을 빌어 말하면 상징계의 한 예이다. 질서와 언어로 구조화된 체계인 상징계는 무의식을 반영한다. 그 무의식이 발현된 이 세현의 그림은 전통 산수화의 일종인 관념 산수와 겹친다. 그리고 관념 산수는 유토피아를 담고 있고 그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화가는 사소한 디테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제거한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 이세현의 그림은 서양인의 입장에서 일종의 타자이다. 타자로서의 그의 작업들은 서양 중심의 단일문화 mono-culture에 저항한다. 그 저항은 동양, 한국에서는 익숙하지만 서양에서는 낯설 것이다. 낯섬과 새로움을 넘어선 이해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 세현이 탐색해야 할 길이 그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길은 그의 그림 속에 이미 그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은 그 길 밖으로 나와야 온전한 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으며, 또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니라 피해가는 길일 수도 있다. ■ 강홍구
Vol.20110916a | 彼我同一:We are who you are-이세현_이용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