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ixt

박지현展 / PARKJIHYUN / 朴志賢 / painting   2011_0916 ▶ 2011_1009 / 월요일 휴관

박지현_Two for One–Tunnel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30×26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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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16_금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1_0916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모호한 형상의 출현 ● 박지현은 언어가 갖는 기의(signified)적 상징성을 물질적 차원으로 치환시키며 고정된 인식체계에 혼선을 야기하는 작업세계를 견지해왔다. 그가 시도하는 언어의 유희는 그의 초기 작업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1996년 서울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그는 대상체로서의 언어와 수용체로서의 인식의 사이에 위치하는 익숙한 관습에 교란을 가하는 작업들을 발표했다. 그가 소재로 삼은 언어의 속성은 대개 그가 붙인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왔다. 예를 들면 못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못된 놈'이라고 칭하거나 발이 세 개인 낙지를 표현하고 '세발낙지'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었다. ● 개인적으로 막대한 부담과 권위적 무게를 부과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미술계에서 첫 발을 딛는 박지현의 태도가 생각보다 가벼웠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이것이 작품의 기저를 형성하는 진지한 심적 태도가 부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그의 작품이 주로 취해온 형식은 키치나 유머와 같이 가벼운 것들이었다. 이는 박지현이 당시 한국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력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시각화해 온 '말들의 미끄럼타기'는 그 이전까지 한국 미술계를 지배해 온 거대담론의 유효적 속성이 변화하고 있음과 함께 스스로 찬반의 양단적 구조에서의 입장표명을 유보하며 내면의 모호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적 발언이 당시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 발언의 모호성은 이후의 작업들에서도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현_Two for One-Guardian 2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86×260cm_2011
박지현_Two for One–Copper Fly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86×260cm_2011

유학을 계기로 10여년간 뉴욕에 거주하게 된 박지현은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유희를 지속했다. 언어를 근간으로 작업했던 작가에게 언어적 환경이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예상보다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작업이 관계하는 언어적 속성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문화적 맥락에 보다 중층적인 시각을 입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왔다. '치킨 앤 브로컬리'를 비롯한 이 시기의 작업은 그 이전까지 지속해온 언어적 상황의 즉흥성에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을 가진 문화들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에서 감지한 어색한 접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들을 진술해내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주로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조악하게 복제한 키치적 형식의 레디메이드 가구에 플라스틱 오브제와 같은 것들을 첨가시킨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색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작업들의 '가벼움'의 이면에는 사실 정주의 배경이 바뀌고 새로운 문화적 프레임속에서 어색하기 자신을 끼워맞춰나가고 있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작가의 '무거운' 심적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다. ● 이러한 시점에서 작업의 새로운 재료로서 향에 매료된 것은 흥미로운 우연 혹은 필연이다. 작가는 짧은 시간 일정한 효력을 발산하고 사라지는 향이 '약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는 재료'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향을 태우는 행위는 늘 어떤 '염원'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러한 '염원'들이 대부분 어떤 '욕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작가에게 향이라는 재료가 스스로 동경을 품어 왔고 실존적 삶을 살아내고 있던 '뉴욕'이라는 곳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향을 질료로 하여 오브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작품이 품고 있는 개념적 측면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설치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형식과 함께 타고 있는 향으로 한지 위에 이미지를 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평면 작업들이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박지현_Two for One-Long Island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_162×260cm
박지현_Two for One-Rooting 1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canvas_130×120cm_2011
박지현_The Air_Burned incense holes on rice paper on skateboard_2011

전시장 지하공간에 셀 수 없이 많은 향들이 조밀하게 모여 재현된 작품 'Li:ving'은 '살다'라는 뜻의 영단어인 'Live'와 '떠나다'라는 뜻의 'Leave'를 조합해서 만든 제목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향 작업이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주의 함축적 구현으로서 축소된 세계에 대한 작가의 취향을 유추할 수 있다. 작품 'Li:ving'은 향으로 만들어진 거대 도시의 모델링이라 할 만 하다. 드높은 고층 건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오늘날 거대 도시의 상징체이자 작가가 거주하게도 했던 뉴욕의 단면일수도 있고, 우리 모두의 욕망이 투사된 익명의 메트로폴리스일수도 있다. 늘어선 건물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하늘에 솟구쳐 있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거대도시가 갖는 어떤 전형적 속성으로 수렴되어 버린다. 현실사회의 영역에 직설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이 작품의 명료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향이 주는 명상적 정서와 시선을 압도하는 스케일은 작품의 감상을 보다 중층적인 시선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 전시장의 1,2층을 주로 채우고 있는 작업들은 향을 태우는 행위의 과정을 통해 얻어낸 새로운 형상들이다. 박지현은 얇은 한지에 타고 있는 향으로 촘촘히 구멍을 내어 이미지를 그려낸다. 구멍은 각각 다른 정도도 조금씩 타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구멍의 균질성과 윤곽선의 다양성이 공존하게 된다. 이것은 생성과 소멸이 병존하는 모순적 상황을 거친 후에야 출현한 '모호한 형상'인 것이다.

박지현_Li:ving_향, 거울_80×300×38cm_2011

그의 평면 작업들은 데칼코마니 기법과 같이 반전된 형식의 두 개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상을 가진 두 개의 면이 만나서 처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이러한 조형 질서는 그의 평면 작품들을 읽어 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Tunnel'은 조밀하게 들어선 뭉게구름 같은 형상이 양면으로 배치되면서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환시적 느낌을 준다. 형상의 평면적 속성이 운동 에너지의 방향성과 입체성으로 전환되었다. 'Fly'의 경우 한쪽 면의 이미지는 핵폭발 직후 발생하는 버섯구름을 연상시킨다. 두 개의 면이 만나서 이루는 형상은 가볍고 명랑한 느낌을 주는 나비의 이미지이다. 버섯 구름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나비의 발랄한 분위기로 전환된 것이다. 이미지가 가진 기호적 연상작용이 정 반대의 방향으로 반전되었다. 작품 'Rooting'에서는 나무의 잔가지들의 형상이 양면으로 만나면서 조밀한 뿌리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이미지의 방향성 전환을 통해 말단의 영역을 기저의 근원적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적 위치이동이 발생하고 있다. 이 반전의 과정을 통해 박지현은 처음과 끝이라는 선형적 세계관을 탈피하고 끝이 시작과 맞물리는 순환적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Long Island'는 위의 작품들과 동일한 기법과 재료를 활용한 것이지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변화를 꾀한 것이다. 벽에 걸린 평면 작품들이 얇은 한지에 남은 흔적을 주로 캔버스의 형태에 접목하여 보여준 것임에 반해 이 작품은 얇은 종이 형태 그대로를 걸어 놓았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담고 있는 투과의 가능성들로 인해 관람자의 시선 너머의 풍경과 중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박지현은 한지 위에 타는 향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평면 조각'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러한 미학적 지향점을 보다 원형적인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스케이드 보드 윗면을 이용해 향이 남긴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품 'The Air' 또한 평면의 조각적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케이트 보딩에서 점프를 칭하는 용어인 'Air'에서 착안, 구름의 이미지들을 윗면에 부착시킨 이 작품은 수많은 보딩의 경험이 남긴 흔적들을 구름과 조우시키며 새로운 해석의 시점을 부여하고 있다. ● 박지현은 우리에게 '모호한 형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업 앞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과 끝이 분명하게 직조된 세계에서 유리된 외부인이 아니라 관객의 눈 앞에 자신의 작업을 소멸시킴으로써 구현된 새로운 생성의 과정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 모호한 형상에서 발견되는 것은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고 인공물도 아니다. 그가 'Between'과 'Twist'를 합성하여 조어한 전시의 제목 'Betwixt'는 그러한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뚜렷하지 않고 분명할 수 없는 내면의 의식으로 인해 생기는 인간의 번뇌와도 같이 그의 작업은 모호한 정신세계의 불명확한 본성을 조용히 언급하고 있다. ● 박지현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 축적해온 작가적 사유의 성숙된 측면을 제시했다. 이것은 그의 작가적 조형언어가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중요한 지점임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초월의 과정에 자신의 실존적 삶을 용해시킴으로써 삶과 작업이 일치된 어떤 방향을 얻어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작업은 새로운 국면의 시작점이다. 이번 전시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 고원석

Vol.20110915h | 박지현展 / PARKJIHYUN / 朴志賢 / painting

2025/01/01-03/30